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섭리(욥38:1-24)
한 남자가 경찰서를 찾아 와 간밤에 자기 집을 턴 도둑을 만나게 해 달라고 졸랐다. 경관;어차피 나중에 법정에서 만나시게 될텐데요./남자;아니 그게 아니라 그 전에 만나고 싶단 말씀입니다. 난 단지 그 놈이 어떻게 내 마누라를 깨우지 않고 집에 들어 올 수 있는지 그게 궁금합니다. 나는 벌써 몇 년째 시도하고 있는데 도저히 안 되더라구요.==> 그 남자는 그 비결을 배울수 있었을까? 세상에는 우리가 알고 싶어도 알수 없는 일들이 있다./여자의 마음을 남자들은 잘 모른다. 하물며 인간이 하나님의 뜻을 다 알수 있겠는가?
꽁치와 가자미가 만나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꽁치는 태평양, 대서양등 넓은 바다를 다녀온 바 있는 견문이 넓은 여행가였고, 가자미는 세계에서 가장 깊다는 태평양 매리애나 해구를 정복한 바 있는 유명한 탐험가였다. 가자미가 말했다.“내가 그동안 경험한 바로는 바다는 아주 깊은 곳이야. 며칠을 두고 내려가야 겨우 겨우 바닥에 닿을 수 있지.”이 말을 들은 꽁치가 대답했다.“아니야. 바다는 넓은 곳이야. 대서양, 태평양 등 많은 바다가 있는데 대서양 하나만 건너려 해도 몇 달씩이나 걸리지. 바다는 한마디로 넓다고 해야 옳지.”가자미와 꽁치는 서로의 주장이 맞다며 다투다가 많은 고기들을 불러 모아 누구의 주장이 맞는지 물어보기로 했다. 많은 고기들이 모이자 꽁치가 먼저 단상에 올라가“여러분! 예전부터 끝없이 넓고 큰 바다를 망망대해라고 했습니다. 이 망망대해가 우리에게 내려진 것은 신의 은총이며 축복인 것입니다. 이 넓은 바다를 아끼고 사랑하시는 여러분,‘바다가 넓다’는 저의 의견에 많은 찬성을 부탁드립니다.”이어서 가자미가 단상에 올랐다.“저는 깜깜한 바다 밑을 다녀온 바가 있습니다. 그래서 바다가 얼마나 깊은지 알고 있습니다. 의심나시는 분은 저와 깊은 바다 밑을 다녀봅시다.”여기저기서 두 사람의 의견에 찬성하는 박수 소리가 들렸다. 개표결과 바다가 넓다고 결정되었다. 많은 어류회원이 꽁치에게 축하 인사를 하였다. 가자미는 힘없이 회의장을 빠져나와 바다가 깊은 줄을 모르는 고기들의 어리석음을 생각하며 한숨을 쉬며 원망하며 살다 죽었다. 바다가 넒은 줄만 아는 꽁치나, 깊은 줄로만 아는 가자미나 어리석기는 마찬가지였다. 바다는 가자미나 꽁치에 의해서 파악될수 있는 크기가 아니다. 바다는 그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깊고 넒은 곳이다.
===>이처럼 인간 역시 하나님의 뜻을 다 알수도 이해할수도 없다.
본문은 아주 특이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오랫동안 침묵을 지키고 계셨던 하나님께서 드디어 입을 여셨는데, 그 첫마디가 욥을 위로하거나, 고난을 궁금해하는 욥에게 대답하는 내용이 아니라, 오히려 욥에게 질문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 시작하시는 2절은“무지한 말로 생각을 어둡게 하는 자가 누구냐?”이다. 그러나 히브리원문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단어는“미(누구냐?)”라는 단어이다.“누구냐?”라는 말이 원문 제일 앞에 있다. 영어로 말하면, "who"이다. 욥은 자기가 고통받는 이유에 대해 “왜”(why?)로 질문했는데, 하나님은 그런 질문하는 욥에게“질문하는 너는 누구냐?”(who?)라고 물으신다.//그뿐 아니라, 하나님은 욥을 질문자가 아닌, 하나님의 질문에 답변하는 자로 서도록 요구하신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하나님은 질문만 하셨건만, 욥의 마지막 반응이 무엇인가? 42장에 가면, 욥은 스스로 해답을 발견하고 하나님앞에 회개한다.
그런데 욥이 왜 회개했을까? 본문 2절에 나와있다. 무지한 말로 생각을 어둡게 했기 때문이다.
2절에“생각”이라는 말은 정확하게 번역된 말이 아니다. 차라리 이전 한글개혁성경의 번역이 옳았다. 이전버전에는 “이치”라고 번역했다. 히브리어“에짜”는“하나님께서 전개하시는 구속의 섭리 또는 계획”을 말한다. 그래서 영어성경이 이것을 잘 번역했다. 우리성경에는“생각”이라고 번역한 것을 영어성경에서는“my plan”이라고 번역했다. 즉 욥이 자기의 무지한 말로 하나님의 말씀을 어둡게 했다는 것이다. 어둡게 하다는 말은 “obscure”인데,“가리다, 모호하게 하다”는 뜻이 있다.==> 즉, 친구들에 비하면, 바르게 말했다고 생각되는 욥의 말조차, 하나님의 계획을 가리고, 모호하게 만드는 그런 무지한 말이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욥에게 하셨던 질문의 내용이 무엇인가? 본문은 창조세계의 구조와 운행에 대한 말씀을 질문형식으로 말씀하고 있다.
본문은 욥을 꾸짖는 장면인가? 그렇다고 보는 신학자들도 많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왜냐하면, 욥이 결국은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이다. 욥은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를 다 이해할수 없는 존재였다. 그러면서도 왜 내게 이런 고난을 주시는지 답변해달라고 요청하는 질문자였다. 그런데 하나님은 하나님의 계획을 다 알지도 못하면서 하나님의 답변을 요청하는 건방진 질문자를 물리치지 않고, 오히려 그를 깨달음으로 인도하셨다.
===> 하나님의 질문은 곧 욥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답변이었던 것이다.
===> 하나님은 인간이 한없이 어리석어도 인간의 질문을 외면치 않으신다.
마찬가지로, 오늘 우리 역시 욥처럼, 우리 인생이 어떻게 진행될지 알지 못하는 무지함속에 있으며, 하나님의 계획을 하나도 알지 못하지만, 왜 내가 여기 심천에 있는지 알지 못하지만,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로 나아가며, 하나님께 묻는다면, 욥을 깨달음으로 인도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질문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답변해주실 것임을 믿으시기 바란다.
한 남자가 경찰서를 찾아 와 간밤에 자기 집을 턴 도둑을 만나게 해 달라고 졸랐다. 경관;어차피 나중에 법정에서 만나시게 될텐데요./남자;아니 그게 아니라 그 전에 만나고 싶단 말씀입니다. 난 단지 그 놈이 어떻게 내 마누라를 깨우지 않고 집에 들어 올 수 있는지 그게 궁금합니다. 나는 벌써 몇 년째 시도하고 있는데 도저히 안 되더라구요.==> 그 남자는 그 비결을 배울수 있었을까? 세상에는 우리가 알고 싶어도 알수 없는 일들이 있다./여자의 마음을 남자들은 잘 모른다. 하물며 인간이 하나님의 뜻을 다 알수 있겠는가?
꽁치와 가자미가 만나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꽁치는 태평양, 대서양등 넓은 바다를 다녀온 바 있는 견문이 넓은 여행가였고, 가자미는 세계에서 가장 깊다는 태평양 매리애나 해구를 정복한 바 있는 유명한 탐험가였다. 가자미가 말했다.“내가 그동안 경험한 바로는 바다는 아주 깊은 곳이야. 며칠을 두고 내려가야 겨우 겨우 바닥에 닿을 수 있지.”이 말을 들은 꽁치가 대답했다.“아니야. 바다는 넓은 곳이야. 대서양, 태평양 등 많은 바다가 있는데 대서양 하나만 건너려 해도 몇 달씩이나 걸리지. 바다는 한마디로 넓다고 해야 옳지.”가자미와 꽁치는 서로의 주장이 맞다며 다투다가 많은 고기들을 불러 모아 누구의 주장이 맞는지 물어보기로 했다. 많은 고기들이 모이자 꽁치가 먼저 단상에 올라가“여러분! 예전부터 끝없이 넓고 큰 바다를 망망대해라고 했습니다. 이 망망대해가 우리에게 내려진 것은 신의 은총이며 축복인 것입니다. 이 넓은 바다를 아끼고 사랑하시는 여러분,‘바다가 넓다’는 저의 의견에 많은 찬성을 부탁드립니다.”이어서 가자미가 단상에 올랐다.“저는 깜깜한 바다 밑을 다녀온 바가 있습니다. 그래서 바다가 얼마나 깊은지 알고 있습니다. 의심나시는 분은 저와 깊은 바다 밑을 다녀봅시다.”여기저기서 두 사람의 의견에 찬성하는 박수 소리가 들렸다. 개표결과 바다가 넓다고 결정되었다. 많은 어류회원이 꽁치에게 축하 인사를 하였다. 가자미는 힘없이 회의장을 빠져나와 바다가 깊은 줄을 모르는 고기들의 어리석음을 생각하며 한숨을 쉬며 원망하며 살다 죽었다. 바다가 넒은 줄만 아는 꽁치나, 깊은 줄로만 아는 가자미나 어리석기는 마찬가지였다. 바다는 가자미나 꽁치에 의해서 파악될수 있는 크기가 아니다. 바다는 그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깊고 넒은 곳이다.
===>이처럼 인간 역시 하나님의 뜻을 다 알수도 이해할수도 없다.
본문은 아주 특이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오랫동안 침묵을 지키고 계셨던 하나님께서 드디어 입을 여셨는데, 그 첫마디가 욥을 위로하거나, 고난을 궁금해하는 욥에게 대답하는 내용이 아니라, 오히려 욥에게 질문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 시작하시는 2절은“무지한 말로 생각을 어둡게 하는 자가 누구냐?”이다. 그러나 히브리원문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단어는“미(누구냐?)”라는 단어이다.“누구냐?”라는 말이 원문 제일 앞에 있다. 영어로 말하면, "who"이다. 욥은 자기가 고통받는 이유에 대해 “왜”(why?)로 질문했는데, 하나님은 그런 질문하는 욥에게“질문하는 너는 누구냐?”(who?)라고 물으신다.//그뿐 아니라, 하나님은 욥을 질문자가 아닌, 하나님의 질문에 답변하는 자로 서도록 요구하신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하나님은 질문만 하셨건만, 욥의 마지막 반응이 무엇인가? 42장에 가면, 욥은 스스로 해답을 발견하고 하나님앞에 회개한다.
그런데 욥이 왜 회개했을까? 본문 2절에 나와있다. 무지한 말로 생각을 어둡게 했기 때문이다.
2절에“생각”이라는 말은 정확하게 번역된 말이 아니다. 차라리 이전 한글개혁성경의 번역이 옳았다. 이전버전에는 “이치”라고 번역했다. 히브리어“에짜”는“하나님께서 전개하시는 구속의 섭리 또는 계획”을 말한다. 그래서 영어성경이 이것을 잘 번역했다. 우리성경에는“생각”이라고 번역한 것을 영어성경에서는“my plan”이라고 번역했다. 즉 욥이 자기의 무지한 말로 하나님의 말씀을 어둡게 했다는 것이다. 어둡게 하다는 말은 “obscure”인데,“가리다, 모호하게 하다”는 뜻이 있다.==> 즉, 친구들에 비하면, 바르게 말했다고 생각되는 욥의 말조차, 하나님의 계획을 가리고, 모호하게 만드는 그런 무지한 말이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욥에게 하셨던 질문의 내용이 무엇인가? 본문은 창조세계의 구조와 운행에 대한 말씀을 질문형식으로 말씀하고 있다.
본문은 욥을 꾸짖는 장면인가? 그렇다고 보는 신학자들도 많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왜냐하면, 욥이 결국은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이다. 욥은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를 다 이해할수 없는 존재였다. 그러면서도 왜 내게 이런 고난을 주시는지 답변해달라고 요청하는 질문자였다. 그런데 하나님은 하나님의 계획을 다 알지도 못하면서 하나님의 답변을 요청하는 건방진 질문자를 물리치지 않고, 오히려 그를 깨달음으로 인도하셨다.
===> 하나님의 질문은 곧 욥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답변이었던 것이다.
===> 하나님은 인간이 한없이 어리석어도 인간의 질문을 외면치 않으신다.
마찬가지로, 오늘 우리 역시 욥처럼, 우리 인생이 어떻게 진행될지 알지 못하는 무지함속에 있으며, 하나님의 계획을 하나도 알지 못하지만, 왜 내가 여기 심천에 있는지 알지 못하지만,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로 나아가며, 하나님께 묻는다면, 욥을 깨달음으로 인도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질문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답변해주실 것임을 믿으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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