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요18:1-11
제목:내가 그니라
본문에서 예수님은 자기를 잡으러 온 사람들 앞에서 도망치지 않고, 오히려 당당하고 위엄이 있는 모습을 보여주신다. 예수님은 어떻게 그렇게 위축되지 않고 당당할 수 있으셨는가? <내가 그니라>고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에서 성도가 깨달아야 할 교훈이 무엇인가?
첫째, 기도는 우리의 고민과 고난을 해결하는 중요한 열쇠와 능력이다.
본문 1절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기드론 시내 건너편 동산에 가신 이유는 기도하시기 위함이었다. 왜 기도하셨는가? 마26:37-38에 의하면 예수님은 십자가로 인하여 고민이 있으셨기 때문이다. 37절 “고민하고 슬퍼하사” 38절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깊은 고민에 쌓인 예수님은 기도를 통해 고민과 슬픔을 해결하셨다. 예수님은 왜 그런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셨는가? 기도가 무엇인지 가르쳐 주시기 위함이다. 기도가 무엇인가? 마음의 고민과 슬픔을 해결하는 중요한 열쇠이다.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신 후에 가룟유다가 끌고온 군대앞에서도 당당한 모습을 보여주셨다. 기도는 십자가의 죽음에 대한 고민과 두려움조차도 이겨내게 만드는 능력이다. 약5:13“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 마음의 고민과 슬픔을 가지고 주님앞에 나아가 기도함으로 주의 도움을 받는 성도 되라.
둘째, 성도가 걸어야 하는 믿음의 길은 알면서도 가야만 하는 길이다.
4절을 보면 예수님은 그 당할 일을 다 아셨다고 말씀한다. 예수님은 자신이 당할 일에 대해 다 알고 계셨다. 여러분, 당할 일을 알고 계셨다는 것은 <얼마든지 피할 수도 있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전혀 피하지 않고 고스란히 모든 고난을 받으셨다. 일부러 고난에 들어가신 것이다. 성도가 걸어야 할 믿음의 길은 알면서도 가야만 하는 길이다. 예수님은 고난받기 위해 오셨고, 언제 고난받을지도 아셨다. 마찬가지로, 성도는 자신이 걸어가는 믿음의 길에 고난이 있을 것을 알고 가야 한다. 성도가 걸어야 할 믿음의 길에는 <반드시 큰 산같은 고난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왜 우리가 그 길을 가야만 하는가? 믿음의 길은 겉으로 볼 때는 자기를 부인하는 길이요, 십자가에 죽어지는 고난과 죽음의 길이지만, 실상은 구원의 길이요, 생명의 길이요, 영광의 길이요, 승리의 길이기 때문이다.
셋째, 성도는 자신의 안전보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 더 중요하다.
베드로가 칼로 대제사장의 종 말고의 귀를 베어버렸을 때, 예수님의 말씀이 무엇인가? “칼을 칼집에 꽂으라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11절) 아버지께서 주시는 잔을 마시지 않겠느냐는 말씀에는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담겨있다. 즉 예수님은 힘이 없어서 고난당하시고 죽으시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고난당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칼을 칼집에 꽂으라는 예수님 말씀은 무슨 의미인가? 성도는 칼이 있으되, 칼을 빼지 않는 자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칼은 힘을 의미한다. 세상은 칼을 소유하고 싶어한다. 칼로 자기를 지키고 보호하며 힘을 과시하고 싶어한다. 그런데 이런 세상에서 성도는 칼이 있으되, 칼을 휘두르는 자로 살아가지 않는 사람이다. 왜인가? 칼이 진짜 힘이 아님을 알고 있기 때문이며, 또한 성도가 진짜 해야 할 일은 칼을 휘두르는 것이 아님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성도의 우선순위는 무엇보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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