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삼상27:1-12
제목:믿음이 약해지면
첫째, 믿음이 약해지면 생각이 병들게 된다.
다윗은 자기가 분명 언젠가는 사울의 손에 붙잡힐 것이니, 블레셋 땅으로 피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1절) 사울 왕이 블레셋을 두려워하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죠? <다윗이 피해야 할 곳은 하나님>이었다. 그리고 하나님께 피하면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임했을 것이다. 다윗은 지금까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았다. 그래서 때마다 일마다, 하나님의 보호 속에서 사울의 공격과 추격을 이겨낼 수 있었다. 심지어 하나님은 도망자 다윗에게 추격자 사울을 죽일 수 있는 기회를 두 번이나 주셨다. 그러므로 다윗은 항상 자신을 보호하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께서 앞으로도 계속 지키시고 인도하실 것을 믿어야 했다. 그러나 믿음이 약해지자, 하나님이 보호해주신다는 생각이 없어졌다. 그렇게 되었을 때 나타나는 결과가 무엇인가? 기도하지 않는 것이다. 왜요? 생각이 병들었거든요. 생각의 방향이 하나님을 향하지 않으니 당연히 기도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연약하여 때때로 하나님을 의심할 수 있다.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환경 앞에서 원망과 불평을 털어놓을 때도 있다. 그러나 참된 신앙인은 어떤 고난 속에서라도 모든 생각의 결론을 믿음에 유익한 방향으로 결론지어야 한다. 혹시 고난 중에 있는가? 그렇다면 성도의 생각이 어느 쪽으로 흘러가야 하는가? “내가 이러면 안되지. 기도해야겠다. 내가 이러고 있으면 안되지. 말씀을 붙들어야겠다.” 하나님을 붙들면 생각이 달라지고, 삶의 결론이 달라진다. 고난 중에 사람의 소리를 듣고 있으면 답이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있으면 말씀 속에서 답을 찾게 되고, 길을 찾게 된다. 믿음은 모든 문제 앞에서 주파수를 하나님께 맞추는 것이다. 성도가 하나님께 주파수를 맞추면 어떻게 되는가? 생각이 달라진다. 누가 내게 손해를 입혀도 “보상은 하나님께 받자.” 이렇게 결론 내린다. 누가 나를 억울하게 해도 어떻게 결론 내리는가? “위로는 하나님께 받자.” 성도는 하나님이 이루실 결국을 믿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결국에는 이기게 하실 것을 믿고, 어떤 경우라도 믿음에 유익한 쪽으로 생각해야 한다.
둘째, 믿음이 약해지면 현실도피를 하게 된다.
다윗은 믿음이 약해지자, 생각만 병든 게 아니라, 2절에 보면, 병든 생각을 실제로 행동으로 옮겨서 블레셋땅으로 도망친다. 그런데 다윗이 도망간 곳인 가드가 어디인가? 다윗이 죽였던 골리앗의 고향이다. 골리앗을 죽인 다윗을 가드사람들이 반겨주겠는가? 믿음이 약해지면 올바른 판단을 못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약속이 있는 곳, 하나님의 축복이 있는 곳을 떠나 엉뚱한 곳으로 가게 된다. 믿음이 약해지면 성도의 자리를 지킬 수가 없다. 그런데 도망친 결과가 무엇인가? (1)하나님의 침묵이다. 1년 4개월간 하나님이 아무 말씀도 안하신다. 이제는 다시 돌아가라는 말씀도 안하신다. (2)더 큰 고난을 당하게 된다. 삼상30장에 보면, 다윗이 아기스왕을 도우러 자리를 비운 사이, 아말렉에게 공격당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부하들에게 죽임당할 위기에 놓였다. 고난을 피하려다가 더 큰 고난을 만나게 되었다. 그러므로 도망가는 것이 상책이 아니다. 고난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①고난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②고난은 남의 고난보다 내 고난이 더 크게 느껴진다. ③고난은 과거의 고난보다 현재의 고난이 더 힘들게 느껴진다. ④고난은 선택이 아니라, 당하는 것이다. 그런데 성경이 뭐라고 하는가? “여러분이 지금 잠시동안 여러 가지 시련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슬픔을 당하게 되었다 하더라도 기뻐하십시오.”(벧전1:6-7/새번역) 우리가 고난을 받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①하나님이 계획하신 일이기 때문이다. ②믿음으로 살려고 하면 반드시 고난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피하지 말고 끝까지 인내해야 한다. 안타까운 것은 전쟁 후 사울이 죽고 다윗이 유다의 왕이 된다. 즉 1년 4개월만 참으면 되었는데, 그 고난을 견디지 못하고 도망치고 말았던 것이다. 도망치지 말고 하나님이 이루실 결국을 붙들고 끝까지 인내합시다.
셋째, 믿음이 약해지면 다른 은혜를 구하게 된다.
5절에는 충격적인 단어 두 개가 나온다. 하나는 “은혜”라는 단어이고, 다른 하나는 “당신의 종”이라는 말이다. 다윗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 구하는 사람이어야 했다. 그런데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지 않고, 이방왕 아기스의 은혜를 구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게다가 그는 자신을 아기스의 종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는 하나님의 종이어야 하는데, 아기스의 종을 자처하는 것이다. 그래서 혹시 아기스의 은혜를 입지 못할까봐, 아기스의 도움을 받지 못할까봐 두려워서, 그에게 신임받고자 거짓말을 수시로 한다.(9-11절) 그술, 기르스, 아말렉의 마을들을 쳐서 양식을 구하는 일을 하는데, 아기스왕에게는 유다땅을 쳤다고 거짓말을 한다. 그리고 그 거짓말이 들통날까봐 이방인들을 남녀를 막론하고 하나도 살려두지 않는다. 왜 이러는 것인가? 아기스의 신임을 얻기 위해서(12절)이다. 믿음이 약해지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아닌, 사람의 은혜를 구하면서, 사람의 신임을 얻고자 살인도 하고, 거짓말도 하는 사람이 되고 만 것이다. 성도는 사람의 신임, 사람의 도움을 얻는 것보다, 하나님의 신임,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야 한다.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거니와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안전하리라”(잠29:25) 어떤 상황 속에서도 사람의 은혜가 아닌 하나님의 은혜를 구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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