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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천사랑의교회

2017-5-4 새벽설교 - 하나님 편에 선 자(왕상1:38-53)

최민환2017.05.07 22:35조회 수 318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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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편에 선 자(왕상1:38-53)

 

▶마크 부케넌이 쓴 <열렬함>이라는 책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아프리카 케냐와 우간다 국경에‘부시아’라는 작은 마을이 있다. 그런데 이 마을은 두 나라의 경계지역에 있다. 흥미있는 것은 마을의 한쪽 끝은 케냐이고, 마을의 다른 쪽 끝은 우간다이다. 마을은 케냐에 속한 것도 아니고 우간다에 속한 것도 아니다. 만약 한 사람이 케냐에서 우간다로 들어가려면 일단 케냐국경을 넘은 뒤, 이‘부시아’라는 마을을 통과해서 다시 우간다의 국경을 넘어야 한다. 이렇게‘부시아’라는 마을은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은 경계지역에 있다. 그런데 마크 부케넌은 이 이야기를 빌어 현대 그리스도인들의 잘못된 신앙을 꼬집고 있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았지만, 여전히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경계지역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를 배우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힘들다는 것이다. 그냥 경계지역에서 적당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경계지역은 결코 안전한 곳이 아니라는 점이다.‘부시아’라는 마을에서 살인 등의 범죄가 발생하면 케냐와 우간다 어느 나라의 군대도 그들을 지켜주지 않는 것이다. 왜냐하면‘부시아’가 케냐에도, 우간다에도 속하지 않는 경계지역이기 때문이다.

==> 신앙은 소속이 확실해야 한다. 성도는 확실하게 하나님 편에 서있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하나님 편에 선다는 것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첫째, 마귀 편에 선 자들의 결국은 멸망이지만, 하나님 편에 선 자들의 결국은 찬송이다.

 

어제 말씀드렸다시피, 솔로몬이 왕으로 즉위되기 위해 기름부음을 받은 장소의 이름은 기혼이다. 기혼은“은혜”라는 뜻이다. 그런데 아도니야가 스스로 왕이 되려고 사람들을 초대한 곳의 이름은 9절 말씀처럼“소헬렛”이다. 소헬렛의 뜻이 무엇인지 아는가?“뱀”이다. 성경에서“뱀”은 마귀를 뜻하는 것이다. 아도니야가 왕이 될수 없었던 또 하나의 영적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도니야는 마귀에게 속한 자였던 것이다.

 

그런데 아도니야의 이름 뜻이 무엇인가? 아도니야는“나의 주는 여호와이시다”란 뜻이다. 그런데 실상 아도니야의 주님은 여호와가 아니라, 마귀였다. 왜 아도니야가 마귀에게 속한 자인가? 마귀에게 속한 자의 특징은“자기를 위하는 것”이다. 아도니야는 하나님도 위하지 않고, 아버지 다윗도 위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오직 자기를 위해 스스로 왕이 되고자 한 사람이다. 그런 자는 마귀에게 속할 수밖에 없게 된다. 자기를 위하는 사람이 가는 곳은 결국 뱀이 역사하는 곳, 마귀가 역사하는 곳일수밖에 없다. 마귀에게 속한 자들의 결국이 무엇인가?

 

본문 41절에 보면, 이들이 하는 것이라고는 먹는 것뿐이다. 9절에 보면, 양과 소와 살찐 송아지를 많이 잡아 먹은 것이 이들이 한 일이다. 이들은 잘 먹기만 하면 되는 줄 안다. 그런데 이 잘 먹는 모임은 솔로몬이 왕이 되었다는 소식 앞에 모래알처럼 흩어져 버렸다. 처음엔 세상을 다 얻은 것같았지만, 결국엔 아무도 남지 않았다. 여러분, 마귀에게 속한 자들의 결국이 이렇다. 은혜의 원리가 아닌, 떡의 원리로 살면 끝이 좋지 않다.

 

그런데 하나님께 속한 자의 모습이 무엇인가? 찬송이다. 47-48절에 보면, 솔로몬이 왕이 되는 것을 보고 몸을 굽혀 경배하고 하나님을 찬송한다. 다윗이 왜 경배하고 찬송할까? “아니, 솔로몬이 왕이 된 것은 다윗이 신하들에게 솔로몬을 왕으로 세우라고 명령을 내려서가 아닌가? 그런데 왜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송하지?”인간적으로 보면, 솔로몬은 다윗의 아들이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준 것인데, 왜 경배와 찬송을 드리는가? 이유가 무엇인가? 하나님이 말씀하신대로 솔로몬이 왕이 되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해 약속하셨고, 그 약속대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다윗은 하나님이 하신 것이라고 인정하고 하나님을 찬송한 것이다. 자기는 늙어서 아도니야가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을 통제할수 없었는데,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시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 하나님께 속한 자의 특징은“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이다. 우리가 외롭게 살다가 배우자를 만나 결혼하게 된 것, 가정을 세우는 것, 자녀들이 자라는 것, 직장에서 일하는 것, 외국생활을 하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못했는데, 이 심천에 살고 있는 것 등등.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복이다. 이것을 인정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송하게 된다. “모든 것은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우리가 수고하고 애써서 얻은 것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이 허락하셨기에 얻을수 있었다고 고백하는 것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이다. 내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이 성도의 마땅한 자세이다.

주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자로서 늘 찬송하는 삶을 살수 있게 되기를 축복한다.

 

 

■둘째, 마귀편에 선 자들의 결국은 두려움이지만, 하나님 편에 선 자들의 결국은 즐거움이다.

 

아도니야의 즉위식과 솔로몬의 즉위식의 차이점이 무엇인가? 본문 39-40절을 앞의 25절과 비교하여 보라. 아도니야가 왕이 될 때에 발견할수 없는 것이 무엇인가? "즐거움"이다. 솔로몬이 왕이 되자, 백성들이 크게 즐거워했다고 나온다. 표준새번역에는“열광적으로 기뻐했다”고 나오고, 공동번역에는“기쁨의 도가니”가 되었다고 나온다. ==> 성도의 신앙생활의 특징은“기쁨과 즐거움”이다.

 

시32:11“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마음이 정직한 너희들아 다 즐거이 외칠지어다”

성도의 모든 모임은 찬송으로 시작한다. 왜인가? 찬송은 기쁨과 즐거움의 표시이기 때문이다. 기쁨과 즐거움이 없는 찬송은 찬송일 수 없다. 솔로몬이 왕이 된 것에 백성이 즐거워하고 다윗이 찬송한 영적 이유는, 솔로몬은“죄 용서의 증거”로 세워진 사람이기 때문이다.

 

==> 성도는 왜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하는가? 그 이유는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 은혜를 입어 죄사함을 받은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하나님은 모든 것을 말씀대로 이루시는 분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편에 선 자들의 결국은 기쁨과 즐거움이 될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성도는 눈에 보이는 현실앞에 좌절하지 않고, 환난 중에도 기뻐하고, 근심 중에도 찬송할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마귀편에 선 자들의 결국은 두려움이다. 49절에 아도니야의 모임에 동참한 사람들이 놀랐다는 말은 공포에 사로잡혔다는 뜻이다. 아도니야도 두려움에 사로잡혀서 성막의 제단뿔을 잡았다. 여러분, 하나님 편에 서지 않았을 때의 특징이 바로 이것이다. 단 하나의 소식앞에서도 두려움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전화 한통, 문자한통에 넘어지고 쓰러지는 것이다.

 

하나님 편에 선 성도가 되라. 성도가 하나님 편에 서게 될 때,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하나님께서 무화과 나뭇잎이 마르는 상황,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는 상황, 외양간에 소가 없는 상황속에서도, 하나님으로 인해 기뻐하고 즐거워할수 있도록 우리를 붙들어 주실 것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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