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왕하3:1-12
제목:영적분별력이 없으면
첫째, 분별력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보다 인간관계를 더 중시한다.
남유다왕 여호사밧은 북이스라엘왕 여호람의 제안을 거부하지 않았다. 여호람은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고,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 행했던”(2-3절) 악한 왕이었다. 그런데 여호사밧은 이전에도 아합왕의 제안에 동참하여 전쟁에 나갔다가 죽을 뻔 했었고, 그로 인하여 하나님께로부터 악한 자를 돕고,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를 사랑하는 것이 옳으냐고 책망을 받았었다.(역대하19:2)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사밧은 여전히 여호람의 악을 보지 못하고 그를 형제라고 부르면서 전쟁에 동참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여호사밧의 분별력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여호사밧은 참 좋은 왕이었지만, 그는 하나님의 뜻보다 인간관계를 중시할 때가 많아서,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아합왕과 교제하고,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여호람왕과도 교제하였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도 분별력이 없으면 악을 악으로 보지 않게 되고, 그저 인간관계만 중시하게 된다. 여호사밧과 여호람은 사돈관계이다. 아합의 딸이 여호사밧의 며느리이기 때문에 여호람은 여호사밧에게 며느리의 오빠가 된다. 이러한 인간관계가 여호사밧으로 하여금 여호람의 악을 보지 못하게 방해했던 것이다. 가족이라는 이유 때문에, 친하다는 이유 때문에 악을 악으로 분별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진리에서 멀어지는 결과를 낳게 된다. 성도가 걸어야 할 신앙의 길에는 <인간관계>가 개입되어서는 안 된다. 성도에게 있어서 하나님과의 관계는 세상의 그 어떤 관계보다 우선되어야 한다. 물론 인간관계를 아예 무시하고 형제관계도 다 무너뜨리며 살라는 뜻이 아니다. 성도로서 형제가 어려울 때 돕는 것이 마땅하다. 또한 싸우지 않고 사이좋게 지내야 마땅하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관계를 무시하고, 진리도 무시한 채, 인간관계만 앞세운다면 결국 악을 악으로 보지 못하고, 분별하지 못하게 된다. 하나님과의 관계보다 인간관계를 앞세우는 사람이 되지 말라.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가까이 해야 한다. 성경을 읽고 배워야만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것이 무엇이며, 성도가 멀리해야 할 죄가 무엇인지 분별할 수 있게 된다. 간절히 권면하는데 말씀을 가까이 하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중시하고 악을 멀리하는 분별력 있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한다.
둘째, 분별력이 없는 사람은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하나님을 원망한다.
이스라엘왕과 유다왕과 에돔왕이 함께 연합군을 만들어 모압을 치려고 길을 간지 칠일만에 물이 떨어지게 된다.(9절) 그러자 여호람은 “이스라엘 왕이 이르되 슬프다 여호와께서 이 세 왕을 불러 모아 모압의 손에 넘기려 하시는도다”(10절)하면서 하나님을 원망한다. 그러나 세 명의 왕이 모압을 치러 가는 이유가 하나님의 명령 때문인가? 아니다. 모압이 이스라엘을 배신하고 조공을 바치지 않는 것 때문에 화가 나서 하나님께 묻지도 않고 자기 마음대로 전쟁을 일으킨 것이다. 일의 시작은 자기에게 있는데도 불구하고, 물이 없는 상황을 하나님 탓으로 돌리면서,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모압의 손에 넘기려 한다고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세 왕을 모압의 손에 넘기려고 하신 적이 없다. 그저 여호람이 눈앞에 되어지는 상황이 자기에게 불리하게 돌아가자, 즉 자신이 원하는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 대하여 불만을 가지고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이다. 이 전쟁은 하나님과 상관없는 자기 욕심에서 비롯된 것인데, 하나님이 자기를 좋은 길로 인도하지 않는다고 원망불평하는 것이다. 어려움을 겪는 분들 중에는 “하나님이 왜 나에게 이런 일을 주시는지 모르겠다”고 하는 분이 있다. 병을 주셔도 왜 하필 이런 병을 주시고, 고통을 주셔도 왜 하필이면 이런 고통을 주시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은 자기가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큰 죄인인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을 항상 풍족함과 형통함으로 인도하셔야 할 이유가 있는가? 본래 우리는 도저히 구원받을 자격이 없는 악한 자들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감히 하나님께 나올 수도 없는 자들이며, 하나님께 무엇을 요구할 수 없는 자들이다. 우리는 모든 것을 잃어버려도 마땅한 죄인이며, 실패해도 마땅한 존재이고, 병들어 죽어도 마땅한 존재이고, 지옥에 떨어져도 마땅한 존재이다.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삶속에 어떤 어려움을 당한다고 해도, “하나님이 왜 나에게 이런 일을 행하시냐”고 원망하기보다는, 오히려 “내 죄에 비하면 이 일은 가벼운 것입니다”라고 고백하게 된다. 우리가 얼마나 큰 죄인이며, 얼마나 아무 것도 아닌 존재인지를 알게 되면 어떤 상황에서도 원망보다는 은혜를 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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