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느 12:27-47
제목: “입당감사예배”
우리는 성경을 읽다가 족보가 나오면, 그냥 뛰어 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습니다. 그냥 읽고 때울 때도 많습니다. 그래서 읽기는 읽었는데 남아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오늘 본문도 너무 길어서 처음에는 다 읽지 않고 앞부분과 뒷부분만 읽으려고 했습니다. 속으로 하나님 너무 하십니다. 족보는 한번이면 족합니다. 이게 솔직한 심정이었는데 그런데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지난 주 토요일을 포함해 벌써 여러번이죠? 교회청소와 정리를 위해 남성성도들의 참여를 바란다고 남성부장님이신 김성근 집사님이 남성방에 올려 주셨을 때 한 명씩 달리는 그 이름이 얼마나 큰 힘이되고 위로가 됐는지. 그리고 그날 얼마나 많은 남녀 성도님들이 손을 보태주셔서 어제 부활주일 겸 입당감사 예배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그걸 생각하니 그 한 사람 한 사람이 중요한거죠? 성경이라고 하는 이 짧은 지면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이름을 일일이 기록하고 기억하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신경써서 읽어야 되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인 12장의 명단은 고레스의 칙령으로 1차 포로 귀환할 때의 제사장들과 백성들의 이름에서부터 시작합니다. 그러니까 약 100년전 선조들의 이름부터 이 명단이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2차 귀환과 지금 이 땅에 살고 있는 3차 포로귀환 때의 명단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선조들의 수고와 노력이 있었기에 지금 이렇게 성벽을 봉헌하게 되었음을 잊지 않겠다는 감사의 노력으로 생각됩니다. 과거가 있어야 현재가 존재합니다. 우리도 어떻습니까? 기독교가 이 땅에 들어온지 140년이 조금 지났습니다. 1885년에 아펜젤러, 언더우드 선교사가 하나님을 모르는 이 어둠에 땅에 들어와 복음의 씨를 뿌렸을 때 상상이나 했을까요? 100년 후 대한민국에 이렇게 많은 그리스도인이 있게 될 줄 말입니다. 그 때를 시작으로 8000명이 넘는 선교사들의 수고와 은혜로 우리는 그 열매를 지금 누리고 있습니다. 그 때의 예배당은 없어졌지만 그때 수고하고 헌신 했던 수 많은 사람들의 이름은 남아, 지금도 우리의 그리고 하나님의 기억에 존재하고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한 사람 한 사람 교회가 건물이 아닌 믿는 사람들의 공동체라는 사람에 관심을 두는 하나님의 방법이고 이유일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성벽 봉헌식에 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몇 가지만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30절이 이렇게 증거합니다.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몸을 정결하게 하고 또 백성과 성문과 성벽을 정결하게 하니라” 성전을 봉헌을 하든, 성벽을 봉헌하든, 예배를 올려드리든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봉헌을 하는 사람들의 정결함이라는 사실입니다. 그 순서를 보니 제사장, 레위인, 백성들, 성문, 성벽 순입니다. 지금으로 하면, 예배를 위해 수고하는 예배위원들 설교자 기도자 성가대와 찬양팀 방송으로 안내로 성찬위원으로 수고한 사람들부터 정결하게 하고 그리고 성도들, 예배당 안과 밖 예배당 밖 순으로 정결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 순서를 잊으면 안됩니다. 제가 이번주 그랬던거 같습니다. 할게 너무 많아 정작 기도하는 일에 또 자신을 정결하게 하는 일에 게을리 했습니다. 하나님 보다 사람들의 눈 높이를 맞추기 위해 분주하게 지냈던 날들이거 같아 죄송한 마음이 그지없습니다. 성도님들 새로운 예배당을 위해 앞으로도 할게 많고 많겠지만 봉헌을 드리는 사람의 정결함이 하나님에게는 최고의 예물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고 먼저 우리 자신을 깨끗게 하는데 최선을 다하는 우리들이 되길 소원합니다. 저에게 하는 소립입니다. 또 31절에 아주 재미있는 장면이 등장을 하는데요. “이에 내가 유다의 방백들을 성벽 위에 오르게 하고 또 감사 찬송하는 자의 큰 무리를 둘로 나누어 성벽 위로 대오를 지어 가게 하였는데 한 무리는 오른쪽으로 분문을 향하여 가게 하니” 성벽 봉헌식은 백성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성벽으로 올라가 성벽을 밟기를 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성벽 밟기를 얼마나 해보고 싶었을까요? 혹시 기억나실련지 모르겠습니다만 느헤미야와 유다 백성들이 성벽을 중건하려고 할 때에 반대자들이 이렇게 조롱을 했었습니다. “성벽은 여우가 올라가도 무너질 것이다”라고 조롱을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온 유다 사람들이 그 성벽으로 올라가 성벽 봉헌식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반대자들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주시는 것 같고, 시편의 표현을 빌면, 시편 23:5절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의 말씀을 그림으로 보게 해 주신 것 같습니다. 당시 예루살렘 성벽은 그 폭이 약 9피트 한 3미터 정도였다고 합니다. 2-3명 정도가 나란히 서서 걸어갈 수 있을 정도입니다. 몇 만명이나 되는 모든 백성들이 한꺼 번에 성벽을 밟아도 될 정도로 튼튼하게 지은 성벽으로 인해 이스라엘 사람들은 감동하고 감격하고 기뻐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원수들의 조롱을 이렇게 유머스럽게 위트로 승화시켜 주셨던 것입니다.
이렇게 성밟기가 끝나고 내려와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는 것으로 성벽 봉헌식이 끝이 났습니다. 그 때의 모습을 성경은 이렇게 증언하는데요 43절이 이렇게 증거합니다. 이 날에 무리가 큰 제사를 드리고 심히 즐거워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크게 즐거워하게 하셨음이라 부녀와 어린 아이도 즐거워하였으므로 예루살렘이 즐거워하는 소리가 멀리 들렸느니라 아멘 모든 백성들이 함께 아주 즐거워했는데, 그 이유가 중요합니다. 그 이유가 하나님께서 백성들을 즐겁게 해 주셨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요 부분이 아주 아주 중요합니다. 성도님들 우리가 아무리 준비를 많이 하고 순서가 기가막히고 연습이 잘 되었다고 해서 우리는 사람들의 마음을 즐겁게 할수 없을뿐더러 그렇게 했다고 진짜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쁨이 아닙니다. 오직 진정한 기쁨은 누가요? 바로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녀’와 ‘어린 아이’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즐거워 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아무도 쇠외되지 않고 모두가 즐거워했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쁨은 아름다운 성벽과 성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아름다운 찬양과 멋찌고 감동적인 순서에 있지 않습니다. 떡준다고 좋은 선물 준다고 물론 그것도 아주 기쁘고 감사하지만 그렇게 채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주시는 감동과 은혜만이 우리들을 진정으로 기쁘게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회복되어야 할 예배의 참 모습일 것입니다. 그렇게 ‘예루살렘이 즐거워하는 소리가 멀리까지 들렸다’고 합니다. 이렇게 예배가 회복되자 예배를 통한 기쁨이 회복되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율법에 정한 대로 거제물과 처음 익은 것과 십일조 등을 다시 드리게 되었습니다. 다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을 누리게 되었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성도님들 우리 삶의 허물어진 믿음의 성벽이 있다면 우리도 다시 세우길 원합니다. 오늘 하루도 하나님께서 주신 삶의 영역에서 하나님 주시는 기쁨을 회복하는 우리 모두가 되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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