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요한복음 17:20-26
제목: “예수님의 마지막 기도”
17장 1절을 보시면 이렇게 시작을 합니다. 몇장 넘기셔야 하는데요 지난주 토요일 본문입니다. 찾아보실까요?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이르시되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우선 여기까지만요. 이 기도가 바로 예수님의 마지막 기도인 대제사장의 기도라고 하는 부분입니다. 예수님을 위한 기도 제자들을 위한 그리고 성도들을 위한 기도 중에서 오늘 본문이 바로 성도들을 위한 기도의 내용입니다. 이 기도를 통해 우리를 위해 지금도 간구하시는 예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시간 되시길 소원합니다.
첫째. 풀 패키지로 함께 하는 은혜를 누리라.
아까 못 읽었던 17장 1절 하반절도 마저 읽어 볼까요?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소서 하면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진심을 다해 아멘 합니다. 왜냐하면 본능적으로 예수님이 높아 지면 예수님과 함께 한 우리들도 높아 질 것을 어렴풋이 나마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영화롭게 하옵소서. 영광을 돌리게 하옵소서. 라고 하는 예수님의 기도에 아멘 아멘으로 화답합니다. 그런데 이 영광 영화롭다 라는 단어의 뜻은 우리가 생각하는 빛나다. 높임을 받다. 권세를 회복하다 라는 뜻이 아님을 알게 된다면 아마 아멘 소리가 확 줄어들게 될 것입니다. 마치 마태복음 16장에서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라는 기독교 역사상 가장 멋진 신앙고백을 했던 베드로 조차 그리고 나서 마태복음 16장 21절과 22절을 보시면 기가막힌 반전이 등장을 합니다. 21절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22절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예수님께서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할 것을 밝히자. 베드로가 항변합니다. 예전 성경에는 간하여 이르되 라고 했는데요 여기서 항변이라는 말은 멱살을 잡고 따지다 정도의 뉘앙스가 있는 단어입니다. 실제 예수님의 멱살을 잡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런데 예수를 붙들고 따지는 겁니다. 무슨 소리 하시는 겁니까? 그런 약한 소리 하지 마세요~ 어디서.. 그런 망언을... 이게 베드로를 비롯한 우리들의 심정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영광을 받고 높아지면 이런 구절이 나오면 와 아멘 좋습니다. 나도 그길을 함께 가겠습니다. 했다가 예수님이 고난을 받고 낮아지면.. 이런 구절이 나오면 아이고 우리 예수님 힘들겠네. 아이고 왜 그러셨데. 예수님 힘내세요. 라고 태세 전환을 합니다. 기가 막히죠? 그런데 성도님들 기억하셔야 합니다. 고난 없는 십자가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 없는 영광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누누이 말씀하시고 계시는 특히 17장에서 영화롭게 하고 영광을 받게 하신다는 말씀은 바로 십자가 지고 죽으신다는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사명을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게 바로 우리가 구원 얻는 길이고 죽은 우리들을 살리는 길이고 우리가 영광 받는 유일한 길이기에 우리에게 그 길을 함께 갈 힘과 용기를 달라고 지금 기도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성도님들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영광을 받는 유일한 길은 그래서 우리가 그 영광의 덕을 보는 유일한 방법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함께 지고 죽고 함께 부활하는 것입니다. 고난은 예수님이 당하고 영광은 우리랑 취하겠다 이런 놀부심보 같은 신앙으로는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앞에 영광을 함께 취할수 없습니다. 성도님들 함께 죽고 함께 사는 것이 십자가의 길 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자아는 자꾸만 괜찮다고 합니다. 이 정도면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정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완전히 십자가에서 죽고 완전히 십자가에서 부활하셔야만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와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고난 없는 영광 존재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고난도 영광도 함께 누리는 우리들 되길 소원합니다.
둘째, 성도들을 위하여 간구하시는 은혜를 누리라.
오늘 본문 20절 시작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그들의 말로 말미암아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예수님은 지금 함께 하시는 제자들만 위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들의 말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위해서 간구하십니다. 제자들의 말은 현장 전도를 통해 또는 신약성경을 통해 그 당시 사람들과 우리들에게 전파되었습니다. 우리도 그들의 말을 통해 성경의 증언과 설교를 통해 예수님을 믿은 사람들의 통해 선교사들을 통해 조선에 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앞으로 장차 믿게 될 성도들, 우리들을 위해서도 기도하고 계신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아시는 것처럼 성경에는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는 분이 두 분 등장합니다. 한분은 성령님이신데요 로마서 8장 26절을 보시면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그리고 한분은 바로 우리 예수님이십니다. 히브리서 7장 25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 그런데 왜 예수님과 성령님이 성도들을 위해서 기도하시는 줄 아십니까? 바로 그것은 21절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22절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23절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24절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나옵니다. 26절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그들 안에 있고 나도 그들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 지금 예수님과 성령님이 기도하시는 내용은 예수님이 아버지와 하나가 된 것처럼 제자들도 하나가 되고 그리고 성도들도 하나가 되어? 무엇을 하려구요? 예수님의 영광을 함께 나누기 위함이라고 하십니다. 아까 영광이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바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는 사역이 바로 하나님께 그리고 우리에게 영광이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그리고 성령님께서는 우리들의 건강을 위해서 잘 먹고 잘 살고 출세하고 부자가 되길 위하여 지금도 빌고 계시는 것이 아니라. 서로 하나가 되어 그리스도의 영광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을 함께 경험하는 새로운 피조물들이 되길 원하시기에 기도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이어야 합니다. 예수님 때문에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는 형제 자매가 되어야 합니다. 사탄은 교회를 분열시키고 성도들을 분열시킬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 뜻을 이루려고 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마지막으로 제자들을 위해 성도들을 위해 이 일을 잘 감당하라고 기도해 주시겠다고 하신 약속입니다. 다시오 무엇을 위해서요? 바로 예수님의 영광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그 부활로 말미암아 새롭게 된 성도들 그들의 모임인 교회를 위해 예수님은 기도하시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성도님들 우리는 십자가로 세로워진 사람들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고 한 형제 자매가 된 십자가 공동체입니다. 이 교회, 예수님 생명으로 피 값주고 세우신 곳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주신 사명 잘 감당함으로 예수님의 영광에 동참하는 우리들과 우리 교회가 되길 소원합니다. 지금도 이 일 잘하라고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시는 예수님의 기도가 반드시 응답될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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