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전도서 3:16-4:3
제목: “헛됨과 즐거움”
전도서가 시작됐습니다. 전도서에서 전도(傳道)는 전할 전(專) 길도(道)를 전한다는 뜻입니다. 젊은 사람에서 노인까지 남녀노소에게 바른 교훈을 전한다는 뜻으로 전도서라는 이름이 되었는데요. 흔히 전도서는 솔로몬이 섰다고 알려져 있지만 저자에 관한 많은 이론들이 존재하기에 누가 썼는지 알수 없는 작자미상의 책 중에 하나입니다. 1장 1절이 이렇게 되어 있는데요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 전도자의 말씀이라” 그러니 다윗의 아들 중인 남유다 왕들 중에 한명이 이 전도서를 썼다는 걸 알수 있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이라고 추정을 하지만 정확한 저자를 알수 없습니다. 사실 몰라도 되는 것이 이 전도자는 자기의 생각이 아닌 여러 지혜자의 이야기들을 모아놓고 마지막에 가서 이 일의 결국을 들었으니 명령을 지키라고 말합니다.
이 전도서의 중심내용이 무엇입니까? 여러분들이 너무나 잘 아시는데로 인생은 헛되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니 인생 자체가 허무하다는 것이니다. 여기서 헛되다 라는 뜻이 헤벨이라는 히브리어 인데요. 소량의 바람 또는 수증기 안개 라는 단어로 의미로 쓰여진 단어입니다. 인간이 아무리 노력하고 열심히 한다고 해도 도저히 할수 없는 것 그것은 바로 영혼의 문제 죄의 문제 구원의 문제라는 지혜자의 가르침을 전합니다. 그래서 오직 모든 문제의 근원이 하나님께 예수님께 있음을 알고 사는 것 그것이 바른 ‘도’ 임을 가르치는 것이 전도서의 내용입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오늘 본문이 이렇게 시작을 하는데요 3장 16절입니다. “또 내가 해 아래에서 보건대 재판하는 곳 거기에도 악이 있고 정의를 행하는 곳 거기에도 악이 있도다” 예나 지금이나 사법기관은 국가에서 최고의 권위를 가지고 있는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기능을 감당합니다. 악을 응징하고 정의를 행하는 최후의 보루같은 곳입니다. 예전에는 이 기능을 왕이 했었습니다. 그런데 전도서의 저자는 이러한 사법기관에도 악이 존재하고, 부정이 행해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사실 해 아래 세상에서 일어나는 선과 악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인간의 시도들은 결국에는 실패하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모든 문제들을 궁극적으로 해결하실 분은 오직 하나님 밖에 없음을 이야기해 주고 있습니다.
17절 “의인과 악인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니” 이 세상을 보니 악인들이 득세 합니다. 죄를 짓고, 양심을 속이고 사는 사람들이 더 높은 지위를 갖고 더 많은 부를 쌓아 잘 살고 있습니다. 이에 비해 의인들은 억울한 일들을 당하는 등 부조리한 현실입니다.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은 굶어죽고 일제에 협조했던 친일파는 부를 누리는 세상입니다. 잘못되도 한참 잘못됐죠? 눈에 보이는 이런 상황에서 눈을 돌려 이 세상이 아닌 하나님께서 반드시 심판하시게 될 것을 확신함으로써 이 세상에 가득한 죄의 문제를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실 것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17절에 기록된 “모든 소망하는 일과 모든 행사에 때가 있음이라” 란 표현이 있는데,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인간의 모든 죄악에 대한 보응과 징벌을 내리실 때를 가리킵니다. 이 때가 오면 하나님께서는 악인들을 심판하시고, 이 세상에서 악의 원인인 죄를 원천적으로 제거하시며, 선한 일에 대한 보상을 하실 것입니다. 이런 궁극적인 심판의 날을 기다리는 것이 곧 믿는 사람들의 삶일 것입니다. 전도서의 저자는 이러한 마지막 때를 기다리고 살아가는 것이 인생의 지혜임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세상이 전부라고 생각하며 재물을 위해서 양심을 팔고, 비윤리적인 일을 저지르는 사람들은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 날이 있음을 믿는 하나님의 백성은 언제나 지금 우리가 하는 일이 하나님께서 보실 때 옳은 것인지 아닌지 판단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살아가야 합니다.
18절에 말합니다. “내가 내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인생들의 일에 대하여 하나님이 그들을 시험하시리니 그들이 자기가 짐승과 다름이 없는 줄을 깨닫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노라” 여기서 ‘시험하다’란 말은 히브리어로 보면 “깨끗하게 하다”란 뜻으로 쓰였습니다. 이 단어가 언제 사용되냐 하면 금속을 펄펄 끓고 있는 고열의 도가니 속에 넣어서 가열함으로써 금속 안에 있는 불순물과 이물질을 제거하는 작업을 가리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허용하신 믿음의 시험을 통해 의인의 삶을 살 것인지 아니면 악인의 삶을 살 것인지 결정하는 순간이 찾아오게 됩니다. 이러한 시험 속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소망을 잃지 않고 하나님을 붙들고 살아가는 자는 시험을 통과하여 거룩하고 정결한 모습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시험을 당할 때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고 불의를 선택하는 사람은 18절 말씀대로 짐승과도 다름 없는 비참한 말로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태어나서 살아가다가 죽음을 기다리는 동물들처럼, 악인들 역시 삶의 아무런 의미도 발견하지 못한 채 죽음 밖에는 그들을 기다리는 것이 없게 됩니다.
19절 말씀에 인간의 유한함을 다시 한 번 언급합니다. 동물들이 죽음을 맞이하듯이, 사람도 결국에는 죽게 됩니다. 짐승과 인간을 비교함으로써 하나님이 없는 인생이 얼마나 허무한 것이며 무가치한 것인지를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19절에 사람이 하나님을 모르고 죽게 되면 저가 짐승보다 뛰어난 것이 전혀 없다고까지 말했습니다. 이렇게 극단적으로 표현한 것은, 자신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알지 못하거나, 하나님을 알지만 하나의 뜻에 순복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힘과 능력만으로 살려고 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강조해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전도서는 인간이 참으로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20절에 인간과 짐승, 이 둘 모두 다 흙으로 돌아간다고 했습니다. 즉 인간과 짐승은 둘 다 태어나서 살다가 죽는다는 면에서 동일하다고 말합니다. 인간이 그의 창조주 되시는 하나님과 교제하고 있지 않다는 점을 제외한다면 짐승과 가치 무가치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임을 적나라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21절을 보시면 “인생들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가는 줄을 누가 알랴” 인간의 영혼은 죽음 이후에 위로 올라간다는 것은 그의 영혼이 하나님께로 간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반대로 짐승의 혼은 아래로 간다는 것은 영혼이 없는 짐승의 혼은 죽음 이후 소멸된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요즘 집에서 키우는 개를 가족처럼 좋아하는 분들이 계시다 보니까 어느 이단에서는 개에게도 세례도 주고 장례식까지 치러 준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비성경적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오직 사람에게만 영혼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죽음 이후에도 동물들의 혼이 살아있는 것은 입니다. 그들은 죽으면 소멸 됩니다. 그러나 인간은 다릅니다. 그의 영혼은 죽음 이후에도 살아서 천국 혹은 지옥에서 영원토록 살게 됩니다. 전도서의 저자는 계속해서 하나님 없이 사는 인간이 무가치하다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헛되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께 거하는 것이 지혜요 즐거움이다. 이것이 전도서의 주제인 것입니다.
그래서, 3장의 결론이 이렇게 끝나는데요. 이 세상에서 사람이 추구해야 할 가치는 자기 일에 성실하게 임하며,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몫을 즐거워하며 사는 것이 가장 큰 복이라고 이야기합니다. 22절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사람이 자기 일에 즐거워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음을 보았나니 이는 그것이 그의 몫이기 때문이라 22절에 나오는 ‘몫’이란 말은 ‘상급’이란 말입니다. 즉 해 아래서 허무한 인생을 살아가지만, 그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우리 자신에게 맡겨주신 일을 찾아 성실하게 행하고, 그 일 가운데서 기쁨을 찾아 최대한 누리는 것이 인간이 이 세상에서 누릴수 있는 최고의 즐거움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헛된 세상에서 그러나 이 헛된 세상을 사는 동안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가장 큰 선물임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님들 주님께서 우리의 삶을 인도하고 계심을 믿고,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에 최선을 다해 충성하며 살아가는 것이 인간의 본분입니다. 오늘 하루도 이 헛된 소망없는 세상 속에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최선을 다해 충성하며 그 가운데서 하나님을 기뻐하며 살아가실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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