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살전 5:1-11
제목: 이렇게 위로하라
데살로니가 교회가 어려움에 처했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나 궁금해서 견딜수 없는 마음으로 디모데를 보낸 사도바울은 걱정했던 것 과는 달리 ‘고난 중에서도 서로 위로하고 인내로 사랑으로 잘 견디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사도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한 칭찬과 함께 당부의 말을 몇가지 건냅니다. 형제 사랑의 관해 그리고 마지막 때에 관한 이야기들입니다. 그래서 어제와 오늘 본문이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궁금한게 하나 있었습니다. 혹시 신약성경 중에서 그것도 서신서 중에서 가장 먼저 쓰인 편지가 어디인 줄 아십니까? 바로 데살로니전서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것을 본 사람들이 아직도 존재했던 그런 시대였습니다. 분명히 예수님이 몇 날이 못되어 다시 오신다고 했지만. 예수님이 승천하신지 벌서 20년 정도가 됐어도 예수님은 아직 오시지 않았습니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궁금한 건. 그런데 이렇게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다가 박해를 받아서 순교를 했든지 아니면 자연적으로 수명이 다해서 죽임을 맞이한 성도들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이게 궁금했을 것입니다. 아직 예수님 오지 않았는데 먼저 죽은 이들은 어떻게 되는거지? 그래서 사도 바울이 어제 본문인 4장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13절 부터인데요.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소망 없는 자들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은 슬퍼하지만 소망 있는 우리들은 슬퍼하지 않고 오히려 기쁨으로 그들의 죽음을 소망으로 맞이할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께서 호령과 나팔소리로 하늘로부터 강림하실때에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리고 우리들도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영생을 산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그러므로 이런 말로 서로 위로하라 고 하십니다. 세상은 슬퍼하지만 그래서 추도하지만 추억하고 안타까워 슬퍼하지만 우리 믿는 사람들은 추모합니다. 추억하고 생각합니다. 뭘 생각합니까? 그 죽음 이후에 찬란한 천국에서 지금도 우리 주님과 함께 있을 성도들을 생각하며 천국에서 함께 할 그 소망을 가지고 이 땅을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이 위로가 슬픔을 당한 모든 가족들에게 함께 하시길 소원합니다.
이렇게 말했더니 아마 또 궁금했겠죠? 그래서 다시 질문합니다. 그럼 언제 예수님 오시나요? 그래서 오늘 본문 5장이 시작되는 겁니다. 1절입니다.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쓸 것이 없다는 겁니다. 왜요? 바울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바울만 모르는 것이 아니라 심지어 우리 예수님도 모른다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4:36절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하셨습니다. 또 사도행전 1:7절에서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바 아니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아버지만 아신다는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날을 알 수 있다.’ ‘알아냈다.’ ‘자기 한테만 하나님이 몰래 알려 주셨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모두 성경을 부인하는 것이고, 거짓말을 하는 것입니다. 이 이단 사이비들에 속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인생이 파탄나고 안타깝게도 한국교회가 늘 깨어 준비해야 되는 이 종말이라는 개념을 단어조차 말하는 걸 금기시하는 분위기가 되어 버렸습니까? 악한 사탄이 만들어 놓은 계략임을 알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 나도 모른다. 그럼에도 사도바울은 계속 편지를 씁니다. 모른다고 그냥 피하는 것이 아니라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2절인데요 주의 날은 도적같이 임할 것이다. 도둑이 몇일 몇시에 올꺼니까 돈 많이 준비해 놓으라고 합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시간에 와야 본인의 목적을 달성할수 있겠죠? 그래서 그 날은 그렇다는 겁니다. 또 3절 임신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있는 것처럼 그 날은 반드시 올꺼라는 겁니다. 도둑은 안 올수도 있지만 임신한 여자가 해산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 것처럼 우리 주님 가셨으니 다시 오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날짜를 말 안해 주실까요? 아마 예수님이 내년에 5월에 오신다고 하셨으면 저 지금 예를 든겁니다. 잠결에 우리교회 부목사가 예수님이 내년에 오신다 이러면 안됩니다. 만약 내년에 오신다고 하시면 올해는 교회에 아무도 안오시겠죠? 그러다가 혹시 모르니 4월부터 사람들은 교회에 와서 주여~ 할 것입니다. 우리 중고등부 친구들이 많이 물어보는 질문 중에 하나도 이런 겁니다. 십자가에 함께 달린 강도처럼 죽을 때 예수님 믿는게 복된거 아니냐? 설마 여러분들도 그렇게 생각하는거 아니시죠? 전 분명하게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 사람은 제일 복되게 예수님을 믿은게 아니라 제일 안타깝게 예수님을 믿은거라고. 성도님들 예수님을 믿는게 힘드십니까? 예수님 믿으면 교회에서 노가다 해야 합니까? 우리의 재산을 다 바쳐야 합니까? 나쁜짓 하면 벼락맞아 죽습니까? 지금 당장 예수님을 믿는게 좋은 거 아닌가요? 하나님과의 끊어진 관계를 회복시켜주시기 위해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 지시고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시는 그 예수님이 지금 우리와 함께 있는게 좋지 않으신가요? 왜 예수님은 대학가서 믿어야 하고 결혼하고 나서 믿어야 좋은 건가요? 왜 힘든 인생 고생은 다 하고 나서 말년에 예수님을 믿으려고 하십니까? 잘못 생각해도 한참 잘못된 생각입니다. 이런 생각을 버리시길 소원합니다. 지금이 은혜받을 때요 구원이 때입니다. 아멘
그런데 성도님들 재림의 때를 알면 뭐합니까? 주님이 다시 오실 날을 안다고 해도, 그 주님을 믿지 않고 주님 오심을 준비하고 있지 않으면, 주님 앞에서 쫓겨날 뿐입니다. 마태복음 8:11-12절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 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그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신분으로 혈통으로 주님께 인정받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고 그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의 열매로 판단하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말씀하신 마지막 때를 대비하는 유일한 방법은 ‘준비하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4:44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이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아멘.
“그래서 지금 당장 오늘이라도 오셔도 괜찮은 삶을 사는 것” 오히려 그 예수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것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재림의 때를 말하지 않고, 준비를 강조했습니다. 재림에 관심이 없는 세상 사람들은 자고 취한다고 했습니다. 5장 7절 자는 자들은 밤에 자고, 취하는 자들은 밤에 취하되, 자기 육신의 욕구를 따라 자고, 취할 뿐, 하나님의 뜻이나 주님의 재림은 관심에 없습니다. 그들은 ‘밤에 속한 사람’입니다. 바울은 우리를 ‘낮에 속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5장 8절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정신을 차리고, 믿음과 사랑의 호심경을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 ‘정신을 차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악한 사탄이 말하는 것처럼 “지금은 아니야” “지금은 괜찮아” 그래서 세상 사람들처럼 소문과 소식에 시대의 유행을 따라 가는 것은 정신을 놓고 사는 것입니다.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분별력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사도바울은 마지막으로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이렇게 당부합니다. 9절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심이라. 이 얼마나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듣고 싶은 말이었을까요? 그리고 얼마나 우리가 듣고 싶은 말입니까? 주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고난을 받게 하고 우리를 벌하려 하신 것이 아니라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주실려고 하신 거라고 이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깨어 있던지 자든지 지금 이 세상을 살고 있는 성도들이든 이미 죽음을 맞이한 성도들이든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셨느니라. 아멘!! 이게 사도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 하고 싶은 말입니다. 걱정마라.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해 주셨다. 아멘!! 11절 그러므로 피차 권면하고 서로 덕을 세우기를 너희가 하는 것 같이 하라. 아멘 그러므로 이러한 말로 서로 위로하라는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처럼 죽든지 살든지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케 하기 위하여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사 너희들을 살리셨으니 이제는 산 사람처럼 소망 있는 사람들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당당히 짊어짐으로 천국 소망을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이 은혜가 함께 하시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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