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삼상1:19-28
제목:은혜 안에 살려면
첫째, 하나님이 기억하고 돌보시는 사람이 되라.
“하나님이 그를 생각하신지라”(19절)에서 <생각하다>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자카르>이다. 자카르는‘기억하다, 생각하다, 살펴 돌보다’인데, <가장 적합한 때에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도움을 주시는 자비로운 행동>을 의미한다. 여러분, 우리가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상황 속에 있다할지라도 하나님이 나를 기억해주시고, 생각해 주시면, 상황이 달라지고, 결론이 달라지고, 인생이 달라지게 되어있다. 한나가 하나님이 생각해주시는 사람이 된 원인이 무엇인가? 그가 고통의 문제 앞에서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을 의지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전심으로 찾고 의지하는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이시다. 힘든 문제가 있는가? 사람의 힘으로 안되는 문제가 있는가? 그럴 때 안되는구나 하고 중단하면 안 된다. 한나처럼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나를 기억해 달라고. 생각해달라고 구해야 한다. 왜인가? 하나님이 우리를 기억하시면 우리의 인생은 달라지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주님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시느냐>이다. 하나님이 알아주시고 기억해주시는 사람이 되어야 소망의 사람이 될 수 있다. 우리의 삶이 어려울 때 하나님이 기억하시고 생각해주시면 회복이 되는 것이다. 인생살이에 어려움이 있을 때 항상 “하나님, 당신의 사랑을 따라 나를 기억하소서. 나를 생각하소서.”이런 기도를 올림으로 날마다 하나님이 기억해주시고 생각해주시고 돌보아 주시는 인생 되시기를 축원한다.
둘째,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사람이 되라.
20절에 보면 아들의 이름을 사무엘이라 지었다. “내가 여호와께 그를 구하였다” 즉, 사무엘의 이름 뜻에는 “하나님께 구하여 얻은 아들, 하나님의 응답으로 얻은 아들”이라는 의미가 들어 있다. 우리는 사무엘이라는 이름 속에서 한나의 생각을 알 수 있다. 그게 무엇인가? 한나는 지금 간절히 기다렸던 아들을 낳은 기쁨과 감격과 흥분 속에서 무엇을 제일 먼저 떠올린 것인가? 내가 아들을 얻게 된 것은 <천신만고 끝에 얻게 된 행운>이라고 생각한 것인가? 아니다. 아들을 얻은 것이 <나의 인내의 결과>라고 생각한 것? 아니다. 아니면, 부부사이의 끊임없는 노력의 열매라고 생각했는가? 아니다. 한나는 기쁨과 감격과 흥분속에서 자기가 아들을 얻게 된 것이 다른 그 무엇도 아닌,<하나님의 응답,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한 것이다. 자기가 아들을 얻게 된 것이 자기의 노력이나 인내나, 행운 덕분이 아니라,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정확한 응답임을 분명하게 기억한 것이다. 즉 <사무엘>이라는 이름은 하나님의 응답에 대한 한나의 감사표현이다. 또 “이 아이를 위하여 내가 기도하였더니, 내가 구하여 기도한 바를 여호와께서 내게 허락하신지라”(27절) 사무엘을 얻은 것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응답이요, 은혜의 선물임을 고백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한나의 감사하는 고백을 귀히 여기시고 자녀를 더해주셨다. 우리 모두 한나처럼 우리를 여기까지 오게 하신 것이 내 힘이 아닌, 은혜임을 깨닫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사람이 되라.
셋째, 하나님과의 약속에 신실한 사람이 되라.
삼상1:11에서 한나는 하나님이 아들을 주시면 그를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서원했다. 그리고 구한대로 하나님께서 자녀를 주시자 서원한 것을 지켰다는 것이 오늘 본문 21-28절의 내용이다. 놀랍게도 한나는 그 약속을 조금도 바꾸거나 줄이지 않았다. “그의 평생을 드리나이다”라고 약속했던 것에서 조금도 줄이지 않고, 그 서원한대로 아이의 젖을 떼자마자, 아이의 인생 전부를 남김없이 하나님께 드렸던 것(28절)이다. 우리가 여기서 알게 되는 것은, 한나가 하나님과의 약속을 어쩔 수 없이 억지로 지킨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사실 한나는 사무엘을 끝까지 내놓지 않고 자기 품에 붙잡아둘 방법이 있었다. 민30:6-8에 의하면, 남편이 반대하면 아내의 서원이 무효가 되고, 죄가 없다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한나는 하나님께 받은 은혜가 크고, 또 하나님의 능력을 믿기에 그 서원을 지켰다. 하나님과의 서원을 지킨 한나에게 하나님은 세 아들과 두 딸을 더하여 주셨다.(삼상2:21) 그리고 사무엘은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는 선지자, 나라의 운명을 결정하는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다. 한나가 직접 데리고 애지중지 키운 것보다 하나님께 맡긴 것이 훨씬 더 사무엘을 위대하게 만들었다. 하나님은 약속하신 말씀대로 신실하게 지키시는 분이다. 그렇다면 그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는 저와 여러분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 역시 하나님 앞에 신실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다. 하나님을 사랑하시는가? 그렇다면 하나님 앞에 서원한 것을 지키라. 그리하면 한나처럼 하나님의 은혜안에 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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