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민수기 4:34-49
제목: 삶에 황금기를 드려라
히브리어에는 느낌표와 따옴표 자체가 없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 강조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그 내용을 반복해서 기록합니다. 신약 성경에 예수님께서 중요한 내용을 말씀하실 때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렇게 두 번 반복해서 말씀하시는 것도 이런 히브리전 표현의 원리가 숨어 있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내용이 레위 족속을 다 계수한 고핫 자손 2750명 게르손 자손 2630명 므라리 자손 3200명총 8580명을 지정된 방법과 업무로 성막에서 봉사하는 일을 하게 하시는 것이 4장의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인 4장에서 제일 많이 말씀하는 구절이 바로 35절인데요 “삼십 세부터 오십세 까지 회막에서 복무하고 봉사할 자”라는 구절입니다. 같은 내용이 4장에 무려 7번이나 반복되어서 기록되어 있습니다. 왜 성경은 이처럼 레위인이 봉사 할 수 있는 나이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 것일까요?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주신 사명 잘 감당하는 우리들 되길 소원합니다.
다윗은 30세에 왕위에 올랐습니다. 예수님도 서른 살이 되었을 때 공생에를 시작하셨습니다. 물론 성경에 나오는 모든 사람이 다 30살에서 50세 사이에 부르심을 입은 것은 아닙니다. 모세의 경우에는 80세에 부르심을 받았고, 갈렙과 같은 경우 85세 나이에도 쓰임 받아 땅을 정복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군사로서 전쟁에 나가기 위해서 스무살이 되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성막에서 일하는 레위인 만큼은 서른 살에 일을 시작하여 20년간 일한 후 50세에 은퇴할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레위인들이 서른 살이 되어야만 성막에서 섬길 수 있도록 하신 이유는 그 사명이 매우 거룩하고 동시에 하나님의 진노로 죽음에 이를 수 있을 만큼 위험하기에 레위인들이 철저하게 준비될 수 있도록 준비시키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이미 15세가 넘어가면 사회생활을 하고 결혼을 할 나이에 도달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젊은 날의 패기나 열정만 가지고 일을 하다 보면 미숙함에 일을 그르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회막에서 봉사할 수 있는 나이를 30세로 제한 했습니다. 청년 때의 혈기나 서투름에서 벗어나 여러모로 성숙하게 되는 시기를 서른 살로 본 것이죠. 성막에서 섬기는 레위인을 계수할 때 아래로는 나이 제한을 30세로 둔 것처럼 위로는 나이를 50세로 제한 했습니다. 요즘에야 평균 수명이 올라가서 100세 시대가 되었습니다. 약 20년 전만해도 나이가 60만 넘어도 환갑 잔치를 자주 했었는데요. 요즘에는 기대수명이 올라가서 환갑잔치. 칠순잔치도 잘 안합니다. 그러니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3천년 전에야 평균 수명이 얼마나 짧았을까요? 물론 모세처럼 백 살 넘게 살아간 사람도 있습니다만, 그 모세도 시편에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고 말했습니다. 사람의 평균 수명이 칠십 정도니 100세 시대인 요즘 기준으로 보면 사람의 수명이 30년이나 짧았던 것이죠. 그러니 당시에 기준으로 50세가 이르면 은퇴할 나이의 기준으로 본 것입니다. 지금 기준으로 하면 80은 되야 이 공식이 맞지 않을까 하는데요? 성도님들 아직 80은 아니시죠? 그러면 걱정말고 주님의 일을 감당하시길 소원합니다. 삶이란 것이 얼마나 짧은지 궁수의 팔을 떠난 “쏜 살”과 같다고 합니다. 사라지는 안개와 같다고 했습니다. 어제 양궁 올림픽 경기를 봤는데 시속 200킬로가 넘습니다. 보면 분명 궁수가 쏘는 장면이었는데 눈 깜빡이는 사이에 화살이 과녁에 꽃혀 있습니다. 화살이 날라가는 속도가 워낙 빠르니까 카메라가 느린 장면으로 보여주지 않으면 화살이 보이지 않는 거죠. 우리의 삶이 쏜 살처럼 빠르다는 것이 바로 그런 거죠. 긴 시간이 남아 있을 줄 알았는데 지나고 보니 인생이 짧았다는 것이죠. 우리는 언제라도 죄를 끊고 예수님을 믿을 수 있을 줄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되던가요? 지금은 바쁘지만 언젠가 교회에 가겠다는 많은 사람들의 말이 현실이 되던가요? 평생 교회에서 봉사하고 섬길 수 있을 것 같아도, 지금 말고 나중에 형편이 좀 나아지만 자녀들이 졸업을 하면 이런 저런 핑계를 대지만 이것도 정해진 때가 있습니다. 마음은 교회를 섬기고 싶은데 우리의 건강이 허락하지 않을 때가 분명 오게 될 것입니다. 마음은 봉사하고 싶은데 믿음이 약해져서 섬기고 싶어도 몸이 예전 같지 않아 섬기지 못하고, 성경을 더 자세히 배우고 싶어도 정신이 예전 같이 또렷하지 않고 기억력이 젊었을 때와 달라 성경을 배우는 것도 한계를 느끼는 순간이 찾아오게 됩니다. 눈이 나뻐져서 성경책을 읽지 못하는 그 순간이 분명 오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레위인에게 30세에서 50세의 시기를 주님께 바치고 성막에서 헌신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인생에 있어 이 시기는 삶의 전성기입니다. 삶 속에서 어느 정도 성숙함을 갖춘 동시에 자신이 원하는 일들을 이룰 수 있는 힘이 깃든 인생의 황금기입니다. 하나님은 이 귀한 시간을 통해 레위인들이 주님을 섬기기를 원하셨습니다. 성도님들 아직 일 할 수 있는 나이입니까? 하나님께서 건강을 허락하셨습니까? 게다가 믿음이 있고 구원의 확신이 있고 가정에 문제가 없어서 아직도 하나님을 위해 일 할수 있는 형편이십니까? 그 건강한 몸을 가지고 주님의 몸 된 교회와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성도들을 섬기십시오. 우리가 언제까지 계속해서 주님을 섬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악한 사탄 마귀는 늘 우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봉사 좋지? 성경 읽는 거 아주 좋아. 예배 좋지 그러나 지금은 말고 다음에~해! 이게 사탄의 음성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여러 차례 말씀 하고 계십니다. 지금이 바로 은혜 받을 때에 지금이 바로 구원받을 지금 지금이 바로 하나님의 일을 할 때라는 것입니다. 날이 한참 밝은 것 같아도, 이것저것 하다 보면 어느 새 나도 모르는 사이 어두운 밤이 찾아옵니다. 집에서 살림하는 주부들이 하는 말이 아침 차리고, 방금 지나면 점심 차리고, 빨래하고, 저녁 차리면 하루가 다 간다는 겁니다. 하루가 너무 짧은 거죠. 우리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에서 이것저것 하다 보면 어느 새 주님의 일을 할 수 없는 시기가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 때는 주를 위해 일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분명하게 삶의 우선순위를 세워 놓고 살아야 합니다. 삶의 황금기에 레위인을 부르신 것처럼, 우리의 삶의 전성기를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헌신할 수 있길 소원합니다. 다 쓰고 남은 것을 드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건강을 허락하시고, 우리에게 일할 수 있는 힘과 체력을 허락하시는 한, 우리의 남은 삶 주님을 위해 섬기고 주님께 헌신하여 우리에게 주신 사명 잘 감당하는 복된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 은혜가 함께 하시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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