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창38:1-11
제목:여호와가 보시기에
강사:주한길선생님
오늘 소개하는 유다의 가족들이 보여주는 모습은 정말로 실망스러운 모습이다. 야곱의 넷째 아들로 장자의 권리를 승계하여 향후 다윗왕조를 이루고 우리의 구주가 되신 예수님이 태어날 언약의 가문이 되지만 처음부터 그렇게 된 것은 아니다. 창38장에서 유다의 가족은 이방 여자와 함께 결혼하여 하나님이 택한 가문의 정통성을 잃기 시작하였고, 언약의 보존을 위해 하나님이 세우신 “계대결혼 제도”를 개인적인 감정으로 무너뜨렸다. 또 유다와 다말의 근친상간의 죄를 통해 도덕적인 기준이 완전히 무너져버린 모습을 보여준다. 성경은 그 이유를 1절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유다가 부모와 형제를 떠나 혼자 이방인들과 함께 살기 시작했다고 한다. 혼자라는 건 참 위험하다. 그래서 하나님은 항상 신앙공동체를 통해 그 거룩함을 지켜가길 원하신다. 하지만 세상에서 그는 혼자이기에 더 이상 믿음을 지키기보다는 세상의 기준을 따라 세상처럼 살기 시작했던 것이다. 신앙인이 혼자 있을 때가 사실 가장 위험하다. 유다가 거기서 가나안 사람의 딸을 “보고”라고 하였다.(2절) 여기서 “보다”는 말은 “~에 관심을 가지다.”는 것으로 유다가 세상에 이렇게 관심을 가지면서 더 이상 신앙을 따라 살지 않고 자신의 정욕을 따라 살았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것은 자신에게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자녀들을 세상처럼 살도록 방임하고 또 부추겼다. 그래서 유다는 첫째 아들을 위해 이방인 여자를 아내로 데려왔고 가나안 땅에서 잘 적응하도록 적극적으로 도왔다. 그러니 첫째 아들 “엘”은 그 땅에서 세상이 볼 때에, 아주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행동이 도덕적으로나 성적으로 타락했을 때 표현하는 “라(la)”곧 “악했다”고 한다.(7절) 그래서 하나님이 그의 악함으로 인해 그를 죽음으로 심판하셨다고 한다. 그런데 둘째 아들 ‘오난’역시 세상처럼 살았다. 죽은 형을 대신의 형수인 다말과 결혼해 장자인 형의 후손을 이어야할 사명이 있었지만 모든 것을 무시했다. 하나님의 말씀에도 순종하지 않았고, 또 형제에 대한 도리를 다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직접 형의 자리를 대신해 장자가 되고 싶은 탐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 일로 하나님은 오난까지 죽이셨다.(10절)
유다는 세상으로 나가, 세상처럼 살며, 세상의 기준대로 너무 잘 살고 있는 것처럼 느꼈을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보실 때, 이 모든 것은 전부 “악”이었다. 그래서 하나님의 심판이 죽음으로 임했다. 오늘 말씀에서 그 기준이 “하나님이 보시기에”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세상이 보는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시는 기준에 맞추면서 살아야 한다. 이것이 또한 “선”의 참된 기준이 되기도 한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으면 그것이 ‘선’이고, 하나님이 보시기에 안 좋으면 그것이 ‘악’이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안 보이기에, 우리 역시 그 하나님의 눈을 속일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행위와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신다.(전12:14절)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님이 자신을 보지 않는 것처럼 맘대로, 겁 없이 살아간다. 믿는 사람조차 말이다. 특히 하나님의 백성은 자신의 죄가 감추어질 수 있다는 착각을 버려야 한다. 하나님이 언제 어느 때나 항상 보고 있다는 “코람데오”의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 그래서 그 하나님 앞에서 부끄럽지 않는 정직한 삶을 살아야 한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세상의 정욕과 탐심에 타협하지 않는 믿음과 순종의 삶을 살아야 한다. 지금 이 순간도 하나님이 나를 보고 계신다. 여러분은 이런 영적인 것을 인정하고 느낄 수 있는가? 우리는 그 하나님 앞에 아무것도 숨길 수 없다. 그리고 하나님이 보시는 전지적인 시점에서 우리도 그것이 옳은 줄 알고 선택하여 잘 행할 수 있기를 바란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다고 하실 그 때까지 선한 일에 힘쓰는 하나님의 백성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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