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민수기 19:1-22
제목: 정결하게 하는 물
성도님들 우리가 살면서 얼마나 많은 시체를 볼 수 있을까요? 의료인이나 경찰 같은 특수한 직업이 아니고서야 가족들의 죽음. 요즘은 코로나 시대고 장례를 치르는 전문장례지도사가 있어서 그마저도 직계가족이 아니면 참으로 어려운 일이 되었습니다. 저도 한국에서 100번 이상의 장례식을 참여하고 집례했었는데요. 직접 시체를 본적은 손에 꼽을 정도로 열 번이 안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레위기에 두번 그리고 또 민수기에 또 성경 여러곳에서 시체를 가까이 하지 말 것을 명령하시고 시체를 만진 자가 정결하게 되는 법을 여러 차례 반복적으로 설명을 합니다. 성경에서 반복은 중요하다고 했죠? 왜? 성경에서 이렇게 까지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시체를 만진자에 대한 정결의식을 중요하게 여기냐면 얼마 전 고라의 죄로 지도자 200명과 백성들 14700명이 전염병으로 죽었습니다. 게다가 60만명이나 되는 이스라엘의 장정들이 광야에서 죽었으니 40년간 일상에서 얼마나 많은 죽음을 지켜봤을까요? 그러니 매일 반복되는 죽음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스스로를 정결케 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진노를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너무나 많은 죽음으로 인해 부정하게 된 이스라엘 백성들을 정결케 하시려고 긴급으로 승인된 즉석 백신을 만들어 정결케 하는 물을 뿌림으로 이스라엘을 정결케 하셨습니다.
정상적으로 속죄제는 어떤 제물을 사용하셨습니까? 그것은 수소나 숫염소 숫 양을 제물을 사용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러기에는 너무 시간도 많이 걸리고 제물도 많이 소요되기에 하나님은 간단한 방법으로 이스라엘을 정결케 해 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정결케 하는 물입니다. 이 정결하게 하는 물을 어떻게 만듭니까? 그 방법이 2절부터 소개 되어 있습니다. ‘멍에 메지 않는 붉은 암송아지를 끌어 오게 하고 멍에를 메지 않았다는 말은 흠이 없다는 말입니다. 붉은 암송아지를 원어로 보면 젊다. 라는 뜻인데요. 생명력이 강한 그것을 제사장 엘르아살이 진영 밖으로 끌어내어서 자기 목전에서 잡게 할 것이며” 왜 아론이 아닌 엘르아살 인 줄 아시죠? 시체를 만진자는 저녁까지 부정하니 아론마저 부정하게 되면 하나님께 제사드릴 사람이 없기에 하나님은 아론을 보호하기 위하여 대제사장이 아닌 제사장 엘르아살을 통해 이 정결하게 하는 물을 만들게 합니다. 그 붉은 암송아지를 진영 밖으로 끌어냅니다.
이전의 제사는 어디서 드립니까? 성막에서 드립니다. 그리고 거기서 잡는 것인데. 지금은 진영 밖으로 끌고 가서 잡으라고 합니다. 이쯤되면 성도님들 느낌이 오시지 않나요? 흠없고 진영 밖 이는 히브리서 13:11-13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죄를 위한 짐승의 피는 대제사장이 가지고 성소에 들어가고 그 육체는 영문 밖에서 불사름이라 진영 밖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그런즉 우리도 그의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 하나님의 아들로써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이셨지만 영문 밖 진영 밖으로 나가서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위한 하나님이 주인이신 예루살렘 성전이 아닌 성전 밖에서 온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속죄제물로 죽임을 당하셨기 때문입니다. 그 붉은 암송아지를 잡아다가 그 피를 일곱 번 뿌리게 됩니다. 일곱 번이라는 말은 완전함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송아지를 불사르게 하고 백향목과 우슬초와 홍색 실을 불 가운데 던져 함께 태우게 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송아지를 불사른 자도 부정하기에 옷을 빨고 몸을 씻는 의식을 향한 후에야 거룩하게 되구요 송아지를 불사른 재를 거두게 된자도 저녁까지 부정하게 됩니다. 이렇게 만든 재를 모아 두었다가 필요할 때마다 정결하는 물을 만들어 부정을 씻는 물로 사용해 왔습니다. 그런데 성도님들 착각하시면 안되는게 있는데요. 무슨 잿물에 사람을 거룩하게 하는 마법 같은 것이 있었겠습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죽은 동물의 시체로 만든 재니 오히려 사람을 더럽혔으면 더럽혔지 그게 어떻게 사람을 정결하게 만들었겠습니까? 율법으로 따지면 시체물을 뿌려서 사람을 정결케 한다는 것은 역설이죠? 그러나 죽음이 죽음을 이기게 할 것이다. 나무에 달린자 마다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율법은 말해 왔는데 이 나무에 달린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율법의 저주가 깨어졌습니다. 이 얼마나 역설이지만 이것이 얼마나 멋찐 복음입니까? 카톨릭에서는 성수라고 하는 것을 만들어서 그 물이 사람을 거룩하게 한다고 합니다. 쓸데없는 짓이죠? 사람은 그렇게 거룩하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만 사람들은 거룩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효력은 오직 오늘 본문 1절 말씀인데요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 말씀하여 이르시되’ 여기에 아주 중요한 힌트가 있습니다. 이 정결하게 하는 물에 무슨 효력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재료가 사람을 정결하게 하는 것 아닙니다. 이렇게 말씀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효력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힘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죽음으로 죽음을 이기신 것입니다. 어떻게 예수님의 피가 우리를 깨끗게 하십니까?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거룩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을 물로 거룩하게 하시고 하나님은 우리를 말씀으로 거룩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5장 26절과 27절이 이를 잘 설명해 주고 있는데요 5:26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5:27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 어떻게 성막이 작동합니까? 어떻게 십자가가 우리를 깨끗케 합니까? 바로 하나님이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것이 우리 인생에 제일 중요한 줄로 믿습니다. 이렇게 죄를 씻는 힘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대로 세째날과 일곱째날 잿물을 우슬초로 뿌림으로 사람을 정결케 하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결론인 13절이 등장을 하는데요 “누구든지 죽은 사람의 시체를 만지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지 아니는 자는 여호와의 성막을 더럽힘이라 그가 이스라엘서 끊어질 것은 정결하게 하는 물을 그에게 뿌리지 아니하므로 깨끗하게 되지 못하고 그 부정함이 그대로 있음이니라” 20절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부정하고도 자신을 정결하게 하지 아니하면 여호와의 성소를 더럽힘이니 그러므로 회중 가운데어서 끊어질 것이니라 그는 정결하게 하는 물로 뿌림을 받지 아나하였은즉 부정하리라” 어떤 사람은 공로가 없어도 그 물을 뿌림으로 정결하게 되고 어떤 사람은 그 물 뿌림을 거부함으로 부정하여 멸망을 당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왜 이렇게 시체를 끔찍하게 싫어하실까요? 그것은 모든 죽음이 죄로 인해 발생한 죄의 삯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시체를 가까이 하지 말고 시체로 인한 부정을 제하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성도님들 히브리서 9장 13과 14절은 아주 중요한 속죄의 방법을 설명합니다. 먼저 13절은 구약의 방법을 소개합니다.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거든 그리고 14절은 신약의 방법을 소개합니다.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구약의 제사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라는 것입니다. 그 피를 힘입어 하나님 앞에서서 정결하게 하는 자가 죄를 이기고 연역함을 이기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게 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우리가 나음을 얻게 된 것입니다. 성도님들 우리는 전혀 거룩하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피가 아니면 물이 아니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우리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누릴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바라옵기는 성막을 보실 때 마다 십자가를 보실 때 마다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흠없는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함으로 우리에게 주신 사명 잘 감당하는 우리들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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