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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천사랑의교회

2022-7-28 큐티말씀 - 친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디도서 2:11-3:7) - 김도완목사

사무간사22022.08.08 14:54조회 수 231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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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디도서 2:11-3:7

제목: 친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  

 

 많은 사람들이 디도서를 기독교 윤리를 가르치는 책이라고 오해합니다. 물론 3장이라는 짧은 분량에 비하면 그 어떤 책보다 많은 기독교윤리에 대한 가르침과 권면이 많이 들어 있기는 한 책입니다. 그만큼 그레데 섬에 속해 있는 그레데 교회가 타락했다는 반증일 것입니다. 그러나 디도서는 윤리 도덕을 가르치는 책이 아닌 구원에 대한 정수를 가르치는 책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그 복음의 정수를 찾아보겠습니다. 어제 여러 다양한 사람들을 이렇게 가르치라고 권면했던 사도바울은 이제 모든 사람이 왜 그렇게 살아야 하는지를 설명합니다. 어제도 말씀드렸지만 14절인데요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이 본문이 예전 버전인 개혁 한글에는 자기백성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되어 있는데요. 친 백성이라고 표현합니다. 저는 이 표현이 훨씬 더 좋은거 같아 일부러 이 본문을 이야기할때는 친 백성이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우리를 모든 불법에서 속량하시고 깨끗하신 이유가 무엇이라구요 바로 하나님의 선한 일을 하는 자기 백성 친백성을 만들려는 이유라고 했습니다. 무엇을 근거로요? 11절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바로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서입니다. 3장 7절도 이렇게 고백하는데요 “우리로 그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상속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아멘 

2장 11절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3장 7절에서 그의 은혜를 힘입어~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 곧 구원의 복음을 근거로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이렇게 살아서 좋은 사람이 되어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라 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너희는 하나님이 백성이니 하나님의 백성 답게 살아라 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비슷해 보이지만 아주 중요한 차이를 꼭 이해하셔야 고생을 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우리의 노력으로 도덕으로 선행으로 열심히 하나님의 백성이 될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누구보다 우리들이 우리 자신을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윤리도덕을 강조하기 전에 우리의 신분 우리의 존재이유를 설명하고 있는데요 우리는 하나님 자녀이기에 친 백성이기에 백성 답게 자녀 답게 살기 위해서 이 세상의 법 이 세상의 윤리 도덕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법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3장 본문은 또 다시 성도들의 사회생활에 대한 가르침으로 시작합니다. 이렇게 사도 바울이 디도를 통해 성도들의 사회생활에 관한 윤리적 가르침을 제시하는 이유는 그들이 살고 있던 그레데 섬의 사회질서와 윤리가 문란했기 때문입니다. 그레데는 오랫동안 죄인들의 유배지였고 해적들의 은신처이자 소굴이 되었던 섬이라고 합니다. 그런 배경 때문인지 모르지만, 에피메니데스라는 사람의 글을 보면, 1세기 당시 그레데 섬은 거짓과 사기가 난무하고, 폭력이 일상화되어 있었으며, 사회는 불안하였고, 사람들은 나태와 게으름에 빠져 무기력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레데 섬의 무질서와 윤리적 문제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사회에서 살아가는 동안 윤리적으로 지켜야 할 바를 제시해야 할 필요를 느낀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이 사회생활 중에 지켜야 할 윤리적인 태도를 이렇게 교훈합니다. 1절 “너는 그들로 하여금 통치자들과 권세 잡은 자들에게 복종하며 순종하며 모든 선한 일 행하기를 준비하게 하며” 사도 바울은 먼저 세상의 통치자들과의 관계에서 지켜야 할 윤리적인 내용을 권면합니다. ‘복종하고 순종하고 준비를 갖추게 하는 것’입니다. 먼저 세상의 통치자에게는 복종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런데 그거 아십니까? 사도바울은 지금 로마법에 의해서 감옥에 갇혀 있는 상태입니다. 그러니 난 억울하다 이게 나라냐! 당장 로마가 망하도록 기도해 줘라~ 이렇게 할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통치자에게 복종할 것을 권면합니다. 

 

이것은 사도 바울이 로마 교회에 보낸 편지의 내용과 일치합니다. 물론 ‘세상의 권세를 가진 통치자’가 ‘선을 장려하고 악을 징벌하기 위해 세우신 하나님의 뜻’을 부정할 경우에는 ‘복종’의 대상이라고 받아들이기는 어려운 문제가 남게 됩니다만, 사도 바울은 기본적으로는 통치자의 권위를 인정하라고 교훈합니다. 이어서 사도 바울은 그레데와 같이 윤리적으로 문란하고 거짓과 사기와 폭력이 난무한 곳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지켜야 할 윤리적인 내용을 구체적으로 제시합니다. 2절인데요 ‘아무도 비방하지 말며 다투지 말며 관용하며 범사에 온유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낼 것을 기억하게 하라’고 교훈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을 닮아가는 사람들이 아니라 도리어 구원받은 사람답게 질서 있고 경건한 삶의 살아야 한다는 가르침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의 사회윤리는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을 향한 ‘복음의 통로’로 쓰임 받기 위해서는 윤리적 부분이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세상 사람들은 영적인 눈이 없기에 그리스도인들의 윤리적인 모습을 보고 우리의 믿음이 진실한 것인지를 판단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의 윤리적인 모습은 세상이 어둡고 타락한 세상일수록 더욱 큰 능력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사회생활에서의 윤리적인 삶에 대한 교훈에 이어 구원에 관한 질서를 설명합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속에서 윤리적인 차원에서 다른 사람들과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를 제시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구원을 통해 세상의 사람들과는 차원이 다른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에, 우리의 삶은 세상과 구별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씀이지요. 그래서 사도 바울은 구원의 질서를 다시 설명하면서 우리도 이전에는 윤리적으로 타락한 삶을 사는 세상 사람들과 다를 바 없었다고 선언합니다. 3절 “우리도 전에는 어리석은 자요 순종하지 아니한 자요 속은 자요 여러 가지 정욕과 행락에 종 노릇 한 자요 악독과 투기를 일삼은 자요 가증스러운 자요 피차 미워한 자였으나” ‘전에는’ 곧 우리가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를 입기 이전의 모습을 의미합니다. 그 때 우리에게 온갖 악이 있었습니다. 일일이 거론하기 부끄러운 죄악의 모습이 우리에게 있었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사람들과 전혀 다를 바 없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사랑하심을 통해 구원을 받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의 구원의 원인이 하나님의 사랑에 있다고 선언합니다. 말하자면, 우리가 전에는 악과 죄의 노예로 살았기 때문에 구원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었는데,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다는 선언입니다. 거저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지요. 그래서 사도 바울은 구원의 질서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5절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따라 우리를 거듭나게 씻어주셨고, 성령으로 새롭게 해주셨습니다. 그 성령을 우리에게 풍성하게 하셨습니다. 결국 구원을 통해 우리는 새로워졌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거듭났습니다. 씻어주셨습니다. 성령을 받았습니다.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소망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 소망은 영원한 생명의 소망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고, 지금 이미 구원이 주는 은혜의 질서를 풍성하게 누리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전에 우리의 모습과는 달라야 마땅합니다. 우리 안에 구원의 질서가 이루어졌다면, 우리는 우리 안에 있는 풍성함 때문에 그리고 영원한 생명에 대한 소망 때문에 세상과는 다른 차원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그리스도인들의 윤리관 입니다.  

 

 성도님들 아시는 것처럼 그레데 섬에만 윤리적인 혼돈과 어둠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고린도가 그랬고 로마가 그랬으며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도 그렇습니다. 아니 죄의 욕구를 따라 살아가는 인간들이 모든 세상은 모두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윤리적인 타락과 혼돈과 문란이라는 문제를 가지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윤리적인 모습이 중요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새로운 차원의 삶과 윤리가 세상을 향해 복음의 빛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선한 일을 위해 지음 받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사명입니다. 오늘도 구원의 은혜를 입기 전의 모습에 머무러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새로운 윤리인 곧 예수로 사는 주의 백성들이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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