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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천사랑의교회

2015-9-9 새벽설교 - 믿음의 정의(삿4:11-24)

최민환2015.09.14 21:56조회 수 359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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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정의(삿4:11-24)

 

 

첫째, 믿음은 하나님의 예비하심을 믿는 것이다.

 

11절을 보라. 겐사람 헤벨이 자기 동족을 떠나 게데스에 가까운 사아난님 상수리나무 곁에 장막을 쳤다는 내용이 뜬금없이 나온다.

저는 이렇게 뜬금없이 갑자기 끼어드는 말씀, 또는 복선으로 미리 깔리는 말씀을 무척 좋아한다.

여기에는 항상 영적인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겐사람 헤벨이 왜 자기 족속을 떠나 게데스에 가까운 사아난님 상수리나무 곁에 장막을 쳤는지 우리는 알수가 없다.

분명한 것은, 이 구절이 굳이 10절과 12절 사이에 존재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드보라와 바락이 전쟁하러 가는 이야기 중에 갑자기 끼여든 것이다.

이 구절은 본래 헤벨의 아내 야엘이 나오는 16절 앞에 있어야 되는 내용이다.

그런데 왜 10절과 12절 사이에 삽입되었는가? 하나님께서 이 전쟁을 미리 예비하셨음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모세의 장인 이드로의 다른 이름이 호밥인데, 그의 후손들이 본래 정착하여 산 곳은 남방 유다황무지였다.(1:16)

기억나죠? 그런데 유독 헤벨만 거기서 나와서 멀고 먼 북쪽 지방 게데스까지 올라와 장막을 쳤다.

동족을 떠나 북쪽으로 이동한 이유는 알수가 없다.

==> 중요한 것은 헤벨의 장막이 가나안의 군대장관 시스라를 끝장내는 장소로 예비되었다는 것이고,

시스라는 하나님이 준비한 함정으로, 즉, 호랑이 입으로 기어들어 왔다는 것이다./

==> 이것을 우연의 일치라고 생각하면 그것은 하나님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는 것이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여호와이레의 하나님이시다./

 

그것을 우리는 전쟁의 장면에서도 발견하게 된다.

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게데스에 있는 다볼산 위로 올라가게 하셨는가?(12절)

높은 곳을 차지하는 것이 전술이기 때문에? 아니다. 어차피 내려와야 했다. 똥개훈련시키는 것인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자손을 다볼산으로 올라가게 하신 것은 전쟁을 위해 예비하신 것이 있기 때문이다.

 

5장 19-20절은 다볼산 아래 기손강이 폭우로 인해 범람하여 철병거를 무용지물이 되었음을 묘사하고 있다.

갑작스런 폭우로 다볼산 아래 기손강 주변의 땅이 진흙탕에 진창으로 변하자,

가나안왕 야빈의 철병거 900대가 무용지물이 되었다.

==> 힘들게 올라간 다볼산은 승리를 위해 준비된 땅이었다.

 

==> 저희 집은 10월 24일이 계약만료이다. 그런데 집주인이 재계약시 9500원을 달란다. 3천원이나 뛰었다.

그래서 사택을 옮겨야 하는데, 저는 기대가 된다. 하나님의 예비하심이 기대가 된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집이 있을줄로 믿는다. 거기서 내가 만나야 할 사람, 해야 할 일이 있을 것이다.

여러분이 어떤 곳으로 가든 거기에는 하나님의 예비하심이 반드시 있다.

==> 월세가 싼곳에 산다고, 후진곳에 산다고 낙심할게 아니라(그건 불신앙),

하나님의 예비하심을 기대하는 믿음을 가지라.

내가 사는 곳이 후진 곳이냐 아니냐가 중요한게 아니라, 하나님의 예비하심을 믿느냐 안믿느냐가 중요하다.

 

 

■둘째, 믿음은 인간적 친분관계보다 하나님의 뜻을 우선시 하는 것이다.

 

본문에 두 남자가 등장한다. 바락과 시스라. 둘 다 비슷한 사람들이다.

바락은 드보라를 의지했다. 그리고 시스라는 야엘을 의지했다.

가만보면, 남자의 생리가 그렇다. 남자들은 사회생활을 하다보니, 인맥을 중시하고, 친분관계를 중시한다.

사회생활을 많이 할수록 믿음보다는 친분관계를 더 중시하고, 신앙보다 사람을 더 의지하는 경우가 생긴다.

==> 두 남자 바락과 시스라, 헤벨은 각각 사람에게 의지했다. 그것도 대상이 다 여자였다는 것이 신기하다.

그런데 문제는 이 두 여자가 보통 여자들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드보라와 야엘. 두 여자는 공통점이 있는데,

첫째, 둘다 연약한 여자였다는 점.

둘째, 둘 다 인간적 친분관계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우선하는 사람들이었다는 점이다.

==> 하나님은 믿음만 있으면 연약한 여자라도 들어 사용하신다.

 

▶드보라는 바락이 자기를 의지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았다. 도리어 자기에게 의지하는 바락을 책망하였다.

왜냐하면, 사람을 의지하는 것보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더 중요함을 알았기 때문이다.

결국 바락은 사람을 의지했다가 책망은 책망대로 받고, 전쟁에 나가 싸우는 수고도 하였지만,

승리의 영광은 취하지 못했다.

▶헤벨의 아내 야엘은 드보라처럼 인간적 친분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우선하였던 여자였다.

전쟁에서 바락의 이스라엘군대가 이기자, 가나안왕의 군대는 모두 원래 왔던 곳, 하로셋학고임으로 도망갔다.

그런데 오직 한 사람 시스라는 하로셋학고임과는 정반대 방향인 게데스에 있는 겐사람 헤벨의 장막으로 도망쳤다.

왜 그랬을까? 그것은 인간적 친분관계를 기대했기 때문이다.

가나안왕 야빈과 헤벨집안이 서로 친분이 있음을 알았기에

시스라는 헤벨이 자기를 도와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헤벨집안에는 인간적 친분관계보다 하나님의 뜻을 더 우선시하였던 야엘이 있었다.

야엘은 비록 남편이 가나안왕 야빈과 인간적 친분관계가 있었지만,

인간적 친분관계보다 하나님의 뜻이 먼저인 여자였다.

시스라는 인간적 친분관계를 믿었다고 죽임당하고 말았다.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간적 친분관계보다 하나님의 뜻을 더 중요시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만약 여러분이 하나님의 뜻보다 인간적 친분관계를 중요시 한다면,

여러분은 수고는 많이 하였으되, 상급은 없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 믿음은 우선순위의 문제이다. 믿음은 사람보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다.

우선순위에서 하나님이 밀리지 않게 하라.

 

 

■셋째, 믿음은 상황을 역전시키는 능력이 있다.

 

24절에“이스라엘 자손의 손이 가나안왕 야빈을 점점 더 눌러서 마침내 가나안왕 야빈을 진멸하였더라”

여기서“누르다”라는 단어는 어제 본문 2절에 가나안왕 야빈이 이스라엘 자손을 심히 학대하였다는 구절에서

“학대하다”와 비슷한 뜻을 가지고 있다. 학대라는 뜻은 “누르다. 쥐어짜다”이다.

 

==> 이스라엘이 무슨 힘이 있어서 가나안족속을 누르는가?

군대의 힘을 말하는가? 아니다. 믿음을 말하는 것이다.

드보라와 야엘같은 사람들의 믿음으로 공동체의 믿음이 강해진 것이다.

이스라엘이 믿음이 없을 때는 눌림을 당했다.

그러나 믿음이 강해지자, 오히려 적을 눌러 결국 진멸시켰다.

하나님 백성에게 있어서 전쟁의 승패는 믿음의 여부에 달려 있다.

 

==> 여러분, 하나님께서 사사를 세우시는 이유를 아는가?

영웅을 보여주기 위함인가? 아니다.

하나님을 제대로 믿기만 하면 이길수 있는데,

너희가 믿지 않음으로 인해 어떤 일을 당하는지 보여주기 위해 사사가 등장하는 것이다.

사사가 있을 때는 항상 이긴다. 그런데 사사가 없으면 항상 진다. 바로 믿음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 믿음이 약해지면 죄가 짓눌러온다.

그러나 반대로 믿음이 강하면, 오히려 죄를 짓눌러 버리고, 심지어 죄를 끊을수도 있다.

여러분의 상태는 어떠한가? 죄에 눌리고 있는가? 아니면 죄를 누르고 쫓아내고 있는가?

모든 것은 믿음에 달려있다. 죄를 누르고 이기고 있다면 강한 믿음을 소유한 것이다.

반대로 죄에 눌리고 있다면 믿음이 바닥인 것이다. 이건 부인할수 없는 것이다.

==>무엇이 여러분을 누르고 있는가?

중요한 것은 영적인 문제이든, 육적인 문제이든, 믿음으로 상황을 역전시킬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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