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가까이 하느냐가 중요하다(창38:12-19)
"엄마, 나 결혼하기로 했어. 그런데 그 남자 교회를 다니지 않아. 괜찮아?"/"괜찮아."/"그런데 우리나라 사람이 아니야."/"괜찮아."/"우리나라 들어온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직장이 없어."/"괜찮아."/"음, 그리고 집이 없어서 우리 집에서 살아야 돼."/"괜찮아, 아빠는 소파에서 자면 되지뭐."/"엄마는?"/"나는 집을 나갈 거야."===> 무슨 말인가? 결혼할 생각은 꿈도 꾸지 말라는 것이다
결혼은 함부로 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결혼은 나뿐 아니라, 내 후손의 삶까지도 결정하기 때문이다.
오늘 본문에는 각각 다른 사람과 결혼했던 유다와 다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유다와 다말을 통해 하나님께서 성도된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이 있다.
■첫째, 나를 죄짓게 만드는 환경에서 떠나야 한다.
어제 본문과 오늘 본문의 공통점은 유다가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행동을 할때마다 그의 곁에 아둘람사람 히라가 있었다는 점이다.
유다가 아둘람 사람 히라와 가까이 지낼 때에 가나안여자와 결혼하게 된다. 아브라함은 자기 후손이 가나안여자와 결혼하는 것을 금했다.(이것은 하나님의 뜻과 연관있다) 그래서 이삭도 야곱에게 가나안이 아닌, 갈대아우르 하란에 가서 아내를 얻으라고 했다. 그렇다면 야곱 역시 자식들에게 분명 그 가훈을 전수했을 것이다. 그런데 유다는 그것을 무시하고 가나안여자와 결혼했다.
==> 그때 유다의 곁에는 잘못된 결혼을 막아줄 아버지와 형제대신에, 엉뚱한 사람이 같이 있었다.
오늘 본문도 마찬가지이다. 유다의 아내 가나안여자가 죽었다. 그런데 유다가 곧바로 무슨 짓을 하는가? 창녀로 변장한 며느리 다말을 보고 성욕을 느끼고 그에게 접근한 것이다. 지금 아내가 죽은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다. 그런데도 다른 여자를 보고 성욕을 느끼는 상태에 빠진 것이다. 지금 점점 망가지고 있는 것이다.===> 무엇 때문인가? 이때 그 옆에 이방친구 아둘람사람 히라와 함께 지내고 있었다. 유다의 삶에 지금 이방친구 아둘람사람 히라의 영향력이 끼쳐지고 있는 것이다.
지금 유다가 하나님의 뜻에 반대되는 일(이방인과의 결혼, 창녀를 가까이 하는 일 등)을 할때마다 아둘람사람 히라가 유다의 곁에 있었다. 그 친구는 유다를 바른 길로 인도하는 친구가 아니라, 죄로 이끄는 친구가 분명하다.
==> 혹시 지금 여러분 옆에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드는 아둘람사람 히라가 있지 않은가? 그런 사람과 가까이 하지 말라. 복음을 전하고 도와주기는 하되, 교제하지는 말라. 성도는 죄를 가까이 하면 안된다. 죄에 넘어지게 만드는 환경을 떠나라.
■둘째, 어떤 일이 있어도 하나님을 떠나지 말라.
다말의 모습은 이해하기 힘든 점이 많다. 어떻게 자기 시아버지와 동침할 생각을 할수 있는가? 다말과 관계한 남자는 다 죽었다. 엘도 죽고, 오난도 죽었다. 물론 하나님께서 그들의 악함을 보시고 죽였다. 그래도 사람들은 다말을 남자 잡아먹는 여자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유다는 셋째아들 셀라도 죽을까봐 다말에게 친정으로 돌아가 있으라고 했다. 한마디로 소박맞은 것이다. 쫓겨난 것이다. 그런데 다말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런 수모를 당했으면 욕을 하고 뒤돌아서서 끝내면 되는데 다말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다른 남자에게 시집가면 되는데 그러지 않고 셋째아들 셀라가 장성할때까지 기다렸다. 그래도 안주니까 끝내는 시아버지를 유혹하여 동침했다.
===> 도대체 왜 그렇게 했는가? 도대체 다말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
분명한 것은 성경이, 하나님께서 다말의 이런 행동을 비난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유다와의 동침을 통해 쌍둥이 베레스와 세라를 낳게 되는데, 그를 통해 다말은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오르는 첫 번째 이방여자가 된다.
===> 도대체 다말이 기를 쓰고 유다의 자손을 얻으려고 했던 이유가 무엇때문인가? 룻기에 나오는 룻과 다말은 공통점이 있다. 둘 다 이방인이었다. 그리고 둘 다 하나님의 백성에게 시집왔다. 또 다른 공통점은 둘 다 신앙의 실패자인 사람들에게로 시집왔다는 점이다. 시부모인 아비멜렉과 나오미는 물질 때문에 약속의 땅을 떠나 모압땅으로 간 사람이었다. 유다 역시 신앙공동체인 가족을 떠나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 점점 망가지고 있는 중이었다.//그런데 놀랍게도 룻이나 다말이나, 시집와서 하나님을 알게 된후 하나님을 떠나려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자 했던 것이다. ==> 룻과 다말의 공통점은 하나님을 떠나지 않으려 했다는 점이다..
본문은 그 몸부림을 보여주는 모습이다. 내일 본문에 보면, 유다가 다말의 행동을 보고 탄식하듯이 한 말이다.“그가 나보다 옳도다.” 다말이 자기보다 의롭다는 말이다. ==> 무슨 말인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 삶을 사는 자기에 비해, 하나님의 백성이 되자,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려고 하지않는 다말의 모습이 더 의롭다는 것이다.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고자 몸부림치는 모습이 여러분에게 있는가?
■ 어느 교회에 교회는 열심히 출석하지만, 품행이 좋지 않은 남자가 있었다. 목사님이 하루는 그를 불러서 품행을 단정히 하라고 주의를 주자 그 남자가 말했다.“저는 주일에 한번도 빠지지 않고 열심히 교회나가는데요.”그러자 목사가 대답했다.“형제님, 사람이 동물원에 매일 매일 간다고 해서 동물이 되는 것은 아니잖습니까?”
==> 여러분, 여러분의 가족이 교회나온다고 안심하지 말라. 동물원에 다닌다고 동물이 되지 않는 것처럼, 교회를 뻔질나게 출입한다고 다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는“죄를 멀리하고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리라.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하나님을 떠나지 않으리라.”이러한 신앙적 결단이 있어야 한다.
==>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다말처럼 하나님의 은혜안에 머물려고 애쓰라. 그리고 그것을 돕는 친구와 가족이 되어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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