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마가복음 12:13-17
제목: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지난 토요일 말씀을 보시면 예루살렘 성전에서 장사하고 있는 그들을 내어 쫓으시면서 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하셨던 예수님을 보고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 라고 예수님께 질문을 합니다. 이에 대해 에수님께서는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 라는 질문으로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의 질문을 벗어났습니다. 하늘로라고 하면 왜 안 믿느냐고 할것이고 사람이라고 하면 사람들의 비난을 받아야 하니 그냥 모르겠다고 다들 도망가버립니다. 챙피를 당한거죠? 그런데 그들이 이 챙피에 대한 반격으로 이제는 예수님을 책 잡으려고 바리새인과 헤롯당 중에서 사람을 몇을 예수님께 보냅니다. 지금 바리새인과 헤롯당이 함께 했다는 사실을 주목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평소 같으면 절대 상종도 하지 않는 사람들이였습니다. 바리새인은 경건파 유대인이고. 헤롯당은 로마의 제국에 협조하는 정치인들이였습니다. 그러니 꼭 그 의미가 정확한건 아니지만 독립운동가와 친일파와 같은 존재들이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독립운동가와 친일파가 함께 모여 예수를 잡으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참 대단한 사람들입니다. 공동의 목표를 위해서라면 자신들의 정치 신념조차 무너뜨리는 무서운 사람들, 여기에 무서운 인간의 죄악상이 보여집니다. 여기서 책을 잡다라는 말은 사냥을 위해 잡아 추격한디 라는 말로 꼬뜨리를 잡아 무너뜨리기 위해 사력을 다하는 그들의 노력을 의미입니다. 그들도 이번에는 준비를 단단히 해왔습니다. 언뜻 들어도 그 질문이 기가 막힙니다. 성도님들 유대인들이 얼마나 대단한지 아시죠? 이 세상 1%도 안되는 유태인들이 세계를 재패하고 있는 이유와 근거를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대단한 머리들입니다. 이 좋은 머리들을 다른 데 썼으면 좋았을 텐데 예수를 어떻게 잡아 죽일까를 연구합니다. 아쉽죠? 그들이 고심해서 만들어 낸 질문이 무엇입니까? 바로 이겁니다. 15절인데요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니까 옳지 아니하니이까?” “우리가 바치리이까 말리이까” 했습니다. 완벽한 올무에 예수님을 빠드린 것처럼 보입니다. 바치라고 하면. 민족정신이 없는 시대에 동조하는 사람이라고 폄하할꺼고 바리새인들이 들고 일어나 어떻게 저런 사람이 이스라엘의 메시야냐 할꺼고.. 데모를 할꺼고... 바치지 말라고 하면. 헤롯당이 들고 있어나 로마에 신고를 해서. 저 사람이 로마체계를 비판한다고 할 심상이였을 것입니다. 완벽한 계략입니다. 어쩜 머리가 이렇게 좋죠.. 인간의 완악함이 들어나는 순간입니다.
그런데 성도님들 우리 예수님은 머리가 더 좋으십니다. 아니 좋다는 말로는 표현이 안됩니다. 고린도전서 1:25 말씀처럼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아멘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의 마음을 꾀 뚫어 보시고 인간의 지혜를 넘어 인간을 다스리시는 완벽한 지혜를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러므로 유한한 인간이 지혜롭지 못한 인간이 지혜로운 하나님을 평가하고 판단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임을 기억하셔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대답이 걸작입니다. 15절에서 예수님은 이들의 외식함을 아시고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다가 내게 보이라 하셨습니다. 그러자 그들이 가져왔습니다. 16절 말씀에 보시면 ”가져왔거늘“ – 그들이 멀리 사람을 시켜서 가져온게 아니라 아마 주머니를 뒤져서 데라니온 하나를 가져왔을 것입니다. 그 데라니온은 손쉽게 찾았을 입니다. 왜냐하면 그들도 지금 사용하고 있는 동전이였습니다.
그 동전 하나를 받아 드신 예수님께서는 ”이 형상과 이 글이 누구의 것이냐 이르되 “사람들이 대답합니다.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이미 모든 답이 다 되었을 것입니다. 데라니온은 로마 제국의 통일된 화폐입니다. 이 동전의 앞 면에는 월계관을 쓴 황제의 흉상이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디베료(Tiberius)가 황제였으므로 그의 흉상이 그려져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황제 디베료,신적인 아구스도,존엄한 아들’ 이라는 거창한 문구가 새겨져 있고, 그 뒷면에는 ‘최고의 사제’ (Pontifex Maximus, 폰티펙스막시무스라는 문구 와 함께 황태후 리비아(Uvia)의 화상이 있고,그 오른편에는 올림피아의 긴 건물이 있고,왼편에는 올리브 나무가지가 있어서 그녀를 평화의 화신으로 묘사했습니다. 결국 이 동전에 새겨진 그림과 글귀들은 모두 황제를 숭배 하기 위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동전을 들어 보이시면 하시는 말씀이 17절 말씀입니다.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그들이 예수께 대하여 매우 놀랍게 여기더라 이것으로 상황은 끝이 났습니다. 바리새인들아 너희들도 이 동전을 사용하고 있지 않느냐? 가이사를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너희들은 지금 이 동전을 사용하고 있지 않느냐? 그러므로 이 동전의 주인인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당연하다. 이렇게 말씀하심으로 나라의 존재. 나라의 가치를 인정하신 것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조국이 있다는 말이 그래서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통치하시기 위해 나라. 국가 왕과 권력자 권위자들을 세우셨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세우신 칼을 가지고 있는 자들입니다. 물론 우리가 아는 것처럼 그들은 완벽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권위를 인정하셨습니다. 앞으로 그 높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더 큰 기준과 방법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직접 물으실 것입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들은 나라를 위해 기도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는 세상의 방법을 따르라는 것입니다. 일반 도덕이 있고 질서와 법치주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제도와 법을 지키는 것이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것은 세상의 의무이고 도덕이고 법칙이기에 이 모든 것을 잘 지키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칭찬받을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가이사의 것을 잘 했다고 해서 하나님께 칭찬 받을 근거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가이사에 것은 가이사에게 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어떤 것을 말씀하셨습니까? 바로 그렇다면 이제는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바치라는 것입니다. 이건 세상과 다른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구원 방법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그게 바로 우리들입니다. 우리와 같이 연약한 사람을 살리시는 하나님의 말씀 바로 우리가 그 말씀대로 하나님의 방법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고 이런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칭찬하신 다는 것입니다.
성도님들 어떻게 사셔야 겠습니까? 물론 하나님께도 칭찬받고 이 세상에서도 인정받고 사시면 더할 나위 없으시겠죠? 그러나 하나님과 이 세상은 충돌하게 되어 있습니다. 아직 그런적이 없으시다구요. 성도님들 아직 제대로 살지 않아서입니다. 설마 우리 예수님께서 넝담 하셨겠습니까? 아님 거짓말 하셨겠습니까? 아님 모르시고 하시는 말씀이겠습니까? 분명히 너희를 속이려고 하는 거짓 선지자들이 나타날 것이고 너희가 금생과 내세에 복을 많이 받되 고난과 함께 받는다고 하셨습니다. 받을수도 있으니 조심하라가 아니라 받을 거야 고난이 있을 거야 그러니 기도해야 되. 이렇게 말씀하신 장면입니다.
성도님들 세상은 우리 믿는 사람들을 가만두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믿는 사람들이 제대로 살면 자기들의 죄악이 너무나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이 세상에서는 세상의 법을 따르며 살되. 그러나 궁긍적으로는 하나님의 생명의 성령의 법이 우리를 지배하도록 하나님의 법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명령이자 그리스도인의 본질입니다. 성도님들 바리새인들과 헤롯당이 함께 모여 예수님을 옭아 맬려고 하는 시도는 이렇게 헛된 것으로 끝이 났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지금도 우리를 시험합니다. 그럴때에 우리가 어떤 태도를 취해야 겠습니까? 세상에서는 세상의 법을 하나님 나라에서는 하나님 나라의 일을 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하루도 하나님이 주시는 사명대로 이 세상에서 하나님께 칭찬받는 귀한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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