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막14:32-42
제목:겟세마네의 기도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밤에 있었던 일이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만찬을 하신 후에, 겟세마네 동산에 오르셔서 기도하셨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읽다보면 우리는 예수님의 행동에서 두 가지 의문점이 생긴다. ①예수님은 왜 십자가 때문에 고민하고 슬퍼하셨는가? ②예수님은 왜 피곤한 제자들에게 기도를 요구하셨는가?
▶(1)예수님은 왜 십자가 때문에 고민하고 슬퍼하셨는가?
33-36절을 통해 예수님이 십자가를 붙들고 씨름하는 모습 속에서 <십자가가 얼마나 무섭고 고통스러운 것인가>를 깨달아야 한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저주였다.(신21:23, 갈3:13) 십자가는 본래 <죄인된 우리가 받아야 할 저주>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죄인됨을 인정하는 성도에게 <십자가>는 아픔이고, 고민이어야 한다. 왜인가? 십자가의 길은 남과 싸우는 길이 아니라, 내가 죽어지는 길이고, 상대가 죽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죽어져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아픔이고 고민이다. 십자가는 내가 죽어지는 것이다. 겟세마네는 주님이 십자가를 붙들고 씨름하신 곳이다. 우리의 삶에도 십자가 붙들고 씨름하는 겟세마네가 있어야 한다. 여러분의 가정과 일터와 교회가 십자가를 붙들고 씨름하는 겟세마네가 되어야 한다.
▶(2)예수님은 왜 피곤해 하는 제자들에게 기도하기를 요구하셨는가?
제자들의 상태는 굉장히 피곤해서 눈을 뜰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도 주님은 그들에게 깨어 기도할 것을 요구하셨다. 주님은 그들이 피곤한 것을 모르셨는가? 그런데 왜 기도를 요구하는가? 주님이 기도하라고 말씀하신 것은 제자들의 피곤함을 몰라서가 아니다. 그런데 피곤함을 아시면서도 기도를 요구하시는 것은, 주님이 뭘 몰라서가 아니라, 제자들이 뭘 모르고 있는 것이다. 제자들은 몇 시간 후에 일어날 일을 모르고 있다. 그러므로 주님이 뭘 몰라서 기도하라고 요구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무지해서, 우리가 뭘 모르고 있기 때문에 깨어 기도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주님이 말씀하실 때는 다 이유가 있다. 주님이 하시는 말씀을 <오늘의 말씀>으로만 들으면 안된다. 오늘의 말씀으로만 들으면 이해가 안 된다. 그런데 우리는 설교 들을 때 어떤 마음으로 듣고 있는가? <지금 필요한 이야기>를 들으려고 한다. 그러나 나는 오늘의 문제 때문에 왔지만, 주님은 더 나은 내일을 위해서 말씀하신다. 주님께서 왜 제자들을 겟세마네 동산으로 데리고 가셨는가? 고민이 되어 죽게 되었다고 하시면 혼자 기도나 하시지, 왜 제자들을 데리고 가셨는가? 알고 보니, 주님이 기도할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제자들이 기도해야 할 일”이었던 것이다. 주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은, 우리를 몰라서가 아니라, 우리를 위해서이다. 하나님께서 어떤 말씀을 하시던지 그 말씀은 내 형편처지를 모르고 하시는 말씀이 아니라, 다 이유가 있어서 하시는 말씀, 나를 위해서 하시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나를 위해서 하시는 말씀으로 받으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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