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심천사랑의교회

2022-7-15 큐티말씀 - 하나님 이름에 명예를 걸고(왕하19:20-27) - 김도완목사

사무간사22022.07.16 17:54조회 수 166댓글 0

    • 글자 크기

본문: 왕하19:20-27

제목: 하나님 이름에 명예를 걸고

 

중동지역에서 전통적인 강자였던 애굽이 그 힘을 잃어 버리고 변방에 소국이었던 앗수르가 승승장구해서 중동의 신흥강자가 됩니다. 실제 역사적으로도 앗시리아 제국의 왕 산헤립은 전쟁에 능한 왕이었다고 합니다. 성을 점령하기 위해 투석기가 개발되고 땅굴도 파고 심지어 패러글라이딩을 이용한 공중전까지 역사적으로 그가 했던 기발하고도 창의적인 전쟁기법은 전쟁사에 기리기리 남을 정도로 명장이었다고 합니다. 그랬던 앗수르고 산헤립이였기에 교만이 하늘 끝에 닿았고 결국은 해서 안되는 막말까지 하게 됐는데요. 그것은 바로 여호와 하나님을 욕하는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유다에 쳐들어 와서는 북이스라엘이 멸망 당한 것처럼 남유다도 곧 멸망 당할 것인데. 북이스라엘이 멸망 당했을 때에 그들이 믿던 여호와 하나님이 아무런 힘을 쓰지 못했던 것처럼 너희 유다도 하나님이 도와주지 않을 것이라는 아니 천하의 앗수르 신 앞에서는 돕고 싶어도 도울 수 없을 것이라는 하나님을 모욕하는 소리를 거지 발사게 같은 언어의 천재 랍사게가 히브리 말로 온 유다백성이 들을 수 있게 떠듭니다. 일종의 심리전인거죠? 이 소리를 히스기야도 들었습니다. 이런 위기의 상황에서 히스기야는 “여호와 하나님만이 세상의 창조주로 고백하며, 하나님을 모욕하는 산헤립의 오만함을 심판하여 달라고 기도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형편을 보고 기도하는데 반해 히스기야는 환경이 아닌 말씀을 근거로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사야는 하나님께 기도한 히스기야의 응답을 가지고 와서 전합니다. 

 

오늘 본문 20절이 이렇게 시작합니다.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히스기야에게 보내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앗수르 왕 산헤립 때문에 내게 기도하는 것을 내가 들었노라 하셨나이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이사야 예언자를 통해 응답하시는 내용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두 사람이 환상의 콤비죠? 먼저, 이사야는 앗수르 왕 산헤립이 했던 말을 그대로 인용하며 그의 오만함을 강조합니다. 산헤립 그는 수많은 병거로 많은 지역, 강대국을 정복했던 자신의 힘과 지혜를 자랑합니다. 그러나 지금 하나님께서는 산헤립이 자기 힘을 자랑하며, 자신이 마치 신이라도 된 것처럼 오만하고 교만하다고 고발합니다. 그에게 하나님께서는 25절 “너는 듣지 못하였느냐?” 하시며, 산헤립이 그렇게 강한 나라들을 정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열방을 징벌하시기 위한 진노의 막대기로 사용하셨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진노의 막대기가 자기가 이 모든 일을 한 것으로 착각합니다. 그러나 온 세상의 진정한 왕은 온 세상을 정복한 앗수르 왕이 아니라, 그가 그렇게 하도록 계획하시고 실행하신 하나님이라는 찬양이 지금 울려 퍼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앗수르 왕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고 하십니다. 그의 깊은 속까지 다 아셔서 분노와 오만을 알고 계십니다. 앗수르 왕의 분노와 오만을 들어 알고 계신다는 것은 그가 이전에 무너뜨렸던 여러 민족의 힘 없는 죽은 우상들과는 다르게, 하나님께서는 살아 계시고 전지하시고 전능하시다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앗수리 왕에게 코에 쇠 갈고리를 꿰고, 입에 재갈을 물려 왔던 길로 되돌아가게 하겠다 하십니다. 이런 모습은 앗수르가 포로를 다루던 모습입니다. 역사적으로 앗수르는 큰 제국을 지배하기 위해 너무나도 잔인한 징벌로 피지배국들을 통치했습니다. 항복하면 살려주지만 성문을 열지 않고 결사항전이라도 하는 날에는 그 온 성에 있는 모든 사람들 심지어 임산부의 배를 가르고 아이들을 나무에 던져 죽이는 타르. 석유같은 불에 사람을 집어 넣고 사람들의 껍질을 뺏겨서 성에 달아 놓는 극악 무도한 짓을 서슴치 않았던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가 포로들에게 했던 것처럼, 이제 자신이 그런 취급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오만하고 극악 무도하고 무지비한 악한 산헤립에게 벌을 내리심으로써 산헤립의 정복은 실패할 것이라고 그가 하는 모든 노력은 허사가 될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산헤립이 예루살렘으로 쳐들어오지 못하도록 하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예루살렘 성에 화살도 쏘지 못하고 방패도 성을 향하여 세우지 못하고 토성을 쌓지도 못할 것이며, 공격은 커녕 성에 오지도 못하고 돌아갈 것이라 하십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확인시켜줍니다. 

 이제 하나님의 말씀은 유다를 향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다의 회복이 3년에 걸쳐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올해와 내년은 씨를 뿌리지 않은데도 자란 곡물들을 먹을 것이며, 3년째가 되어서 농사짓는 것을 먹을 것이라 하십니다. 어떻게 이런 말씀을 하실수가 있으실까요? 하나님은 역사의 주인이시며 온 세상의 자연법칙까지도 다스리스는 온 땅의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유다의 남은 자들 회복될 것을 약속하십니다. 그리고 이들을 통해 유다가 회복될 것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아니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까요? 지금 밖에는 앗수르 군사가 진치고 있는데. 먹을 물도 없고 더 이상 버틸수 없는 형편인데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납니까? 하나님은 이렇게 믿음 없는 히스기야에게 유다 백성에게 그리고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하나님 자신의 이름에 명예를 걸어 보증합니다. “나 주의 열심히 이 일을 이룰 것이다” 아멘. 우리보고 열심히 노력해서 하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나 주의 열심히 이 일을 해낼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보호하시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다윗과 맺으신 언약 때문입니다. 유다의 약함에도 악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여전히 자신이 세우신 언약에 충실하신 분이라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 약속대로 하나님께서는 약속을 지키십니다. 35절 “이 밤에 여호와의 사자가 나와서 앗수르 진영에서 군사 십팔만 오천명을 친지라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보니 다 송장이 되었더라” 밤에 여호와의 천사가 앗시리아 군대를 치기 위해 나왔고 여호와의 전쟁으로 십팔만 오천 명이 하룻밤 사이에 죽었습니다. 어떤 일이 구체적으로 일어났는지 알 수는 없으나, 하룻밤 사이에 자신이 자랑하던 군대를 잃은 산헤립은 되돌아갔고, 하나님의 약속대로 아들들에게 살해당합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일을 이루시기로 하시자 앗수르를 몰아내는 일이 아무 일도 아니었던 것처럼, 아무 어려운 일도 아닌 것처럼 보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들이 성취되면서 유다에 대한 앗수르의 위협이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히스기야는 기도로 앗수르의 무서운 군대를 물리치고 유다와 예루살렘을 지켰습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산헤립은 자신을 신적 능력의 소유자로 자신을 높입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은 그토록 강해 보이는 산헤립도 결국 하나님의 손안에 있음을 보여줍니다. 세상의 힘 있는 자들은 자신의 능력을 뽐냅니다. 그들뿐만 아니라, 우리도 사소한 일에서도 우리의 능력과 힘을 자랑하고 의지합니다만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무의미하고 헛된 것인지를 오늘 본문을 통해 살펴 봤습니다. 우리의 구원이 어디에서 옵니까? 우리에게서 아닌, “나 주의 열심이 이 일을 이룰 것이다.”하시는 하나님께 옵니다. 그러니 우리의 구원은 처음부터 끝까지 오롯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거기에 우리의 교만이 낄 자리 없습니다. 우리의 교만이 하나님의 열심보다 앞설 때, 우리는 하나님의 참 뜻 놓치게 됩니다. 또한 구원의 이유는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서, 그리고 다윗과 맺으신 언약 때문입니다. 그들의 공로가 아닌 우리의 공로가 아닌 오래전 다윗과 언약을 지키시는 하나님과의 신실함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으로부터 값없이 받은 선물 같은 은총입니다. 오늘 본문은 히스기야가 드린 기도의 응답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능력을 의지하는 산헤립의 교만의 길이 아닌, 히스기야처럼 하나님을 의지하며 그분께 구하는 기도의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를 비워내고 겸손히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며 그분의 일하심을 구할 때,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열심이 일하는 통로는 바로 우리의 겸손입니다. 그런 믿음의 고백 가운데 주께서 허락하시는 은총에 감사와 기쁨이 넘치는 하루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 글자 크기
2022-7-18 큐티말씀 - 므낫세 하면 안됩니다(왕하21:1-26) - 김도완목사  (by 사무간사2) 2022-7-14 큐티말씀 - 인생이 어려울 때(왕하19:1-19) (by 사무간사2)

댓글 달기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876 2022-7-20 큐티말씀 - 사랑은 움직이는 것입니다(왕하23:1-20) - 김도완목사   사무간사2 2022.07.22 155
875 2022-7-19 큐티말씀 - 발견한 책의 말씀(왕하22:1-20) 사무간사2 2022.07.19 143
874 2022-7-18 큐티말씀 - 므낫세 하면 안됩니다(왕하21:1-26) - 김도완목사  사무간사2 2022.07.18 189
2022-7-15 큐티말씀 - 하나님 이름에 명예를 걸고(왕하19:20-27) - 김도완목사 사무간사2 2022.07.16 166
872 2022-7-14 큐티말씀 - 인생이 어려울 때(왕하19:1-19) 사무간사2 2022.07.16 142
871 2022-7-13 큐티말씀 - 사탄의 공격무기(왕하18:17-37) 사무간사2 2022.07.16 104
870 2022-7-12 큐티말씀 - 믿음생활의 원리(왕하 18:1-16) 사무간사2 2022.07.16 146
869 2022-7-11 큐티말씀 - 여호와도 경외하고(왕하 17:24-41) - 김도완목사  사무간사2 2022.07.11 151
868 2022-7-8 큐티말씀 - 반복되는 역사(왕하15:23-38) - 김도완목사 사무간사2 2022.07.09 176
867 2022-7-7 큐티말씀 - 죄가 무서운 이유(왕하15:1-22) 사무간사2 2022.07.09 135
866 2022-7-6 큐티말씀 - 하나님의 관점으로(왕하14:17-29) 사무간사2 2022.07.06 134
865 2022-7-5 큐티말씀 - 다윗의 길로 가라(왕하14:1-16)  사무간사2 2022.07.06 83
864 2022-7-4 큐티말씀 - 믿는 자여 어이 할꼬(왕하13:14-25) - 김도완목사 사무간사2 2022.07.06 125
863 2022-7-1 큐티말씀 - 언약자손으로 양육하라(왕하11:13-12:3) - 김도완목사 사무간사2 2022.07.01 153
862 2022-6-30 큐티말씀 - 인생의 성패는 하나님께(왕하11:1-12) 사무간사2 2022.07.01 144
861 2022-6-29 큐티말씀 - 주의 일을 하는 자세(왕하10:15-36) 사무간사2 2022.07.01 190
860 2022-6-28 큐티말씀 - 도구 그 이상의 삶(왕하9:30-10:14) 사무간사2 2022.07.01 139
859 2022-6-27 큐티말씀 - 평안이 없는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왕하9:11-29) - 김도완목사 사무간사2 2022.07.01 212
858 2022-6-24 큐티말씀 - 복된 소식을 들었거든(왕하7:3-8:6) - 김도완목사 사무간사2 2022.07.01 89
857 2022-6-23 큐티말씀 - 위기에 대처하는 법(왕하6:24-7:2) 사무간사2 2022.07.01 138
이전 1 ... 25 26 27 28 29 30 31 32 33 34... 73다음
첨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