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느8:1-18
제목:말씀에 대한 사모함
첫째, 말씀을 배우는 것은 절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1-12절은 이스라엘백성들이 나팔절에 수문앞 광장에 나아와 에스라에게 율법을 읽어달라고 했고, 말씀을 듣고 깨달음으로 회개운동이 일어난 사건이다. 그런데 13절에 보면, 나팔절이 끝난 다음날 백성의 족장들과 제사장들과 레위사람들이 에스라를 다시 찾아왔다. 그 이유는 율법의 말씀을 밝히 알고자 하는 것이 이유였다. 즉 하나님 말씀에 대해 보다 상세히 알고 싶어했던 것이다. 14-15절 말씀을 보면, 그들이 밝히 알고 싶었던 율법의 내용은 초막절과 관련된 말씀이었던 것같다. 중요한 것은 족장들과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율법을 배우고자 에스라를 찾아왔다는 점이다. 왜인가? 초막절이 어떤 절기인지 몰랐기에 알고 싶어서 찾아온 것이다. 사실 족장들은 몰라도, 대제사장들이나 레위인까지도 초막절을 몰랐다는 것은 그들이 바벨론 포로생활 동안 얼마나 말씀과 거리가 먼 생활을 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들은 부끄러워하지 않고 말씀을 배우고자 찾아온 것이다. 당시 에스라를 찾아온 사람들은 모두가 지도자급이었다. 에스라도 사실은 제사장이었다. 그런데 다른 제사장들이 율법을 배우고자 에스라를 찾아왔다는 것은 어찌보면 자존심이 상할수도 있는 일일 수 있다. 왜냐하면 자신들의 무지를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말씀을 배우는 것은 절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그 넓이와 높이와 깊이가 무한대인 하나님의 지혜이며, 전지하신 하나님의 신비한 지식이기 때문이다. 말씀은 성도에게 생명 그 자체이며, 영혼을 풍성하게 살찌우는 양식이고, 또한 말씀은 성도의 길을 비추는 능력이 있기에 성도의 힘과 능력이다. 그리고 또한 말씀을 듣고 읽고 배우는 시간은 하나님과 교제하는 시간이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시간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말씀 배우기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일평생 말씀 배우기를 간절히 사모해야 한다.
둘째, 진리에 대한 깊고 넓은 깨달음을 사모해야 한다.
본문에 소개된 족장들과 제사장들, 레위인들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백성을 가르치고 인도해야 할 사람들이다. 따라서 누구보다 먼저 말씀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가지고 있어야만 했다. 그리고 그들은 말씀을 효과적으로 잘 가르칠 수 있는 능력도 갖추어야 하는 사람들이었다. 아마 그들은 전날 나팔절에 율법의 말씀을 듣고 해석을 듣는 중에 온 백성이 말씀을 듣고 깨닫고 회개하고 우는 것을 보고 더욱 절실하게 깨달았던 것 같다. 그러했기에 그 이튿날이 되자, 말씀을 더 잘 알고 싶어서, 말씀에 대한 더 깊은 깨달음을 얻기 위해 에스라를 찾아온 것이다. 성도는 무엇보다 진리에 대한 사모함이 있어야 한다. 성도라면 누구나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기 원하는 사모함이 있어야 한다. 말씀을 깨닫는 은혜는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참된 백성에게만 주어지는 증거가 바로 말씀에 대한 깨달음이다. 그리고 말씀에 대한 보다 깊고 폭넓은 깨달음은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구하고 사모하는 자에게 허락되는 은혜이다. 예수님은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마7:7-8)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것은 자기 소원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이 세상의 것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바로 그 앞의 마6:33 말씀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에서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고 찾고 두드리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나라와 의는 어떻게 얻어지는 것인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만 발견되고 깨달아지며 얻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구하고 찾고 문을 두드리라고 하신 것은 하나님의 나라의 의를 얻기 위해 말씀 속에서 그것을 구하고 찾고 두드리라는 뜻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의 지혜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깨달을 수 없는 신비의 영역이다. 오직 성령 하나님을 통해서만 진리의 말씀을 깨달을 수 있다. 그런데 성령님은 어떤 자에게 진리에 대한 깨달음을 주시는가?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자에게 진리에 대한 깨달음을 주신다. 그러므로 성도는 세상의 것, 육신의 것을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 진리에 대한 사모함으로 살아야 한다. 예수께서는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구하지 말라”(눅12:29)고 하셨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시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진리에 대한 사모함을 가지고 구하고 찾고 두드려야 한다. 진리는 그런 사람에게만 허락되는 은혜이다. 말씀 배우기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히려 사모하며, 간절히 말씀을 구하고 찾고 두드림으로 말씀을 보다 깊고 넓게 깨닫는 성도 되길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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