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잠13:1-13
제목: 잘 들리십니까?
오늘 본문인 잠언 13장도 12장에 이어 ‘말’에 대해서 교훈을 주시는 말씀입니다. 성경에서 반복한다는 것은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그만큼 말이 문제라는 거겠죠? 12장 말을 잘 듣는 법을 가르치고 나서 13장에서도 말에 대해서 말씀하시지만, 1절은 오히려 말 보다는 듣는 것을 먼저 가르쳐 주십니다. 1절이 이렇게 시작합니다.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의 훈계를 들으나 거만한 자는 꾸지람을 즐겨 듣지 아니하느니라” 성도님들 잘 들리십니까? 본문 1절에 "듣다"라고 하는 단어는 "경청하다"의 뜻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이는 "따르다" 또는 "순종하다"라는 뜻을 함께 내포되어 있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이스라엘에서 오래 동안 공부하신 어떤 목사님은 쉐마라고 하는 이 경청이라는 단어를 이렇게 설명하기도 합니다. 마치 100미터 달리기 하는 사람들이 출발선에서 있으면서 출발신호만 기다리며 엉덩이를 치켜올리고 귀를 쫑긋하는 자세를 가르킨다는 겁니다.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출발신호만 들리기만 하면 바로 뛰어가겠다는 뜻이고 목표를 향해 전력질주를 하겠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쉐마"의 의미입니다. 하나님이 저곳이다!! 라고 하는 순간 뛰어갈 준비를 하려는 마음, 그 마음의 자세를 의미합니다. 오늘 본문은 월요일 본문인 12장 1절과 유사한 내용입니다. “훈계를 좋아하는 자는 지식을 좋아하거니와 징계를 싫어하는 자는 짐승과 같으니라” 성경은 비속어 안쓴다고 했죠? 그래서 야 이 ‘짐승같은’ 이라는 말은 엄청 심한 욕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아니 이 듣는게 뭐라고 이렇게 까지 심한 말을 하고 있을까요? 잠언은 듣는 것이 지혜다. 들으라 이스라엘. 예수님께서도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대체 성경은 왜 이렇게 듣는 것에 대하여 강조를 하고 있을까요? 성경은 부모가 자녀에게 믿음을 전승할 책임이 있음을 성경전체에서 강조합니다. 출애굽기에서 민수기에서 신명기에서 늘 강조하셨습니다. 그래서 믿음을 전승하는 책임이 부모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모 말 안들어? 이건 그냥 예의가 없네. 효도하지 않네 아이고 저런 못된 것 이 정도가 아니라 성경에서 그 공동체의 일원이기를 포기한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포기한 일이기에 이를 벌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한번 찾아볼까요? 신명기 21장 18절에서 21절까지인데요. 신명기 21장 18절에 이해 대한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 주고 있습니다. 약속의 땅 가나안을 앞두고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사람에게 완악하고 패역한 아들이 있어 그의 아버지의 말이나 그 어머니의 말을 순종하지 아니하고 부모가 징계하여도 순종하지 아니하거든’ 예나 지금이나 이런 자녀들이 있잖아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아이고 내 죄가 크지요. 내가 잘못 가르쳤네요. 하고 그냥 참아야 합니까? 언젠간 돌아오겠지 하고 잠시 내버려 둬야 합니까? 성경은 우리에게 도저히 이해할수 없는 끔찍한 방법을 제시합니다. 19절인데요 ‘그의 부모가 그를 끌고 성문에 이르러 그 성읍 장로들에게 나아가서’ 성읍 장로들이란 말은 재판정을 의미 합니다. 이걸 가정 문제로 끝내지 말고 공론화 해서 재판까지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20절 ‘그 성읍 장로들에게 말하기를 우리의 이 자식은 완악하고 패역하여 우리 말을 듣지 아니하고 방탕하며 술에 잠긴 자라 하면’ 21절 ‘그 성읍의 모든 사람들이 그를 돌로 쳐죽일지니 이같이 네가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하라 그리하면 온 이스라엘이 듣고 두려워하리라’ 이 말씀에 동의하십니까? 아멘 이십니까? 아닐 겁니다. 에이 너무하잖아요?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자녀를 돌로 치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생각하기에 이건 현실에 맞지 않는 내용이라고 할 겁니다.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라고 아마 이렇게 했다간 PD수첩에 나올만한 사건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제가 우리자녀들에게 그랬다간 심천 S교회 김모목사 드디어 미쳤다. 뭐 이렇게 기사가 나올 것입니다. 그런데 흥분을 멈추시고 성경을 찾아 보십시오. 이와 유사한 구절이 한 두군데가 아닙니다. 이 만큼 하나님은 우리같은 자녀들이 부모의 말씀을 듣는 것을 가정의 문제가 아니라 공동체의 문제 하나님나라의 문제로 취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말씀을 청종하고 따르고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을 이렇게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에 동의하십니까? 성경은 아비의 훈계를 어미의 가르침을 소중히 여기고 그 말씀을 잘 듣고 그 말씀을 따르고 청종하고 힘써 지키라고 수도 없이 가르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대를 살아가는 부모들은 부모는 아이들을 위해 돈을 벌어주는 존재로. 좋은 대학을 보내고 좋은 사람을 찾아서 결혼만 시켜주면 그걸로 부모의 역할이 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녀들에게 지금은 믿음보다 성적이지. 예배보다 스펙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 말씀보는 것보다 영어 단어를 보는 것을 더 기뻐하고 있으니 이 세상이 이렇게 엉망진창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이 명령하신 이 훈계를 듣는 지혜가 있는 우리들이 되길 소원합니다. 그리고 부모가 되어 먼저 믿는 믿음의 선배들이 되어 우리 자녀들을 우리에게 맡겨주신 영혼들을 잘 가르치는 지혜가 능력이 회복되길 소원합니다.
계속해서 2절은 “사람은 입의 열매로 인하여 복록을 누리거니와 마음이 궤사한 자는 강포를 당하느니라” 복록이라는 말이 좀 생소하시죠? 원어로 보면 토브 좋다. 아주 좋다. 라는 뜻으로 천지를 창조하시고 ‘좋았더라 했을 때’ 쓰신 단어가 복록이라는 뜻입니다. 좋은 훈계의 말씀을 잘 들은 사람은 좋은 열매를 맺어 복을 누리고 마음이 궤사 궤사라는 말은 썩었다는 말인데요. 언어적으로 보면 불성실하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부모의 훈계를 듣지 않고 부모의 가르침을 듣지 않고 불성실하게 사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강포 강도와 폭행을 당한다는 즉. 얻어 떠지고 다닌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녀들에게 말씀을 심어 주면 그 입에 좋은 열매를 맺어 복을 누리지만 자녀들에게 말씀이 아닌 세상의 힘과 돈을 심어주면 그 세상을 교만하게 살아가다가 세상에 얻어 터진다는 뜻입니다. 요즘 아이들이 그리고 우리들이 이렇게 살아갑니다. 요즘이 어떤 세상입니까 옳고 그름보다 자기가 원하는대로 살아갑니다. 진리냐 옳은 거냐 그건 모르겠고 나는 지금 기분 나쁘다는 겁니다. 내 귀에 좋으면 좋고 내가 기분이 나쁘면 누구와도 들이 받습니다. 내 기분이 좋으면 예배도 하고 봉사도 하지만 내 기분이 좋지 않으면 봉사는 커녕 예배 하는 의무조차 잊으며 살아갑니다. 내가 기분 나쁘다는 겁니다. 하나님은 말씀따라 살라고 하셨는데 현대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우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부모가 자녀에게 들려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부모를 통해 가정으로부터 자녀들에게 전수됩니다. 교회학교 일주일에 한 시간 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부모들이 해야 합니다. 쉽지 않습니다. 사실 저도 애들이 나이가 들어갈수록 자신이 없습니다. 그래도 포기할수 없습니다. 어떤 가정은 이미 늦었습니다. 라고 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자녀도 있고 자녀 손들도 있잖아요. 혹시 없다면 우리의 영적인 자녀들인 우리가 섬겨야 할 새가족이 있고 교회학교들이 있으며 우리가 섬기는 구역과 주안에 한 공동체인 심천사랑의교회 성도들이 있잖습니까? 그러므로 지금 이라도 이 사역을 감당해야 합니다. 이것이 자녀를 향한 최고의 유산이자 사랑의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자녀들에게 좋은 옷을 입혀주고 좋은 고기 먹여주고 좋은 학교 보내라고 명령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부모에게 자녀에게 말씀을 가르치라고 강조합니다. 그러면 그 말씀이 자녀에게 지혜가 되어 복록을 누리고 하나님의 축복이 가득한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된다고 가르칩니다.
또 3절입니다. “입을 지키는 자는 자기의 생명을 보전하나 입술을 크게 벌리는 자에게는 멸망이 오느니라” 입을 지킨다는 말씀에서 나오는 "지킨다"고 할 때 나짜르라는 단어는 보호하고 망을 본다는 뜻입니다. 즉 매우 조심하고 경계한다는 말로써, 꼭 필요한 말 외에는 하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반대로 입술을 크게 벌린다는 것은 생각 없이 함부로 말을 내뱉고 중상 모략하는 것, 없는 말을 지어내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지혜있는 자는 입을 지켜서 자기의 생명을 보전하고 지혜없는 자는 지키지도 못하는 말로 멸망을 자초한다는 것입니다. 이 차이가 지혜 그리고 그 지혜를 바탕으로 하는 말의 능력입니다. 그리고 어제 목사님을 통해 들으셨던 것처럼 이 지혜는 성도들에게 분냄 거짓말 게으름이 아닌 온유와 정직과 성실을 요구한다는 것이 2절부터 8절까지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로 9절인데요. 찾아보실까요? “의인의 빛은 환하게 빛나고 악인의 등불을 꺼지느니라” 아멘 같은 의미로 지혜있는 자는 12절 생명나무 13절 상이 되어 그 지혜로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성도님들 우리의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는 우리들 되길 소원합니다. 그리고 그 지혜의 근본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생명처럼 여기는 우리들 되길 소원합니다. 그리고 그 지혜를 부지런히 배우고 가르치고 새기고 행함으로 풍성한 열매 맺는 성도님들과 가정이 되길 소원합니다. 그 지혜가 진짜라면 그 지혜가 생명이 있다면 그 지혜를 우리를 풍성한 하나님의 은혜로 이끌어 줄 것입니다. 오직 예수님이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는 것처럼 그 말씀을 우리를 구원으로 생명으로 인도해 줄 것입니다. 바로옵기는 모든 성도들이 이 말씀대로 지혜를 사랑하며 찾고 구하고 그 말씀이 잘 들려서 지혜로 풍성해지는 은혜가 함께 하시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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