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삼상15:17-35
제목:하나님이 좋아하시는 사람
▶첫째,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 잘하는 사람을 좋아하신다.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하니”(22-23절) 하나님은 소나 양을 잡아 제사를 드리고, 많은 헌금을 드리고, 재산을 팔아 헌납하는 것보다 <하나님 말씀 한 마디라도 말없이 순종하는 것>을 더 좋아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왜 순종하지 못하는가? 내 생각을 내려놓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울은 자기가 보기에 괜찮은 것, 살진 것, 가치있는 것은 살려두고, 가치없는 것은 죽였다. 즉, 자기 입맛에 맞추어 순종했던 것이다. 하나님의 뜻에 따른 순종이 아니라, 내 생각, 내 뜻에 따른 순종을 한 것이다. 내 생각을 내려놓지 못하는 상태로는 온전한 순종을 할 수 없다. 말씀이 말씀되지 못하는 이유는 내 생각이, 내 자아가 살아 있어서, 말씀을 말씀답게 수용하고 순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말씀에 내 생각을 섞고, 말씀을 내 생각의 울타리 안에 가두기 때문에 순종다운 순종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것,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원한다면 자기생각을 꺾어버려야 한다. 참된 순종은 내 생각을 꺾고 내려놓는 것에서 시작된다. 날마다 말씀 앞에서 자기생각을 꺾고 순종하는 성도가 되라.
▶둘째. 하나님은 세상을 향한 욕심을 포기하는 사람을 좋아하신다.
“어찌하여 왕이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하고 <탈취하기에만 급하여> 여호와께서 악하게 여기시는 일을 행하였나이까”(19절) 여호와께서 악하게 여기시는 것은 <불순종>을 의미한다. 그런데 왜 불순종을 했는가? “탈취하기에만 급하여”이다. 불순종의 원인이 바로 이것이다. “급하여”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이트”인데, “탐욕스럽게 돌진하다”는 뜻이다. 마치 독수리가 공중에서 먹이를 덮치듯이, 사울은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얻은 전리품에 욕심을 내었다는 뜻이다. 즉 사울은 자기의 탐욕을 위해서 말씀에 불순종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사울의 실패는 표면적 사건으로는 아말렉 사건이 결정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원인은 세상을 향한 욕심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세상을 향한 그의 욕심은 아말렉이 소유한 것들이 눈에 좋게 보였던 것이다. 그래서 그것을 소유하고 싶어하는 탐심 때문에 말씀에 순종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므로 사울이 망한 것은 세상을 향한 욕심을 포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울은 사무엘의 책망을 듣는 순간, “내가 범죄했다”(24절)고 말하였지만, 그의 회개는 진실한 회개가 아니었다. 왜냐하면 세상을 향한 욕심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30절에 보시, 내가 범죄하였을지라도, 내 백성의 장로들 앞에 이스라엘 앞에서 나를 높여달라고 요청한다. 그는 왕이라는 세상권력을 향한 욕심을 버리지 못했다. 그래서 하나님이 세우신 다윗에게 순순히 왕위를 물려주지 못했던 것이다. 사울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구원받은 성도 역시 세상을 향한 욕심을 포기하지 않으면, 육신의 정욕을 포기하지 않으면 결코 믿음생활에 성공할 수 없다. 왜인가? 육신의 생각은 절대 하나님의 뜻에 굴복할 수 없기 때문이다.(롬8:7-8) 물과 기름이 결코 섞일 수 없듯이,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의 뜻과 정반대편에 서 있다. 그래서 육신의 생각을 가지고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고,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
▶셋째. 하나님은 사람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를 좋아하신다.
삼상13장에서 사울은 이스라엘의 군사숫자보다 블레셋의 군사숫자가 많음을 보고 두려워했다. 그는 자기를 왕으로 세우신 분이 누구인지를 자꾸 망각했다. 11장에서 사울이 암몬군대를 이겼던 것은 암몬군대가 아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을 잃어버리고, 사람에 대한 두려움에 빠지니까 마음이 급해서 사무엘 대신에 자기가 제사를 인도하는 실수를 저지르게 된다. 또 오늘 본문에서도 그는 사무엘에게 책망을 받게 되자, 24절에 “내가 여호와의 명령과 당신의 말씀을 어긴 것은 내가 백성을 두려워하여 그들의 말을 청종하였음이니이다” 여기서 사울이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을 어기는 것보다, <백성을 더 두려워했다>는 자백에 주목해야한다. 하나님보다 사람을 더 두려워하고, 하나님보다 사람의 눈치를 더 살피는 사울의 모습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구원받은 성도가 두려워 할 것은 딱 3가지이다. ①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한다. ②내가 믿음 안에 바로 살지 못하는 것을 두려워해야 한다. ③내 주변사람들 중에 구원받지 못할 자가 생길까 두려워해야 한다. 이 3가지를 제외하고는 예수 믿는 사람은 결코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왜 사람을 두려워하면 안 되는가? 사람을 두려워하게 되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신앙의 기본 중 기본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다. 믿음은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두려워해야 할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즉, 믿음은 두려움의 대상을 바꾸는 것이다. 세상을 두려워하던 사람이 하나님만 두려워하는 사람으로 바뀌는 것이 바로 신앙생활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결코 성숙한 성도가 될 수 없다. 우리 모두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믿음으로 삽시다.
댓글 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