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왕하21:1-26
제목: 므낫세 하면 안됩니다.
어제 우리는 열왕기하 20장을 통하여 영적인 거장과도 같았던 히스기야가 몰락하는 모습을 보면서 충격을 받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사야를 통한 하나님의 심판 경고 앞에서도 지극히 이기적인 모습을 보이던 히스기야의 모습을 보면서 처음보다는 끝이 좋은 성도가 되야 겠다는 결심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인 21장 1절에 등장하는 므낫세는 히스기야의 아들입니다. 히스기야가 39세에 병이 들어 죽을 뻔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십오년을 더 살게 하셨는데 므낫세가 열두 살에 왕이 되었으니 므낫세는 히스기야가 치유 받은 후에 낳은 아들일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 므낫세를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남유다에서 최고로 악한 왕입니다. 20명의 유다 왕중에서 전무후무하게 악한 왕이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히브리서 11:37절에 이런 구절 있습니다.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이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던 선지자들이 받았던 고난을 설명하는 구절입니다. 이 중에서 어떤 고난이 제일 심해 보입니까? 그래도 톱으로 켜는 것이 그중에 제일 큰 고난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이 일을 므낫세가 했습니다. 누구에게 했을까요? 바로 이사야 선지자를 톱으로 켜서 죽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웃시야 왕의 사촌이었으니 그의 아들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 므낫세 이렇게 되니까 이사야 선지자는 므낫세의 고조 할아버지 정도가 됩니다. 그러니까 므낫세는 자기 할아버지를 죽인 패륜을 저질렀던 겁니다. 이 정도면 그중에서 제일 악하다 할수 있겠죠?
또 오늘 본문인 21장 2-6절에 의하면 그는 먼저 아버지가 헐었던 산당을 다시 세우고, 바알과 아세라를 위한 제단을 만들고, 일월성신을 섬겼습니다. 심지어 6절을 보면, 자기 아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게 했다고 하는데, 이것은 이방의 풍습을 따라 아들을 불로 태워 제사지냈다는 뜻입니다. 참 어떤 말로 형용하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기가 차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 사술을 행하며 신접한 자와 박수를 신임하여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그 진노를 일으켰다. 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므낫세는 마치 혼자서 세계 종교박람회를 개최하고 우상 백화점을 차린 듯합니다. 아무튼 할수 있는 건 다 합니다~ 그런데 므낫세만 악한 것이 아니라 21장 9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므낫세와 백성이 같습니다. 이 백성이 므낫세의 꾐을 받고 악을 행한 것이 여러 민족 보다 더 심하였더라 16절 또 무죄한 피를 심히 많이 흘려 예루살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가득하게 되었더라.
그런데, 그의 아버지 히스기야가 어떤 사람인지를 아는 우리는 여기서 의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떻게 아버지와 달라도 이토록 다를 수 있을까요? 악해도 악해도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의 역사를 망라해 이토록 악한 왕이 선한 아버지 밑에서 나올 수 있을까? 라는 겁니다. 물론 아버지가 훌륭했다고 해서 아들마저 훌륭하게 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만, 둘의 길이 달라도 너무 다릅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우리는 그 희미한 실마리를 므낫세의 이름에서 찾게 됩니다. 최초 아들을 므낫세라고 작명한 사람은 애굽의 총리였던 요셉이었습니다. 형들에 의해 애굽으로 팔려가 종살이와 옥살이를 경험했던 요셉이 총리가 된 후 첫 아들을 낳고 므낫세라고 지었습니다. 그 뜻은 망각, 잊어버린다는 뜻입니다. 얼마나 지난 삶이 고통스럽고 한이 되었으면, 그리고 그 고통의 삶이 첫 아들로 인해 다 사라졌으면 하는 바램으로 아들의 이름을 ‘다 잊혀진다’는 뜻의 므낫세로 지었겠습니까! 그렇다면, 15년의 삶을 하나님께 연장받고 그 은혜의 15년 중 3년의 시간을 보냈던 히스기야는 도대체 무엇을 잊어버리기 위해 아들의 이름을 므낫세라고 지었던 것일까요? 우리는 그 이유에 대해 명확히 알 수는 없지만, 어제 본문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히스기야는 망각하지 말아야 할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잊지 말아야 할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한 아버지와 더불어 12년을 보낸 아들 므낫세는 아버지 히스기야 사후 아예 그 아버지의 하나님마저 망각해 버렸습니다. 이 세상에는 잊어야 할 많은 것들이 있습니다. 망각은 인간에게 허락된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를 우리 되게 하신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므낫세는 바로 그 하나님을 망각했기에 유다왕국 역사상 가장 타락한 왕이 되었던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의아해 할 수밖에 없는 또 다른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이토록 가장 타락한 왕을 가장 오랜 시간인 55년 동안 왕으로 통치하도록 허락하셨느냐는 겁니다. 우리는 그 해답을 역대하 33장에서 발견합니다. 하나님께서 악행을 저지르는 므낫세와 그의 백성에게 선지자들을 통해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해도 그들은 듣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앗시리아 왕의 군대를 보내 유다를 치게 하셨고, 그들은 므낫세를 사로잡아 쇠사슬로 묶어 바빌론으로 끌고 갔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 일어난 일이 전혀 생각 못한 반전입니다. 역대하 33:12-13이 다음과 같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쉬운 성경으로 제가 봉독해 드리겠습니다. “므낫세는 고통을 당하는 가운데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빌었습니다. 므낫세는 자기가 조상들의 하나님 앞에서 저지른 일들을 뉘우쳤습니다. 므낫세가 기도드리니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를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래서 여호와께서 그를 예루살렘으로 돌려 보내 주셨습니다. 그 때서야 므낫세는 여호와께서 참 하나님이신 것을 깨달았습니다.”
둘도 없는 패역한 왕이었지만, 그가 심판의 자리에서 진심으로 뉘우치며 기도하니 하나님께서 그런 므낫세를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래서 다시 왕으로 복권시켜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때 므낫세는 비로소 자신의 죄와 패역조차 므낫세 하신 그 하나님을 아버지의 하나님이 아닌, ‘므낫세의 하나님’으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참 놀랍죠? 하나님을 망각한 므낫세와 그의 악행을 므낫세 하신 하나님 때문에 우리가 지금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성도님들 그랬습니다. 비록 므낫세의 55년 통치의 대부분은 하나님과 그 은혜를 므낫세한 패역과 악행의 길이었지만, 그의 끝은 자신의 악행조차도 므낫세하시고 새롭게 세워주신 그 하나님을 기억한 삶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의 숨이 다할 그 날까지 55년을 통치했던 겁니다. 그런데 그의 아들인 아몬은 어떻습니까? 고작 2년 만에 하나님께서는 그를 심판하시고 요시야를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우리는 “왜? 그러셨지?”라고 하나님께 반문하려다가도 문득 우리 속에 있는 ‘므낫세’를 봅니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신 그 하나님을 생각해 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소망이 있는 겁니다. 그러기에 이 새벽 이렇게 나와 하나님께 기도하는 거겠죠? 성도는 므낫세 하면 안됩니다. 우리의 유일한 구원자 되시는 우리 하나님을 영원토록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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