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이사야 7:1-16
제목: 임마누엘, 우리와 함께 계시다
오늘부터 이번주는 성탄주간 특별본문이 시작됩니다. 기억안나시겠지만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찾아와 주셔서 말씀해 주시는데요 이스라엘의 역사는 한 나라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을 통해 믿음의 전 인류가 구원을 받게 되는 과정을 그립니다. 마치 아브라함이 한 사람이지만 한 사람 아브라함을 통해 큰 역사를 이루어 가셨던 것처럼 이스라엘의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님을 통해 우리는 구원받은 백성이 되었고 하나님의 자손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구약을 배우고 이스라엘의 역사를 배우고 성경의 인물들을 통해 하나님의 언약을 배워나가게 됩니다. 그래서 구약에 이스라엘의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그 역사를 배워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오늘 본문 1절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웃시야의 손자요 요담의 아들인 유다의 아하스 왕 때에 아람의 르신 왕과 르말리야의 아들 이스라엘의 베가 왕이 올라와서 예루살렘을 쳤으나 능히 이기지 못하니라” 유다에는 많은 왕이 있었습니다. 북이스라엘에는 전부 악한 왕만 있었던 것과는 달리 유다에는 선한 왕도 있었고 악한 왕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유다왕은 그래도 처음에는 나뻤다가 좋았거나 처음에는 좋았다가 나뻤거나 이런 왕들이 종합적으로 나쁘다 좋았다 이렇게 평가할수 있었는데 그런데 유다의 12대 왕 아하스는 유다 왕 중에 유일하게 악하기만 한 왕으로 기억되는 최초의 왕입니다. 그래서 아하스 때부터 유다는 망하게 되는 길을 걷게 됩니다. 아하스왕은 자기 아들을 죽이면서 까지 몰렉의 신들을 숭배한 왕이고 하나님의 성전의 기물을 다 녹여서 우상 제단으로 가득 채웠던 유다역사상 가장 악한 왕 이 바로 아하스의 일생입니다. 이 일대기를 보고 있으면 마치 고구마 열 개 먹은거 같은. 답답하기 그지 없는 그런 왕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유다를 심판하시는데요. 특이하게도 아람의 르신 왕이 북이스라엘의 베가 왕과 함께 유다를 침공합니다. 얼마나 악했으면 피하고만 싶었던 동족끼리의 비극을 준비하시겠습니까? 마치 신라가 백제를 치기 위해 당나라를 끌여 들였던 것처럼 민족비극이 일어납니다. 그냥 아람왕이면 덜 억울할텐데 북이스라엘과 함께 쳐들어 온다는 사실이 씁쓸하기만 합니다.
그래서 2절에서 “어떤 사람이 다윗의 집에 알려 이르되 아람이 에브라임과 동맹하였다 하였으므로 왕의 마음과 그의 백성의 마음이 숲이 바람에 흔들림 같이 흔들렸더라” 어떤 사람이 아람과 북이스라엘 연합군이 유다를 침공했다는 소식을 듣고 다윗의 집에 알립니다. 여기서 말하는 다윗의 집이라는 말은 아하스왕에게 정신차렸으면 하는 저자의 기대를 담은 말입니다. “아하스야 넌 다윗의 가문이잖아. 넌 그렇게 살면 안되” 이런 마음입니다. 어떤 사람이 북이스라엘과 아람왕의 침공을 알리자 “아람이 에브라임과 동맹하였다 하였으므로” 회개하고 나왔더라 이렇게 오늘 본문이 끝이 났어야 하는데 왕의 마음과 그의 백성의 마음이 숲이 바람에 흔들림 같이 흔들렸더라 이러고는 회개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됐는지 아십니까? 회개하지 않고 버텄던 아하스 왕과 유다는 무려 10만명이 죽고 20만명이 북이스라엘의 포로로 끌려 가는 비극을 당합니다.
성도님들 이래서 지도자가 중요한 겁니다. 싫어도 지도자를 위해서 기도해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지도자가 어떤 판단을 하느냐에 따라 우리는 다 망할수도 다 잘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나라를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우리 자녀들이 다니는 교회학교와 속한 구역을 위해서 기도해야만 합니다. 기도합시다. 아멘
3절입니다. “그 때에 여호와께서 이사야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아들 스알야숩은 윗못 수도 끝 세탁자의 밭 큰 길에 나가서 아하스를 만나” 그 때에 하나님은 다시 말씀해 주셨는데요. 여호와께서 이사야를 “너와 네 아들 스알야숩을 아하스”에게 보내라고 하십니다. 성경에 보시면 스알야숩 1)이렇게 각주에 남은 자가 돌아오리라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이사야의 이름 뜻이 뭔지 기억 나십니까? 여호와가 구원자이시다. 그러니까 그 이름에 메시지가 있습니다. “이사야와 스알야숩” 여호와가 구원자이시니까 남은 자는 돌아오리라. 이 장소가 어딥니까? 성경에는 쓸데없는 기록이 없다고 했죠? 윗못 수도 끝 세탁자의 밭 큰길에서 여기가 어딘줄 아십니까? 바로 실로암 빗물 저장소입니다. 수요예배 때 했었는데요 이스라엘은 물이 귀한 나라입니다. 특히 높은 고산지대인 예루살렘은 더요. 그래서 북이스라엘과 아람 왕 연합군이 물러가고 다시 준비되는 2차 공격 앞에 유다왕 아하스는 뭘하고 있었던 겁니까? 유다가 망한 이유는 물 때문이라고 생각했던 겁니다. 우리가 진 것 보급 때문이야 이렇게 생각했던 겁니다. 잘못 생각한거죠? 먹는 물이 문제가 아니라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께 돌아가야 했었는데 물이나 찾고 있는 아하스는 결국은 이사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아람왕을 견제하기 위하여 앗수르에게 없는 국가 살림을 다 쪼개서 많은 돈을 주고 도움을 청했는데 결국은 앗수르의 배신으로 인해 죽임을 당하고 아하스 왕은 비참한 죽임을 당합니다. 더 기가막힌 것이 왕이 죽었는데 백성들이 슬퍼하지 않았다고 할 정도로 아하스 왕은 가장 비참한 인생을 살았던 다윗의 집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이사야가 아하스에게 회개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라고 했지만 아하스의 반응이 12절입니다. “아하스가 이르되 나는 구하지 아니하겠나이다 나는 여호와를 시험하지 아니하겠나이다 한지라” 대단히 겸손한 말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시험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유명한 말씀인 14절이 등장을 합니다. 성탄절이면 꼭 등장하는 본문인데요 이 본문을 마태가 인용해서 예수님의 탄생을 전했습니다. 14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아멘 임마누엘이란 말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말입니다. 세상에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니요? 구약의 이스라엘로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기가막힌 징조입니다. 도저히 함께 할수 없는 인간의 악함을 보시고 도저히 함께 하지 않으시겠다고 하셨던 하나님이 이제는 임마누엘 우리와 함께 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 임마누엘의 하나님 때문에 우리가 살고 있는 것입니다. 아멘
성도님들 이런 기가막힌 징조가 선포되는 때가 언제입니까? 다윗 왕 때입니까? 솔로몬왕 히스기야 왕처럼 좋은 왕이 있던 시기입니까? 아닙니다. 가장 악한 왕 가장 어두 웠던 때 아하스때에 있었던 일입니다. 그 약속이 언제 이루어졌습니다. 그게 성탄절이고 그건 내일 본문이니까 내일 말씀드리겠습니다.
성도님들 이 성탄을 기다리는 대림절 넷째주 하나님의 뜻을 구하시길 소원합니다. 예수라는 이름은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해 주실 분이십니다. 예수님의 직분 그리스도는 메시야라는 말의 헬라어입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 아기 예수님으로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분이시기에 우리에게 말로써 글로써 이렇게 말씀으로 우리와 함께 계시는 분이십니다. 그 하나님의 임마누엘로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구원을 얻고 우리에게 힘이 되고 우리에게 능력이 되는 줄로 믿습니다. 성도님들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은 성막에만 성전에만 계신다고 착각했습니다. 아니 그곳에만 계셨으면 했겠지만 하나님은 온 천하에 주재가 되시고 만왕의 왕이 되시는 분이십니다. 지금으로 하면 하나님은 교회에만 계시는 분이 아시시고 예배시간에만 힘을 쓰시는 분이 아니시고 성경속에만 계시는 분이 아니시라 우리의 삶 속에서 전영역에서 늘 함께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이 대림절 성탄을 기다리는 이 주간에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시고 우리와 함께 하시는 우리의 함께 계시는 임마누엘되신 하나님께 우리의 인생의 주권을 보좌를 넘겨드리는 복된 우리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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