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민28:16-31
제목:올바른 절기신앙
첫째, 유월절은 구원의 은혜를 확신하게 하는 절기이다.
유월절은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신 하나님의 은혜, 사망에서 건져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념하고 감사하는 절기이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셔서 유월절 기간에 성만찬을 제정하시고, 유월절 기간에 십자가에 달려죽으셨다. 예수님은 성만찬과 십자가로 <유월절>을 완성하셨으니, 유월절은 <구원받은 은혜를 확인하는 절기>이다. 그런데 유월절과 무교절(7일간)이 붙어 있는 이유가 무엇 때문인가? 무교절은 유월절 어린 양의 피로 심판을 면한 사람이 자기 집에서 누룩을 제거하고, 7일간 무교병, 즉 맛없는 고난의 떡을 먹는 절기이다. 누룩을 제거한다는 것은 <죄를 버리는 것>이고, 무교병을 먹는 것은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않고, 오직 생명의 떡인 예수 그리스도만을 참된 양식으로 삼고 사는 것>을 의미한다. 유월절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해 주셨는가?>를 가르쳐 주는 절기라면, 무교절은 <구원의 은혜를 받은 성도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깨닫게 해주는 절기이다. 그래서 성도는 유월절을 지키면서 “아하, 나는 구원 받은 사람이구나.”를 깨닫고, 이어지는 무교절을 통해 “은혜 받은 나는 대강 살아서는 안 되는 사람이구나.”를 확인하게 된다. 유월절과 무교절에 아무 노동도 하지 말라고 하신 이유는 구원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되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십자가를 바라보며 “아, 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사람이구나” 확신하는 성도가 되라.
둘째, 칠칠절은 말씀과 성령을 사모하게 하는 절기이다.
26절의 칠칠절, 다른 말로, <맥추절, 오순절>의 영적 의미는 <말씀과 성령의 절기>라고 할 수 있다. 맥추절의 맥추는 보리추수를 의미하는 것으로서, 수확의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리는 절기이다. 그런데 성도는 어떤 열매를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가? 말씀과 성령의 열매를 드려야 한다. 여기서 칠칠절과 오순절이 의미를 가진다. 칠칠절은 <시내산에서 율법 받은 것을 기념하여 지키는 절기>였다. 율법을 받기 이전의 이스라엘은 <잡족>이었다. 엉겁결에 애굽에서 나왔지만 법도 없었고, 규칙도 없었던 잡족에 불과했다. 그런데 시내산에서 율법을 허락하심으로 비로소 <법을 갖춘 민족>이 된다. 그래서 율법을 주셔서 감사하는 절기가 칠칠절이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칠칠절 기간에 첫날밤은 잠을 자지 않고 성경을 읽고 배우며, 다음날 모든 남녀노소는 회당에 가서 십계명 낭독을 듣는다. 그런데 신약시대에 와서 예수께서 부활하신지 50일째 되는 칠칠절에 마가다락방에 성령이 임하였다. 그래서 이 칠칠절, 오순절은 구약에서는 율법주신 것에 감사하고, 신약에서는 성령의 은혜에 감사하는 절기로 드려졌다. 오늘날 성도는 칠칠절인 오순절을 생각할 때마다 “아하, 성도가 성도다워지는 것은 더 많이 소유해서, 더 많이 배워서가 아니라, <말씀과 성령의 능력>으로구나.”를 깨달아야 한다. 제자들이 제자들다워진 것은 언제인가? 저들이 돈을 많이 벌었을 때인가? 많은 지식을 얻었을 때인가? 아니다. 예수님 말씀에 순종하여 기도하다가 성령의 충만을 받았을 때이다. 그래서 칠칠절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최고의 의미는 “하나님의 사람은 말씀과 성령으로 충만해야 한다”이다. 여러분, 우리는 돈을 벌지만 돈으로 사는 자가 아니다. 우리는 땅에 살지만 땅의 것으로 사는 자가 아니다. 우리의 진정한 삶은, 우리의 진정한 삶의 기쁨은 <말씀과 성령의 능력 안에서>임을 잊으시면 안 된다. 성도는 말씀의 사람, 성령의 사람이어야 한다.
셋째, 초막절은 영원천국에 소망을 두게 하는 절기이다.
초막절은 한해의 모든 추수를 마치고, 수확한 소출을 창고에 저장하는 날이라고 해서 수장절이라고 부르고, 또 광야장막에서 지내던 것을 기념해서 장막절이라고도 부르기도 한다. 초막절은 성회로 모이지만, 동시에 7일간 집 바깥에서 나뭇가지로 초막을 짓고 생활했다. 초막절은 추수에 대한 감사의 의미와 동시에, 출애굽의 구원 이후 광야 40년 생활 속에서 돌봐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절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초막절의 진정한 영적 의미는 “장차 도래할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이다. 초막절은 단순히 <광야생활>을 기념하는 절기가 아니라, 가나안을 바라보면서, <이 광야가 우리의 목적지가 아니요, 가나안이 우리의 목적지라는 고백>이 담긴 절기이다. 즉, 초막절은 <하나님 백성의 목적이 이 땅이 아니라, 영원한 하늘나라임을 고백>하는 절기이다. 우리가 사는 이 땅은 우리의 진정한 가나안이 될 수 없다. 성도는 이 땅을 살지만, 이 땅의 사람이 아니다. 이 땅에 살지만, 땅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 하늘에 속한 자, 즉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자로서, <나는 하늘을 목표로 하여 사는 사람>이라는 고백이 있어야 한다. 성도는 초막절을 통해서 “아하, 내가 이 땅에 살지만, 나는 하늘에 소망을 둔 사람이어야 하는구나”를 깨달아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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