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레위기 16:11-34
제목: “대속죄일에 누리는 은혜”
오늘 본문 16장은 대속죄일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아론의 두 아들이 다른 불로 제사하다 죽은 사건 이후로 여호와께서 모세를 부르셔서 하신 말씀이 16장입니다. 어제 본문 2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아무 때나 들어오지 말라 “내가 구름 가운데에서 속죄소 위에 나타남이니라” 아무 때나 들어오면 죽인다는 겁니다. 에스더서에서 에스더가 왕 앞에 아무 때가 나갈 수 없었던 것처럼 그래서 에스더가 목숨을 걸고 나갔던 것처럼, 하나님도 아무 때나 아무 방법이나 만날 수 없다는 것을 상징
하는 장치가 바로 이 대속죄일 규례입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이미 죽은 목숨이라. 우리는 죄인이라 하나님을 가까이 할수 없습니다. 죄와 하나님은 충돌하기에 죄인인 우리들이 하나님께 나아가면 죽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것이 기본적으로 성경이 말해주는 구약의 제사 시스템입니다. 그런데 3절 말씀이 이런 우리에게 희망을 줍니다. 아론이 성소에 들어오려면... 들어갈 방법을 만들어 주셨다는 겁니다. 아무 때나 속죄소 안으로 들어오지 말 것을 명령하시고 아무렇게나 속죄소 안으로 들어오지 말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나 일년에 한번 대 제사상이 지성소 안으로 들어와서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의 죄를 사하는 제사를 할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만날 수 없지만 단! 일 년에 한번 하나님이 약속을 정하여 이스라엘의 모든 죄를 사해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날이 바로 대속죄일 규례입니다. 이 속죄일은 이스라엘 달력으로 7월 10일에 거행 되었는데요 날짜도 정해 주셨고 이에 대한 방법도 알려 주셨습니다. 오늘은 그 방법을 살펴 보겠습니다.
첫째. 대속죄일에는 반드시 피가 필요했습니다.
먼저 제사장 자신을 위한 제사로 숫송아지로 속죄제를 드리고 숫양으로 번제를 드렸어야 합니다. 이는 대제사장을 위한 제사입니다. 소 한 마리로 아론과 가족들을 위한 속제를 드리고 이를 한자로 하면 수신제가죠? 먼저 자신을 위해 가족을 위해 자신을 살펴 보라는 겁니다. 그리고 번제단에 있는 숯을 향로에 가득담아 그 향으로 지성소안으로 들어가 그 지성소 안을 덮으라는 겁니다. 그리고 잡은 수송아지의 피를 가져다가 7번을 뿌리라는 겁니다. 그리고 대제사장 아론은 먼저 목욕을 한 뒤 속옷부터 다 모시로 입고 모시옷을 입고 모시 관을 입고. 모시로 풀 셋팅을 한뒤에 평생시에 입는 화려한 옷이 아닌 마치 상복같은 모시 옷을 입고 이스라엘을 위해서 숫염소 두 마리와 숫양 한 마리를 준비하는데요. 숫염소 두 마리 중 제비를 뽑아 한 마리는 여호와께 바치고 한 마리는 아사셀 염소로 광야로 내보냅니다. 아사셀이라는 말은 “내 보내는”이라는 뜻입니다. 두 마리를 잡아서 피를 속제판 앞에 또 뿌리고 속죄제물은 특이하게도 숫염소 한 마리와 숫 양은 번제로 드리고 한 마리는 산채로 두었다가 죄를 씻는 예식이 다 끝난 후에 광야로 안수하고 돌려보냅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죄를 이 염소에게 지우고 나서 그 염소를 광야로 보내는 겁니다. 이걸 보면 무슨 생각이 나십니까? 우리를 위하여 죽으시고 고통 당하신 예수님을 상징하는 바가 바로 아사셀 염소입니다. 히브리서 13:12절에 보면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바로 우리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의 아사셀 염소가 되었던 것입니다. 정리하면 아론이 자신과 온 이스라엘을 위한 제사를 드리고 아사셀 염소를 보내고 거룩한 모든 제사장복을 탈의하고 목욕을 하고 다시 옷을 입고 다시 지성소로 들어갑니다. 그러니까 대제사장은 대속죄일에 몇 번 들어갔을까요? 세 번 들어갑니다. 한번은 숯불 향을 피우기 위해 한번은 자기와 가족들을 위한 번제로 한번은 온 이스라엘을 위한 제물의 피를 뿌리기 위해 지성소로 3번 들어 갔습니다. 그 모두가 다 피라고 하는 제물이 필요했습니다. 제물 없이 갔다 가는 죽임을 당합니다. 제물이신 예수님 없이 구원을 받을수 없다는 것을 상징하는 의미입니다. 이 새벽기도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죄를 씻고 정결하게 한 후에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의 보혈의 공로를 힘입어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할수 있고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십니다.이것이 대속죄일에 있었던 일입니다.
둘째, 대속죄일 조차도 불완전 제사입니다.
왜냐하면 이 제사는 일년짜리 한번이기 때문입니다. 혹시 대세장이 잘못된 방법으로 제사를 드리다가 대제사장이 죽을수도 있었던 그런 위험하고 두려운 제사가 바로 대속죄 제사였습니다.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면 하나님의 심기가 불편하면 받지 않으시는 그런 제사였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삼가 자신을 조심히 해서 혹시 아론의 두 아들처럼 죽임을 당할 것을 두려워 해야 했습니다. 이것이 예배를 드리는 태도입니다. 하나님 지금도 살아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을 아십니다. 우리의 행동을 마음을 생각을 저울에 달아 보시는 전능하시고 전지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7월 10일이라는 날짜만 기다리고 살았어야 했지만 우리는 더 이상 이 7월 10일 이라는 이 날짜를 기억할 필요가 없습니다. 정말 정말 감사하게도 우리는 일년짜리 제사가 아닌 영원한 제물되신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은혜를 입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4:16은 이렇게 증거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예전에는 일년만 유효한 제사를 드렸지만 지금은 언제든지 어느 때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을 근거로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담대함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담력을 자격을 은혜를 얻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을 조리면 일년 짜리 회개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 영원한 회개의 능력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언제든지 우리를 하나님을 찾아가기만 하면 미쁘신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깨끗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의 기본적인 죄들은 다 이미 해결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끝은 아닙니다 믿는 사람들은 성도들은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를 피했던 것처럼 거룩한 삶을 살기 위해서 죄를 끌어 않고서는 이 죄를 이길수
없습니다. 때로는 피하고 싸우며 하나님의 의로운 자가 되려고 노력하며 살아야 할 것을 하나님은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더 이상 이렇게 복잡한 방법으로 제물을 희생하는 제사를 드릴 필요 없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을 의지하는 회개는 날마다 때마다 자주 자주 할수록 거룩한 사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성도님을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우리들이 되길 원합니다. 일년에 한번만 일주일에 한번만 하나님의 말씀앞에 고개를 숙이는 것이 아니라 전 인생 전 삶의 영역에서 하나님을 가까이 함으로 하나님께 의롭다 함을 받는 우리가 되길 소원합니다. 이 끔찍하고 복잡한 제사 제도를 통해 죄를 먹고 마시는 죄인이 아니라 하나님과 동행하는 의인으로 살게 해 주시옵소서 라고 기도 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날마다 만남으로 때마다 하나님 바라봄으로 거룩을 유지하는 우리들과 가정이 되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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