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롬9:19-29
제목: 하나님의 주권
“하나님이 어찌하여 허물하시느냐 누가 그 뜻을 대적하느냐”(19절) 하나님께서 누구는 선택하시고 누구는 버려두시는 것에 대해서 인간은 항의하고 따진다. 애굽의 바로를 강퍅하게 하신 분이 하나님이면서, 바로가 강퍅하게 행동했다고 책망하시고 심판하시는 것은 문제 있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주권, 또는 하나님의 선택과 예정에 대해서 공평한가, 불공평한가를 따지기 전에 분명히 해두어야 할 것이 있다.
첫째, 하나님이 법대로 하시면 구원받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는 다 죄인이다. 우리가 본래는 중립지대에 있었는데, 하나님이 누구는 천국으로 미시고, 누구는 지옥으로 밀어버리시는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는 지옥에 떨어질수 밖에 없는 사람들인데, 하나님께서 그 중에 일부분을 구원해주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반응이 무엇이어야 하는가? “왜 누구는 건져주고, 누구는 안 건져줍니까? 나는 이런 불공평한 구원은 용납할수 없습니다.” 이것은 구원받은 사람이 할 일이 아니다. 우리가 할 일은 그저 자격없는 우리를 구원해주신 은혜에 감격하는 것뿐이다. <모든 사람을 다 구원하지 않는 이상 하나님은 불공평하다>는 논리가 통하지 않는 것은, 근본적으로 인간은 누구나 다 하나님의 벌을 받기에 합당한 입장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불공평하시다고 말할 수 없다. 물론 불공평하신 것이 맞다. 그러나 하나님의 불공평하심은 모두가 벌을 받아 마땅한 중에 어떤 사람들을 용서하셨다는 것이다. 그 불공평은 원망의 대상이 되는 불공평이 아니라, 감사할수밖에 없는 불공평하심이다. 만약 하나님이 법대로 하신다면, 만약 하나님이 공평하게 하셨다면 아무도 구원받지 못한다. 법대로 하면 아무도 구원받지 못하는 것이 <공평>한 것이다. 그렇다면 아무도 구원하지 않는 것이 공평이므로 구원하지 않는 것이 좋은 것인가? 모두 지옥가야 하는데, 그 중의 얼마를 자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구원하시고 하나님 자녀가 되게 하셨다면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와 선하심을 찬양해야 마땅한 것이다.
둘째, 사람이 심판받는 것은 온전히 자신이 자초한 것이다.
우리의 오해 가운데 하나는,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은 귀하게, 어떤 사람은 천하게 창조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즉 바로가 악한 행동을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드셨기 때문이 아니냐는 것이다. 그러나 창 1장에서 알 수 있듯이, 하나님의 창조는 모두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서 되었다. 인간은 아름답고 거룩하게 지음받은 존재이다. 어떤 인간도 악하거나 부족하게 창조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21절의 말씀은 무슨 뜻인가? 이것은 창조의 문제가 아니라, 이미 죄로 인해 부패하고 타락한 인간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사용하시느냐의 문제이다. 다시 말해서, 창조의 문제도 아니고, 사람을 선하게 만들었느냐, 악하게 만들었느냐의 문제도 아니라, <이미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시느냐 마느냐의 문제>이다. 비유를 잘 보라. 토기장이가 진흙을 어떻게 쓰느냐의 문제이다. 누구는 진흙으로 만들고, 누구는 보석으로 만든 것이 아니다. 다 같이 진흙으로 만들어지고 타락하여 하나님의 진노 아래 떨어진 것인데, 누구에게는 은혜를 베푸시고, 누구는 그냥 내버려두신 것이다. 그런데 사람이 죄를 짓게 되거나 심판을 받는 이유가 하나님께서 내버려두셨기 때문인가? 아니다. 인간은 본래 악을 행할 존재가 아닌데, 하나님이 내버려두셨기에 악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죄를 강요하시거나 죄를 짓게 할 목적으로 창조하시지 않았다. 사람이 하나님 앞에 죄인이 된 것과 심판을 받게 되는 것은 모두 사람이 자초한 것이다. 자기가 죄를 지었고, 자기가 죄인된 것이다. 애굽의 바로가 마음을 강퍅하게 한 것은 하나님의 책임이 아니다. 본래 강퍅한 사람이었는데, 하나님께 그대로 내버려두신 것이다. 바로는 자기가 죄를 선택하고 자기가 하나님을 대항하였다. 그러므로 바로를 구원하시지 않아도 하나님은 불의하거나 불공평하신 것이 아니다. 우리가 죄를 선택했고, 우리가 하나님께 대항하며 산 것이기에 죄의 책임은 전적으로 우리에게 있다. 하나님은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신 분이다. 모든 인간을 다 구원하시지 않는다고 해서 잔인하시거나 냉정하신 분이 아니다. 22절 말씀처럼 하나님은 진노하실 수 밖에 없는 죄인을 향해서도 급하게 진노를 퍼붓지 않으시고,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며 자비를 베푸신다. 회개할 기회를 주시기 위함이다. 오래참아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성도가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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