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계4:1-11
제목:하늘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
첫째,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은 영원히 찬양받으실 창조주 하나님이다.
“보좌에 둘려 이십사 보좌들이 있고 그 보좌들 위에 이십사 장로들이 흰 옷을 입고 머리에 금관을 쓰고 앉았더라”(4절) 여기서 이십사 장로는 구약의 12지파와 신약의 12 사도를 합한 <신구약의 모든 교회>를 의미한다. 즉 신구약의 모든 교회를 통틀어 이십사 장로라고 한다. 그런데 이십사 장로가 무슨 일을 하는가? 금면류관을 벗어서 보좌에 앉으신 이에게 드리면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경배하고 있는 것이다.(10-11절) 즉, 예배드리고 있는 것이다. 천국은 예배하는 곳이다. 그런데 예배는 이십사 장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보좌 가운데와 그 주위에 네 생물이 있는데(6절), 네 생물은 여섯 날개를 가졌다(8절)고 한다. 이 네 생물은 천사를 상징한다. 그런데 이들이 무엇을 하는가?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시라”(8절)하면서, “보좌에 앉으사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에게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돌린다”(9절)는 것이다. 즉 천사들도 하나님을 찬송하고 있다. 즉 신구약의 모든 교회와 하나님의 보좌를 둘러싼 천사들이 하는 일은 하나님을 찬송하고 예배하는 것이다. 사도요한이 천상에 올라 제일 먼저 본 것은 교회와 천사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모습이었다. 즉 성도는 예배의 중요성을 깨달아야 한다. 교회의 사명은 예배하는 것이다. 우리가 교회로 모이는 이유는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므로 예배를 여러분 인생에 그 무엇보다 중요하고 긴급하게 여기시기를 축원한다.
둘째,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은 세상을 심판하시는 심판주 하나님이다.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번개와 음성과 뇌성이 나고, 보좌 앞에는 일곱 등불, 즉 일곱 영이 있다”(5절)고 말씀한다. 번개와 음성과 뇌성은 일곱째 인을 개봉했을 때(계8:5), 일곱 나팔을 불었을 때(계11:9), 일곱 대접을 쏟은 이후(계16:18)에도 동일하게 나타난 현상이다. 그러므로 “번개와 음성과 뇌성”은 <하나님의 심판>을 상징한다. 그래서 “번개와 음성과 뇌성”은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으로 상징되는 모든 심판이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으로부터 나왔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세상을 심판하시는 심판주이심을 믿으시는가? 그런데 안타깝게도 많은 분들이 하나님이 창조주이신 것은 믿지만, 하나님께서 세상을 심판하시는 분이라는 말씀은 잘 수용하려고 하지 않는다. 오늘날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해서 무척 크게 오해를 하고 있다. 멀리서 지켜만 보다가, 내가 힘들 때 나를 도와주는 <키다리 아저씨>같은 분으로 하나님을 생각하고, 내가 혹시 잘못해도 내게 뭐라고 하지 않는, 즉, <내게 전혀 위협이 되지 않는 안전한 하나님, 인간을 해롭게 하지 않는 하나님> 정도로 생각한다. 대단히 큰 착각이고 오해이다. 하나님은 결코 안전한 분이 아니며, 만만한 분도 아니다. 하나님은 노아시대에 물로 세상을 심판하신 분이며, 우상으로 가득한 애굽을 열가지 재앙으로 심판하신 분이며, 죄로 가득한 가나안땅을 심판하신 분이며, 주님 재림하시는 날에 온 세상을 심판하실 분이다. 성도는 하나님께 사랑받는 자녀라는 확신도 가져야 하지만, 동시에 나는 심판받아 마땅한 죄인이라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 모두는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이다. 우리의 모든 행위를 선악 간에 심판하실 하나님을 생각하고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신앙생활하는 성도가 되라.
셋째,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은 죄인을 구원하시는 구원주 하나님이다.
3절에 보면, 무지개가 보좌를 둘렀는데 그 모양이 녹보석같다고 했다. 그런데 에스겔 1장 28절에서도 에스겔이 하나님의 형상을 묘사할 때, 무지개라는 말을 사용했다. 세상 사람에게는 무지개가 단순히 빛의 굴절에 의해 일어나는 현상으로 보이겠지만, 성도에게 있어서 무지개는 “다시는 홍수로 세상을 진멸하지 않으시겠는 하나님의 은혜의 언약의 표시”이다. 그런데 무지개가 보좌와 무슨 상관인가? 사실 하나님께서 사도요한에게 보좌를 보여주시는 것은, “이 땅을 심판하시기 위한 준비과정”이다. 즉 앞으로 있게 될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의 무시무시한 재앙이 시작되는 중심에 하나님의 보좌가 있다. 그런데 심판이 시작될 보좌에서 요한은 초록 무지개를 발견했다. 즉 하나님께서 심판 가운데서도 “자비와 긍휼을 잊지 않으시는 분”임을 드러낸다. 니느웨를 심판하시고자 하실 때, 하나님이 심판에 앞서 회개를 요구하셨던 것을 기억하라. 니느웨백성은 죄로 말미암아 죽어 마땅한 자들이었지만, 하나님은 심판받을 자들에게까지도 긍휼을 베푸시는 분이다. 하나님께서 재앙을 내리시는 근본 이유는 회개할 기회를 주시기 위함이다. 여러분, 세상에 누가 분노하는 가운데서도 용서의 마음을 품을 수 있는가? 우리는 상대방의 조그만 실수에도 흥분하면서 분노의 돌을 들지 않는가? 그러나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최후의 순간까지도 회개할 기회를 주시는 은혜의 하나님이시다. 성도에게 있어서 고난은 회개의 기회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비와 긍휼의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을 기억하고, 문제와 고난 앞에서 회개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붙드는 성도가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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