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잠12:15-28
제목:성도의 마땅한 바
첫째, 분노는 성도의 마땅한 바가 아니다.
“미련한 자는 당장 분노를 나타내거니와 슬기로운 자는 수욕을 참느니라”(16절) 쉽게 분노하지 말고, 참고 인내하라는 말씀이다. 여기서 “수욕을 참는다”라는 말은, 수치스럽고, 억울하고 불명예스러운 상황에서 분노가 생겨도 그것을 남들이 알지 못하게 덮는 것을 의미한다. 즉 성도는 감정 따라 움직이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세상은 분노를 참지 않는다. 16절 말씀처럼 “당장 분노를 드러낸다.” “당장”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빠이욤”인데, “매우 빠른 시간에”라는 뜻이다. 세상사람들은 자기의 분노를 즉시 드러낸다. 성경은 성도에게 분노하지 말 것을 요구한다."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라 불평하여 말라 행악에 치우칠 뿐이니라"(시37:8) “노하는 자는 다툼을 일으키고 성내는 자는 범죄함이 많으니라”(잠29:22) 화를 내는 것은 상황을 잠잠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다툼을 일으키고, 성내기를 잘하는 사람은 죄를 많이 짓는다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분노는 성도의 마땅한 바가 아니다. 분노는 죄를 짓게 만들기에 마귀만 좋아하고, 하나님은 기뻐하시지 않는다. 분노는 마음의 브레이크가 고장난 상태이다. 즉 절제라는 항목 자체가 기능 상실된 상태이다. 그러므로 분노는 어리석은 자의 전유물이다.
둘째, 거짓말은 성도의 마땅한 바가 아니다.
본문에 “속임”이라는 단어가 2번(17절, 20절), “거짓”이라는 단어가 2번(19절, 22절) 쓰였다. 즉, 미련한 사람의 특징은 거짓말 하는 것이다. “거짓 혀는 잠시 동안만 있을 뿐이니라”(19절)을 표준새번역성경은 “거짓말은 한순간만 통할 뿐이다.”라고 번역했다. 거짓말은 오래못간다. 왜냐하면,마귀가 거짓말을 드러내게 하여 패가망신당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라, “거짓 입술은 여호와께 미움을 받는다”(22절) 여기서 미워하다는 말은 “구역질나다. 몹시 싫어하다. 가증스럽게 여기다. 경멸하다”는 뜻이다. 즉 하나님은 거짓말하는 사람을 결코 기뻐하지 않고, 싫어하신다. 즉 하나님은 거짓말을 절대 용납하지 않으신다는 말씀이다. 거짓말은 잠깐은 통하는 것 같지만, 거짓말하는 사람을 멸망으로 이끈다. 또한 하나님께서도 거짓말하는 사람을 미워하신다. 성경은 거짓말하는 사람은 망하지만, 정직하게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기뻐하신다고 말씀한다.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받는다는 말은 형통하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거짓말을 하지 않겠노라고,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는 외식적이고 가식적인 행동을 하지 않겠노라고 결단하라.
셋째, 게으름은 성도의 마땅한 바가 아니다.
“부지런한 자의 손은 사람을 다스리게 되어도, 게으른 자는 부림을 받느니라”(24절) 성도는 게으른 자가 되지 말고 부지런한 사람, 성실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이다. “게으른 자는 그 잡을 것도 사냥하지 아니하나니, 사람의 부귀는 부지런한 것이니라.”(27절) 게으른 자는 입에 넣을 것도 구하지 않지만, 부지런한 사람이 먹을 것을 넘어 재물이 넘치게 된다는 말이다. 그런데 NIV,KJV등의 영어성경은 “게으른 자는 사냥해 온 고기조차도 요리하기를 싫어한다”고 번역했다. 하나님은 게으른 자를 기뻐하시지 않는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나무는 주셨지만 가구는 안 주셨다. 무슨 뜻인가? 하나님은 우리에게 재료를 주신다. 재료를 가지고 자르고, 대패질하고, 붙이고 하는 것은 우리가 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열심히 해서 완성시킴으로 성취감의 행복을 맛보게 하셨다. 게으른 사람은 은혜 받기 힘들다. 은혜도 부지런한 사람이 받는다. 왜인가? 게으른 사람은 성경을 읽는 것도 싫어하고 기도하는 것도 싫어하고, 집회에 참석하는 것도 싫어하는데 어떻게 은혜를 받는가? 게으른 자 중에 지혜로운 자가 있을까? 결코 없다. 왜냐하면 게으름 자체가 어리석음이기 때문이다. 게으름을 합리화시키지 말라.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게으른 자가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성실한 자가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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