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계3:1-13
제목:하나님이 인정하시는 교회
첫째, 하나님의 말씀을 가볍게 여기지 않는 교회
사데교회는 사람들에게 살아있다고 인정받을 만큼, 겉으로 보여지는 부분에는 문제가 없어 보였지만, 영적으로는 심각한 문제가 있었던 교회였다. “너는 일깨어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건하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2절) 여기서 “온전한”이라는 말은 “속을 채울 수 있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했다”는 말은 행위는 있는데 속이 비어서 껍데기만 남아있다는 뜻이다. 사데교회는 내용물이 없는 껍데기만 있는 교회였다. 이 교회가 얼마나 껍데기만 남은 교회였는지, “마귀도 이 교회를 건드리지 않을 정도”였다. 다른 교회에는 성도들을 무너뜨리려고 발람도 보내고, 니골라당도 보내고, 이세벨도 보내고, 황제숭배도 보내고, 유대인들도 보냈는데, 이 교회는 건드리지 않았다. 왜인가? 겉만 멀쩡해 보일 뿐, 죽은 교회였기 때문이다. 사데 교회가 죽은 교회가 된 이유가 무엇인가? “일깨어”(2절)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3절) “일깨어”라는 말은 영어성경에 “Wake up!”이다. “깨어 일어나라”는 말이다. 반대로 하면, 사데 교회가 죽은 교회가 된 이유는 영적으로 잠들어 있기 때문이다. 영적으로 잠들었다는 말은 <하나님께 대하여 반응하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께 대하여 반응하지 못하면 그건 죽은 것이다. 도대체 사데 교회는 하나님께 대하여 무엇을 반응하지 못한 것인가? “생각하라(remember), 지켜라(obey), 회개하라(repent)”(3절) 거꾸로 생각하면 사데 교회는 이 3가지를 하지 않은 것이다. 사데 교회는 ①말씀이 생각나지 않는 신앙, ②말씀을 들어도 그 말씀을 지키지 않는 신앙, ③말씀을 들어도 회개하지 않는 신앙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깨어있는 신앙, 살아있는 신앙이 무엇인가? 모든 일에 말씀을 기준으로 생각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말씀을 지키고, 말씀 앞에서 항상 회개하는 삶이 살아있는 신앙이요, 영적으로 깨어있는 삶이다. 그런데 사데교회 성도들은 <말씀을 따르지 않는 신앙>이었기에 산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죽은 자들이었다. 그러므로 성도가 영적으로 잠들어 있는 죽은 신앙이 되지 않으려면 말씀을 가볍게 여기지 않고, 말씀중심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오직 말씀을 기준으로 생각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말씀을 지키고, 말씀앞에서 항상 회개하는 말씀 중심의 성도가 되라.
둘째, 형편 따라 살지 않고 믿음 따라 사는 교회
빌라델비아교회는 일곱교회 중 가장 작은 교회였던 것으로 추측된다. 8절에 “작은 능력”에서 “작다”는 말은 헬라어 “미크론”인데,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작은 능력이란, “능력이 거의 없다”는 말이다. 영적인 능력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빌라델비아교회의 <외형적인 모습>을 뜻하는 것이다. 이 교회가 큰 교회, 부유한 교회가 아니라는 뜻으로, 교인 수도 적고, 재정적으로도 어려운 교회, 즉 일꾼도 부족하고, 재정도 부족하고, 모든 것이 부족해서 뭘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교회였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일곱교회 중 가장 작은 교회가 주님께로부터 가장 큰 칭찬과 축복을 받았다는 점이다. 어떻게요?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주님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았기 때문”(8절)이다. 여기서 <배반>이란 “믿음을 버린다.”는 뜻이다. 성도가 형편 따라 살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여기 있다. 형편 따라 살면, 형편이 좋을 때는 믿음으로 살지만, 형편이 어려울 때는 믿음으로 못사는 것이다. 형편이 어려울 때는 믿음을 내려놓는 것이다. 배반의 반대말이 10절에 나오는“인내”라는 말이다. 믿음은 인내하는 것이다. 배반과 인내는 공존할 수 없는 반대말이다. 배반은 믿음을 버리는 것이고, 인내는 끝까지 믿음을 버리지 않는 것이다. 배반과 인내의 차이를 더 쉽게 설명하면, 배반은 “내가 끝을 내는 것”이고, 인내는 “내가 끝을 내지 않는 것”이다. 여러분, 내가 결론을 내려고 하면 안된다. 결론을 만드시는 분, 끝을 만드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만이 우리 인생의 결론을 만들어 내시는 분임을 믿고 인내하기 바란다. 예수 믿는 사람은 자신이 결론을 내려고 하면 안 된다. 왜인가? 우리는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님이 결론 내실 때까지 끝까지 참고 기다려야한다. 성도는 참는데 선수여야 한다. 어쩔수 없어서가 아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주님을 바라는 믿음 안에서 참아야 한다. 그러므로 성도는 형편 따라 사는 사람이 아니라, 믿음 따라 사는 사람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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