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느4:15-5:5
제목:영적으로 깨어있는 신앙
첫째, 성도의 삶이 영적인 전쟁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스라엘백성들은 칼과 창을 한 손에 들고, 성벽을 재건했다.(17-18절) 그리고 그들은 밤에도 옷을 벗지 않았으며, 어떤 경우에도 무기를 손에서 때어놓지 않았다.(23절) 즉, 언제 누가 쳐들어와도 금새 전투를 수행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실제 하나님을 믿는 성도의 삶 역시 그래야 한다. 왜냐하면 성도의 삶 역시 전쟁터와 같은 싸움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현대를 살아가는 성도에게도 매일 매일 싸워야 할 싸움이 있다. ①내부적으로는 자신 안에 있는 옛사람과의 싸움을 해야 한다. 즉 다른 말로 하면 <자기와의 싸움>이다. 성도는 자기와의 싸움을 하지 않고는 신앙의 성장과 성화를 이룰 수 없다. 바울도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15:31)고 했고, 또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한다”(고전9:27)에 말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우리는 죄에 오염되어 전적으로 타락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의 육신으로부터 솟구쳐 오르는 욕구들은 대부분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자기와 싸우지 않고는 신앙의 성장과 성화가 불가능하다. 이 싸움은 죽을 때까지 멈출 수 없는 싸움이다. ②외부적으로는 비진리와의 싸움을 해야 한다. 사탄마귀는 태초에 에덴동산에서부터 시작해서 교회가 세워진 이후로도 계속해서 진리를 왜곡시키고 교회를 변질시키는 공격을 했다. 요한계시록은 종말의 시대에 교회안에 거짓 진리, 비진리들이 가득하게 될 것을 말씀하고 있다. 교회는 사랑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사랑과 화평과 축복만으로는 진리를 지켜낼 수 없다. 특별히 말세를 살아가는 현시대의 교회는 더욱더 진리와 비진리가 싸우는 싸움터이다. 교회안에 인본주의가 가득하고, 세속주의가 가득한 상태이다. 그러기에 성도는 진리의 등불을 밝히고 끊임없이 진리를 배우고 또 배워야 하고, 진리가 아닌 것에 대해서 느헤미야처럼, 예수님처럼, 바울처럼 싸워야 한다. 그것이 영적으로 깨어있는 신앙이다.
둘째, 우리를 위하여 싸우시는 하나님만 의지해야 한다.
하나님이 그들의 꾀를 폐하셨다는 말씀(15절)은 하나님께서 대적들의 계획을 좌절시키셨다는 뜻이다. 어떤 물리적인 힘을 동원했다는 뜻이 아니다. 그냥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 가운데 역사하셔서 자기들의 계획을 포기하도록 만드셨다는 뜻이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에게 감동을 주셔서 우리 마음을 바꾸시기도 하시지만, 불신자의 마음도 얼마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바꾸실 수 있는 전능하신 분이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어떤 일을 하시고자 하시면 못하실 것이 없는 전능하신 분이다. 느헤미야는 그 하나님에 대해서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싸우시리라”(20절)고 선포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싸우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러하기에 느헤미야와 백성들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인해서 전쟁도 없이, 전쟁이 끝나버렸다. 여러분, 성경은 전쟁이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고 말씀하고, 하나님께서 집을 세우지 않으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다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우리의 가정을 위해, 교회를 위해 싸우시는 분임을 믿고 확신하라. 그것이 바로 깨어있는 신앙이다. 하나님을 향한 절대믿음으로 깨어있는 성도가 되라.
셋째, 세상의 유익이 아닌, 믿음의 유익을 구해야 한다.
5장 1-5절을 보면, 모두가 힘을 합쳐서 성벽을 재건하는 거룩한 일을 하는 중에 개인적인 욕심을 부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곡식을 빌려주고 갚지 못하자, 밭과 포도원과 집까지 저당을 잡고 또한 형제를 종으로 삼기까지 했다. 율법에 의하면, 부자는 가난한 자에게 이자없이 돈을 빌려주어야 하고, 가난한 자의 물건을 오래동안 저당잡지 말아야 했다. 그러나 본문의 귀족과 관리들은 동족을 대상으로 이자놀이를 했고, 물건만 아니라, 자녀까지 담보로 잡고 종으로 삼았던 것이다. 기가 막힌 것은 성벽재건이라는 거룩한 하나님의 일을 하는 와중에 율법을 범하는 죄를 저지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 이유는 물질적인 탐심에서 비롯된 것인데, 그것은 바로 이방나라들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당시 주변나라들은 고리대금문화가 유행해서 빚을 갚지 못하면 노예로 삼는 일이 당연한 문화였다. 이스라엘이 그 세상문화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그래서 거룩한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도 세상적 이익을 위해 탐심을 부리는 일을 한 것이다. 이것은 마치 교회에 나와 예배를 드리면서 동시에 삶속에서는 죄를 짓는 것과 똑같은 것이다. 그것은 성도에게 당연한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 본문은 성도가 세상의 유익을 위해서 사는 사람이 아니라, 믿음의 유익을 위해 살아야 함을 교훈하신다. 왜냐하면 성도는 세상사람들처럼 재물의 유익을 위해서, 육신을 위해서 사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성경은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않고, 하늘에 쌓으라”고 하시고, 또한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세상이 아닌, 믿음을 위해 사는 깨어있는 신앙이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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