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마26:57-68
제목:성도의 신성모독
▶첫째, 말씀 대신 감정을 선택하면 신성모독을 할 수 있다.
대제사장의 무리는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서 거짓 증거를 찾았다. 그런데 십계명 중 제9계명이 무엇인가? “거짓 증거하지 말라”(출20:16) 아닌가? 대제사장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이 십계명 말씀을 모르겠는가? 그런데 왜 말씀을 무시하고 있는 것인가? 그것은 예수님을 <시기>하였기 때문이다.(막15:10) 예수님이 자기들보다 인기가 많고,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것 때문에 시기가 가득하여 죽이고 했던 것이다. 사람은 감정이 뒤틀리면 하나님의 말씀을 싹 다 무시하게 된다.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가장 어려운 것이 무엇인가? <말씀과 감정의 충돌>이다. 말씀대로 하자니, 내 감정이 걸리고, 감정대로 하자니, 말씀에 어긋나는 것이다. 그럴 때 자기감정 따라가지 않고, 말씀 따라가는 사람이 성숙한 사람이다. 여러분은 가정에서, 일터에서, 삶의 자리에서 감정 따라가는 사람인가? 아니면 말씀 따라가는 사람인가? 우리가 말씀 따라가지 않고, 감정을 따라가는 순간, 우리는 예수님의 영광을 가릴 뿐만 아니라, 오히려 예수님을 욕되게 하는 일들을 능히 하게 된다. 감정이 이끄는 대로 끌려가지 말고, 말씀이 이끄시는 대로 따라가는 성숙한 성도되시기 바란다.
▶둘째, 진리 대신 거짓을 선택하면 신성모독을 할 수 있다.
안타까운 점은, “예수님에 대해서 거짓 증언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점이다.(60절)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이 양심이 마비되어 너도 나도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진리를 말해야 할 성도가 거짓을 말한다면, 그것이 예수님을 욕되게 하는 <신성모독>이다. 오늘날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얼마나 거짓말을 많이 하는지 모른다. 왜 거짓말을 하는가? 먹고 사는 생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인가? 아니다. <진리>를 모르기 때문이다. 진리가 무엇인가? 하나님은 거짓말을 미워하시는 분이라는 것이다.(잠6:16-19) 성경은 성도에게 거짓을 버리고 참된 것을 말할 것을 명령하신다.(엡4:25) 그러므로 성도는 거짓을 버리도록 힘써야 한다. 지금 거짓증거들이 난무하는데도, 예수님은 아무 말도 안하시고 침묵하셨다.(63절) 예수님이 침묵하자, 대제사장이 예수님께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우리에게 말하라”고 한다. 이것은 예수님의 말을 트집 잡아 신성모독죄를 뒤집어 씌우려는 의도였다. 만일 이 질문에 계속 침묵을 고수하시며 잠잠하셨다면 대제사장은 예수님에게서 아무런 범죄의 증거를 찾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침묵하시지 않고 자신에게 매우 불리한 대답을 하셨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말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후에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아 있는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64절) 예수님은 <거짓말>을 하지 않고, 당당하게 <진실>을 말씀하셨다. 예수님을 본받으라. 진리가 아닌 거짓에는 불리할지라도 침묵하시고, 진리를 말해야 할 때에는 아무리 불리해도 진실을 말씀하셨다. 성도는 어떤 경우에도 거짓이 아닌, 진실을 말하고, 특별히 진리를 증거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왜인가? 우리는 진리를 증거하도록 부르심 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행1:8)
▶셋째, 생명 대신 욕망을 선택하면 신성모독을 할 수 있다.
“이르되 그리스도야 우리에게 선지자 노릇을 하라 너를 친 자가 누구냐 하더라”(68절) 누가 때렸는지 알아맞혀보라는 것이다. 그러면 선지자로 인정해 주겠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왜 그들이 원하는대로 능력을 발휘하여 “네가 때렸다!” 이렇게 하지 않으셨는가? 왜 대제사장이 신성모독이라고 소리칠 때, 천군천사를 동원하여 그들을 심판하시지 않았는가? 만약 그리하셨다면 그들이 바닥에 엎드려서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지 않았겠는가? 그런데 주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왜인가? 예수님은 그들이 바라는 유형의 그리스도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원하고 기대한 그리스도는 예수처럼 힘없이 잡혀 초라하게 죽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강력한 능력으로 자기들의 소원을 이루어주는 그리스도였다. 로마의 지배에서 벗어나게 해줄 그리스도, 나라를 부강하게 해줄 그리스도, 자신들의 배고픔을 해결해주는 그리스도를 원했다. 그러나 기억하라. 예수님은 인간의 소원, 인간의 욕망을 이루어 주기 위해서 오신 분이 아니라, 인간을 죄로부터 해방시키고, 심판과 저주로부터 벗어나게 하시고, 참된 자유와 생명을 주시기 위해 오신 분이었다. 만약 예수님이 그들의 원함대로 천군천사를 동원하고, 누가 때렸는지 알아맞추는 선지자적 능력을 발휘했다고 치자. 그러면 그들이 예수를 그리스도로 바르게 믿었을까? 아니다. 예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셨을 때, 많은 무리들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자 따른 것이 아니라, 빵을 주시는 분으로만 생각했을 뿐이었다. 즉, 사람들이 구하는 그리스도는 생명을 주시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자기들이 원하는 대로 해주는 그리스도였다. 무엇이 신성모독인가? 예수님을 그저 내 소원과 욕망을 이루어줄 분으로만 생각하고, 그런 의도로만 예수를 찾는 것이 신성모독이다. 참된 성도는 자기 소원을 이루기 위해 예수를 찾지 말고, 영원한 생명 안에 거하기 위해 예수를 찾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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