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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천사랑의교회

2021-2-19 큐티말씀 - 영광을 위한 발자국(요11:1-16) - 김도완목사

사무간사22021.05.09 01:02조회 수 144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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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요한복음 11:1-16
제목: 영광을 위한 발자국

 

요한복음 11장은 유명한 장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는 장면입니다. 어제까지인 10장까지가 요한복음의 전반부였습니다. 전반부는 나는 ~이다.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설명하는데 초점을 맞춥니다. 예를 들어 나는 초막절의 주인인 생수이다. 생명의 빛이다. 생명의 떡이야. 나는 양의 문이다. 나는 선한 목자다. 이런 예수님은 누구신가라는? 자신을 설명하시는 것이 전반부의 목적이라면 11장부터인 후반부는 본격적인 사명 즉. 십자가를 향해 가실 발걸음을 소개하는 장입니다. 그 중에서도 예수님이 이 땅에 왜 오셨나를 보여주는 가장 강렬하고 직접적인 사건이 바로 오늘 죽은 나사로를 살린 이야기입니다. 이 사건 때문에 예수님은 결국 십자가에 못박혀 죽게됩니다. 그 동안 예수님의 거침 없는 행보에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예수가 밉기는 했지만 유월절에는 하지 말자했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인 유월절에 가장 인기가 많은 예수님을 죽이는 것이 부담이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당장 유월절에 죽이기로 한 계기가 바로 죽은 나사로가 살아난 사건 때문입니다.  만일 분명히 죽었던 나사로가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예수님과 함께 나타나기라고 한다면 예수님을 향한 사람들의 관심은 아마 폭발적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예수님이 했던 모든 기적들과 말들과 예언들이 이루어 질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예루살렘은 난리가 날 것이기에 정치 지도자들은 예수님과 이 나사로까지 죽이고자 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가 지내고 있는 이 사순절 우리를 위해 오신 분명한 이유와 목적을 생각하는 시간 되시길 소원합니다.

 

첫째. 어떤 병자가 있으니
오늘 본문 1절이 이렇게 시작합니다. "어떤 병자가 있으니 이는 마리아와 그 자매 마르다의 마을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라" 어떤 병자가 있으니. 이런 본문을 보게 되면 우리는 어떤 기대를 하게 됩니까? 예수님이 고쳐 주시겠지? 라는 기대를 하게 됩니다. 예수님 앞에 병자가 있다는 것은 이미 고침을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죠? 믿으시죠? 조금 뒤에 쇄골에 철심을 박는 수술을 하게 되는  장종현 집사님도 오늘 입원해서 내일 수술을 받는 기훈학생도 그리고 항암치료를 하고 있는 영빈이를 비롯한  많은 환자들도 예수님 앞에 있기만 하면 고침을 받을 것이라는 확신을 우리는 하게 됩니다. 그러니 환자들의 명단이 올라오면 우리는 기대감을 가지고 기도를 하게 됩니다. 다시 한번 부탁드리지만 환자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그러고 또 오늘 본문이 조금 특별한 해설을 달았습니다. 2절인데요. “이 마리아는 향유를 주께 붓고 머리털로 주의 발은 닦던 자요. 병든 나사로는 그의 오라버니더라”  이 환자와 예수님의 관계가 특별했는데요. 앞으로 12장에 나올 향유 옥합을 깨뜨렸던 그 여자가 바로 마리아 그리고 그 여자의 오라버니가 바로 이 환자였습니다. 나중에 말씀드릴 기회가 있겠지만 요한은 시대순으로 요한복음을 기록한 것이 아닙니다. 요한이 생각하는 사건 순으로 성경을 기록했습니다. 암튼 나사로의 집인 베다니가 성경에 자주 등장을 하는데요. 예루살렘에서 한 3킬로 정도 떨어졌던 곳 성경에는 5리 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 곳에 예수님이 자주 묵으셨다는 기록이 등장을 합니다. 성경에 등장한 예수님을 섬겼던 많고 많은 사람들 중에서 예수님께 평안한 안식을 제공해 줬던 곳. 그곳이 바로 나사로의 집이 었습니다. 게다가 5절에 예수님께서 이 삼남매를 사랑하셨다는 특별한 해설을 넣습니다. 이 나사로가 아펐습니다. 그 당시는 병원이나 약국이 흔히 있던 때가 아닙니다. 그냥 감기에 걸리고 허리 아프고 뭐 이런 것은 질병도 아니었을 때였습니다. 아프다. 그 결과로 나사로가 죽었다는 것은 심각하게 아프다는 것을 말해 주는 힌트가 되는 단어들입니다. 그러자 누이들이 예수님께 연락을 넣었습니다. 3절에 예수님께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이렇듯 예수님이 사랑하시는 자가 아프다는 소식을 들엇으니 그러니 이 나사로의 병이 낫겠죠? 틀림없이 낫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이 기이합니다.

 

둘째, 이틀을 더 유하시고
그런데 이 소식을 들은 예수님은 4절에서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내가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될 거라 하시면서 6절에 무려 "이틀을 더 유하셨습니다. 내일 본문이지만 그래서 나사로는 결국 죽어 “냄새나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가족인 마르다와 마리아의 이 당혹감을 뭐라고 설명할까요? 어떻게 예수님이 그럴수 있습니까? 다른 집도 아니고 나사로의 집입니다. 그동안 신세를 그렇게 많이 졌던 집인데. 당장 달려오셔서 나사로를 낫게 해 주셔도 시원찮은 판에.. 뭐 하시다가 이틀이 지난 후에나 오셔서.. 나사로를 죽게 하시고.. 결국은 죽은지 나흘이나 돼서 냄새까지 날 지경인데 예수님은 나사로를 찾아 가셨습니다. 그 이유를 어떻게 설명하셨습니까?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시더라” 이 말을 들은 제자들은 아 나사로가 그렇게 심각하지 않구나 했을 것입니다. 그러니 11절에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나노라 했을 때 12절에서 제자들이 주여 잠들었으면 낫겠나이다 라고 반응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아니다 그가 죽었다 라고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는 다 알고도 일부러 안 가셨고 이틀이 지난 지금에서야 나사로의 집에 가자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죠? 여기에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절대 잊어서는 안되는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아시고 모든 것을 다 하실수 있으십니다. 그걸 우리는 전지전능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니 하나님은 이미 이 상황을 다 알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에게 이런 황당한 장면을 가족들이 들으면 너무나도 서운해 할 만한 행동들을 하셨을까요? 15절에 "이는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하십니다." 일차적으로는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더 확대 하자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믿게 하시려고 예수님은 이런 황당한 행동을 하신 것입니다.

성도님들 우리도 생각해 봐야 합니다.  예수 그가 뉘기에 바람과 바다도 잠잠하는가 했던 그 물음처럼 이 때까지 맹인이 눈을 떳다는 기사를 본적이 없었다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사람들 앞에서 5000명을 먹이시고 바다를 걸으시고 많은 병자와 귀신들린 자를 쫓으신 그 분이 이제는 죽은 나사로를 살리러 가자고 하십니다. 성도님들 그분이 누구십니까? 바로 우리의 구원자 우리의 주인이 되시는 예수님이십니다. 성경은 특히 요한복음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 사실을 우리에게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 분은 하나님이셔~ 그분은 전능하시고 전지하셔.  그런데 그 완전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죽으셔서 우리가 살아난거야.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 이틀 가족들의 마음은 얼마나 절망 가운데 무너졌겠습니까? 아무 것도 할수 없는 가족들의 마음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나 요한은 나사로뿐만 아니 우리 모든 인간이 이렇게 죽음앞에서 죄 앞에서 아무것도 할수 없는 연약한 존재임을 드러냅니다. 그 죄로 죽어 있던 우리들을 구원하시러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죽음의 문제를 해결해 주러 오신 예수님을 우리 힘으로 어찌 할 수 없는 우리 인생의 문제를 요한은 나사로의 이야기를 통해 분명히 우리에게 말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가 누구이기에 죽은 사람을 살리는가? 내일 본문인 25절 26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니 이것을 내가 믿느냐” 성도님들 이 사순절 기간 이 질문에 바른 대답하는 우리들 되길 소원합니다. 그 질문 앞에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분은 나의 구원자이십니다. 예수님은 나의 주인이십니다. 라고 고백하는 복된 인생과 사순절 되는 우리들과 우리 가정되길 소원합니다. 그 은혜를 구하는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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