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왕하9:11-29
제목: 평안이 없는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9장에서 엘리사가 자기 수하의 청년을 시켜 북이스라엘의 군대장관이었던 예후 장군에게 기름을 부으라고 말합니다. 기름을 붓는다는 것은 왕으로 세우라는 뜻입니다. 그리고는 예후를 왕으로 세우는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는데요. 7절입니다. “너는 네 주 아합의 집을 치라 내가 나의 종 곧 선지자들의 피와 여호와의 종들의 피를 이세벨에게 갚아 주리라” 그리고 8절 아합의 온 집을 멸망시키라고 합니다. 어리둥절했던 예후를 주변 사람들이 왕으로 인정하자 예후가 본격적인 사명을 감당합니다. 예후가 병거를 타고 이스르엘로 갑니다. 이를 보고 있던 파수꾼 하나가 왕에게 보고를 하고 왕은 전령을 보내 평안을 묻습니다. 평안하냐는 말은 “별일 없느냐? 무슨 일이 있느냐?”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예후가 뭐라고 말합니까? 18절인데요 “평안이 네게 상관이 있느냐?” 이게 무슨 뜻입니까?“ 너와 평안이 무슨 상관이냐?”라는 말인데요. 즉, 네가 요람왕과 함께 있는데 평안은 무슨 평안이냐는 말입니다. 성도님들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습니다. 지금 예후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아합의 가문을 멸하고자 합니다. 악인에게는 심판이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도 세상은 하나님 없는 평안을 이야기하고 심지어 하나님 없는 평안을 희망합니다. 그래서 악인이 악인인 것입니다. 예후가 말하고 있는 그러므로 내 뒤로 물러나라는 말은 “진짜 평안을 원하면 내 편에 서라”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전령이 소식이 없자 이스라엘 왕은 두 번째 전령을 보냅니다. 똑같은 패턴이죠? 전령에게 진짜 평안을 원하면 내 편에 서라고 합니다. 그리고 22절에 드디어 요람과 만납니다. 이번에는 요람이 예후에게 평안햐냐고 묻습니다. 예후야 평안하냐? 그러자 예후의 답변이 기가막힙니다. “네 어머니 이세벨의 음행과 술수가 이렇게 많으니 어찌 평안이 있으랴” 전령들도 예후도 같은 단어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같은 평안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요람과 예후가 생각하는 평안은 전혀 다른 것이었습니다. 요람이 생각하는 평안은 자신이 왕으로 있는 이스라엘이 왕위가 안전하고, 견고하게 서는 것입니다. 자기의 왕권이 유지되고, 별 일 없이 사는 것 그가 생각한 평안입니다. 그러나 예후가 생각한 평안은 다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요람과 그의 어머니 이세벨이 사라지는게 평안이었습니다. 엄청난 모순입니다. 한 사람은 자신이 잘 되는 것이 평안이라고 말하고, 다른 사람은 그가 없어지는게 평안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바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평안입니다. 이처럼 세상의 평안은 절대적이지 않습니다. 기준에 따라서 사람에 따라서 시대와 나라에 따라 달라집니다. 나에게는 평안이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비극이 될 수 있습니다. 다들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평안을 말하지만, 서로가 생각하는 평안은 다릅니다. 세상 어디에도 진정한 평안은 없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평안은 오직 하나님안에만 있습니다. 그러기에 세상은 평안을 모릅니다. 악인에게는 평안이 없기 때문입니다. 성도님들 진정으로 참된 평안을 원하십니까? 우리 인생 가운데 진정한 평안이 있기를 소망하십니까? 그렇다면 하나님 편에 서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을 누리게 될 수 있습니다. 바라옵기는 세상의 평안이 아닌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평안 안에 거하시는 심천사랑의교회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소원합니다.
또 중요한 한가지 교훈을 우리에게 주시는데요. 오늘 본문인 21절에 보면 놀랍게도 요람과 예후가 만난 곳이 “나봇‘의 땅 이라고 성경은 말해 줍니다. 이 땅은 예전의 나봇의 포도원이 있던 자리였습니다. 나봇은 하나님이 조상들에게 주신 땅을 팔 수 없다고 하여 왕인 아합에게 팔지 않았는데, 아합의 아내 이세벨이 음모를 꾸며 왕을 모독했다는 이유로 나봇을 죽이고 포도원을 빼앗아 버립니다. 이 일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아합 가문을 멸하시겠다고 엘리야를 통해서 예언하셨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심판과 진노가 바로 바로 임하지 않기에 하나님의 심판과는 전혀 상관없는 것처럼 살아갑니다. 에덴동산에서 정녕 죽으리라 했는데 바로 당장 죽지 않으니까 사람들은 “봐라 내가 이렇게 살아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잖냐?” 이렇게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악인이고 악인은 평안이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예후와 요람이 나봇의 포도원에서 만났다는 것은, 이 일이 그냥 우연히 발생한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내리신 심판이라는 것을 증거합니다. 아합의 아들 요람이 그냥 아무데서나 죽었다면 우연이 죽었겠지? 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나봇의 포도원에서 죽었으니, 죄 값으로 심판받아 죽은 것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억을 더듬어 보셔야 할 것이 하나 있는데요 이 심판은 아합의 때가 아니라, 아합의 아들 요람의 시대에 내렸습니다. 왜냐하면 아합이 하나님 앞에 뜻을 돌이켜 회개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나봇의 땅을 가지고 있던 아합에게 하나님의 심판은 미뤄진 것이지 없어지거나 취소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아합의 가족들이 평안한 시간을 보내었다 할지라도, 실제는 다가오는 심판의 때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마치 예수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신약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는 심판의 말씀 안에 살고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성경의 말씀하신대로 분명히 종말이 올 것이며, 선악간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게 될 것임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비록 눈에 보이는 현실이 평안해 보인다 할지라도, 하나님 없는 인생의 실상은 지금도 심판의 때이고 그 심판이 성취되는 그때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님들, 하나님 없이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고 살아가는 이 세상과 아합처럼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식하고 살아가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심천사랑의교회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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