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심천사랑의교회

2022-11-22 큐티말씀 - 고난속에 깨달은 하나님의 마음(삼상2:1-11) - 김도완목사

사무간사22022.11.26 18:03조회 수 135댓글 0

    • 글자 크기

본문:사무엘상 2:1-11 

제목:고난속에 깨닮은 하나님의 마음  

 

성도님들 사무엘상 앞에 있는 성경이 뭔지 아십니까? 사사기였습니다. 기억이 나실지 모르겠지만. 사사기 마지막인 21장 25절이 이렇게 끝입니다.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그리고 사무엘상이 시작되는데요. 어제 목사님이 설명해 주신대로 에브라임 사람 엘가나 집안의 불임 이야기로 사무엘상이 시작됩니다. 밝고 경쾌한 이야기가 아니라 어둡고 침울한 이야기가 사무엘상의 시작입니다. 특이하게도 에브라임 산지에 살고 있지만 에브라임지파가 아닌 사람 엘가나 등장을 합니다. 역대상에 기록되어 있는 엘가나의 족보를 살펴보면 이 엘가나가 레위인 고핫 자손임을 밝힙니다. 그러기에 한나의 아들 사무엘이 선지자겸 제사장이 되어 이스라엘을 다스렸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사사기. 영적으로 너무 어두워서 더 이상 사람들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지 않는, 그래서 지금 레위인 이면서도 제사의 임무를 수행하지 않는 쉬고 있는 아니 제사일을 하지 않고 있는 엘가나가 등장을 하는 것입니다. 암울한 시대상이죠. 그것만도 암울한데 그에게는 두 아내가 있었습니다. 이것이 큰 문제인 것이, 레위인은 첩을 둘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시대적 흐름에 따라 하나님의 뜻이 아닌 자기의 욕심을 위해 살아 가고 있는 시대였음을 사무엘상이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욕심을 따라 살아가는 이 집에 문제가 있었는데 첫째 부인인 한나 그리고 둘째 부인인 부닌나. 이 둘째 부인에게만 자식이 있고 첫째 부인인 한나에게는 자식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둘째 부인이 첫째 부인에게 온갖 멸시와 조롱으로 박대합니다. 이 불임이라고 하는 문제가 그 당시 이스라엘에게는 하나님과의 단절을 뜻하는 단어였습니다. 마치 나병환자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성도님들 이걸 현대에 적용하면 문제가 아주 심각해 집니다. 성도님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이 문제는 구약시대에게만 통용되는 시대적 상징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인식해 주시길 바라고 그 가정을 위해 기도해 주시길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그 가정에 하나님이 아들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사무엘이라고 이름붙입니다. 사무엘이라는 이름 뜻이 “하나님께 구함”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 없어 제사도 없고 제사장도 없고 하나님의 말씀도 없고 하나님의 뜻을 아는 사람도 없는 어두운 시대 스스로 왕이 된 사사기 시대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은 사무엘이라는 아이를 통해 선지자와 제사장을 삼으시고 하나님의 뜻을 밝히시고 하나님 없이 죽어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보이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렇게 시작되는 아주 중요한 성경의 한 부분입니다. 

 

오늘 본문 1절이 이렇게 시작됩니다. “한나가 기도하여 이르되 내 마음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내 뿔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높아졌으며 내 입이 내 원수들을 향하여 크게 열렸으니 이는 내가 주의 구원으로 말미암아 기뻐함이니이다” 성도님들 생각해 봐야 할 문제가 있습니다. 한나의 소원이 아들, 자녀를 갖는 것이었다면 한나는 절대로 이렇게 어렵게 난 그 아들 사무엘을 하나님께 바치겠다는 서원을 하지 못했을 것이고 그 서원을 지키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들을 주시자 약속 한 대로 젖 때기 까지 기르고 서원한대로 하나님께 바칩니다. 그래놓고 오늘 본문에서 처럼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인간의 관점으로 보면 매정하기 그지없고 엄마 자격도 없는 모성애라고는 전혀 없는 정신나간 사람이겠죠? 그러니 우리는 본문을 통해 한나가 원하는 건, 아들이 아니였음을 알수 있습니다. 바로 한나는 아들을 갖고 싶은 것이 아니라 한나는 자식이 없는 것보다 하나님의 관계가 불통인 것이 더 슬프고 괴로웠다는 것을 보여주는 본문입니다. 그래서 한나에게 자녀를 주자 그 자녀를 주셔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님들 이 마음이 이해가 되십니까? 한나가 원한 건 물질이 아닙니다. 아무리 남편이 분깃을 많이 줘도 더 사랑해줘도 자녀 없어도 나로 만족하라는 남편의 위로에도 한나의 마음에는 하나님과의 해결되지 않는 공허함으로 인해 괴로워하다 그 관계가 회복되자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손가락질을 당하고 욕을 먹고 비난을 받았으면 오늘 노래에서 원수라고 하고 원수들이 하는 교만한 말이라고 했을까요? 참다 참다 아들을 주시자 하나님은 너희들의 행동을 달아 보신다. 임신하지 못하던 자가 일곱자녀를 낳았고 너희들은 많은 자녀를 뒀지만 쇠약할 것이라고 그들을 비난할까요? 그 마음이 얼마나 슬펐으면 6절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스올에 내리게도 하시고 거기에서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7절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하셨을까요? 그러니 한나가 지금 구한 것은 자녀로 상징되는 신분, 재산, 물질이 아닌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임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성도님들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신다는 것이 왜 중요합니까? 우리가 노력하지 않고 수고하지 않았음에도 거저 주시는 것이라 그렇습니까? 물질이 생기고 관계가 회복되고 건강이 회복되는 것에 대한 감사입니까? 물론 이런 것도 있지만 충분히 감사할 내용이지만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신 다는 것은 그걸 넘어서 하나님이 나와 관계를 맺으신 다는 것에 대한 확답이자 확증이기에 기도응답은 성도들에게 너무나도 중요한 것입니다. 아 물질 주셔서 좋네!~ 아 건강 주셨네 행복하네 이런게 아니라 하나님이 내 기도에 관심을 가지고 응답해 주셨다는 것은 앞으로 어떤 어려움을 만나도 앞으로 무슨 일을 당해도 나를 도와주시고 나에게 관심을 가지고 계신 하나님이 계신기에 무슨 걱정이냐는 성도의 자신감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한나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깊은 고난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소통하지 못해 안타까워 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마치 자녀가 없어 안타까워 하는 자기 모습을 통해 하나님의 아픔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한나는 자기의 기도를 들어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러다 자기를 넘어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구원자로 이스라엘을 넘어 전 인류를 구원하실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고 그 구원의 기쁨을 노래하고 노래합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성도님들 오늘 본문 11절은 이렇게 끝이납니다. 엘가나는 라마의 자기 집으로 돌아가고 그 아이는 제사장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기니라 아멘.  

 

성도님들 어제도 목사님이 지적하셨지만 이 이야기는 불임가정이 기도 많이 해서 아들을 낳은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러니 어떠한 환경에서도 기도 많이 해라 이렇게 적용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아무리 남편 엘가나가 한나를 사랑했어도 자녀를 낳은 브닌나 보다 더 많은 분깃을 챙겨줬어도 채울 수 없는 하나님 없는 공허함을 가지고 살아가는 한나의 이야기, 가정의 이야기, 결국은 비참한 나라의 이야기입니다. 하나님 없이 사는 백성 가정 개인이 얼마나 비참한 것인 지를 설명하고 설명하는 본문이자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다윗왕가의 시작을 알린다는 점에서 사무엘상은 너무나 중요한 성경입니다. 암울한 시대 암울한 가정 그리고 한나의 아픔으로 시작한 이 사무엘상이 어떻게 끝나는지 기억하죠? 바로 사울이 죽고 다윗왕이 진정한 이스라엘의 왕위를 계승한 것으로 끝을 맺고 사무엘하가 시작됩니다. 태초부터 하나님이 왕이 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왕을 인정하지 않고 왕이 없어서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는 사람들 앞에 하나님 없이는 개인도 가정도 나라도 전 인류도 안된다는 것을 분명하게 선포하는 사건이자 노래인 것입니다.

성도님들 우리가 지금 원하는게 환경입니까? 물질입니까? 자녀와 관계 때문에 기도하고 계십니까? 잘 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더 근본적으로 우리 하나님과의 관계를 생각하시는 우리들 되길 소원합니다. 하나님이면 충분합니다. 하나님이면 만족할 수 있는 삶. 이걸 추구하는 것이 성도요 하나님의 백성일 것입니다. 바라옵기는 사사 시대처럼 여전히 빛이 없이 왕이 없어 방황하는 이 시대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함으로 하나님만 바라며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그 관계 때문에 즐거워하는 우리 모두가 되길 간절히 축복합니다.

    • 글자 크기
2022-11-23 큐티말씀 - 두 가정의 아들 이야기(삼상2:12-26) - 김도완목사 (by 사무간사2) 2022-11-21 큐티말씀 - 은혜 안에 살려면(삼상1:19-28) (by 사무간사2)

댓글 달기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022-11-22 큐티말씀 - 고난속에 깨달은 하나님의 마음(삼상2:1-11) - 김도완목사 사무간사2 2022.11.26 135
955 2022-11-21 큐티말씀 - 은혜 안에 살려면(삼상1:19-28) 사무간사2 2022.11.26 149
954 2022-11-18 큐티말씀 - 죽임 당하신 어린양을 찬양하라(계5:1-14) - 김도완목사 사무간사2 2022.11.20 131
953 2022-11-17 큐티말씀 - 하늘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계4:1-11) 사무간사2 2022.11.20 153
952 2022-11-16 큐티말씀 - 주님이 원하시는 교회(계3:14-22) 사무간사2 2022.11.20 136
951 2022-11-15 큐티말씀 -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교회(계3:1-13) 사무간사2 2022.11.20 117
950 2022-11-14 큐티말씀 - 처음보다 나중이 좋은 교회 - 두아디라(계2:18-29) - 김도완목사 사무간사2 2022.11.14 141
949 2022-11-11 큐티말씀 - 복 있는 사람(계1:9-20) - 김도완목사  사무간사2 2022.11.14 147
948 2022-11-10 큐티말씀 - 복 있는 사람(계1:1-8)   사무간사2 2022.11.14 78
947 2022-11-9 큐티말씀 - 은혜와 지식에서 자라가라(벧후3:14-18) 사무간사2 2022.11.09 162
946 2022-11-8 큐티말씀 - 종말을 사는 성도의 자세(벧후3:8-13)  사무간사2 2022.11.09 151
945 2022-11-7 큐티말씀 - 말씀을 기억하라(벧후3:1-7) - 김도완목사 사무간사2 2022.11.09 150
944 2022-11-4 큐티말씀 - 건지시는 은혜(벧후2:1-8) - 김도완목사 사무간사2 2022.11.05 171
943 2022-11-3 큐티말씀 - 진리 위에 굳게 서려면(벧후1:12-21)   사무간사2 2022.11.05 172
942 2022-11-2 큐티말씀 - 실족하지 않으려면(벧후1:1-11)   사무간사2 2022.11.05 166
941 2022-11-1 큐티말씀 - 은혜 안에 살려면(벧전 5:1-14) 사무간사2 2022.11.01 144
940 2022-10-31 큐티말씀 - 고난이 주는 유익(벧전 4:12-19) - 김도완목사 사무간사2 2022.11.01 169
939 2022-10-28 큐티말씀 - 성도의 가정생활(벧전 3:1-12) 사무간사2 2022.10.28 147
938 2022-10-27 큐티말씀 - 성도의 사회생활(벧전 2:11-25) 사무간사2 2022.10.28 153
937 2022-10-26 큐티말씀 - 보배로운 산 돌(벧전 2:4-10) - 김도완목사 사무간사2 2022.10.28 69
이전 1 ...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73다음
첨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