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요1:29-42
제목: 제자가 되려면
그리스도인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함을 인정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제자와 교인의 차이가 생긴다. 머리로 아는 말씀을 삶속에서 실천하는 사람이 제자이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주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첫째, 주님이 누군지 바르게 알아야 한다.(29-34)
성도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기 전에 먼저 예수님을 제대로 알고 있는가를 스스로 점검해야 한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가리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29절, 36절)이라고 말한다. 여러분은 어떤 예수에 관심이 있으신가? 요한의 말처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예수님”에게 관심이 있는가? 아니면 <우리의 세상살이를 도와주는 예수님>에게 관심이 있는가?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당연히 우리 인생을 도와주는 예수님이 더 좋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되, 나의 삶에 도움이 되는 예수로 믿는 것>은 참 믿음이 아니다. 왜인가? 예수님은 우리의 세상살이에 보탬이 되어주기 위해서 오신 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예수님이 우리의 삶에 도움이 되어주기 위해서 오셨다면 세례요한은 무엇 때문에 예수님을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이라고 말했겠는가? 차라리 “보라 세상의 인생에 도움이 되기 위해서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다”라고 하는 편이 더 낫지 않는가? 그러나 죄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 있어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은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하나님의 어린양은 자기의 죄인됨을 인정하는 사람에게만 죄를 해결해줄 구원자로 보여지게 되어 있다. 예수님이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으로 오셔야 할 이유가 바로 나 자신 때문임을 아는 사람이 진짜 제자이다. 바른 믿음은 반드시 바른 지식을 동반한다. 예수님이 누구신지 정확하게 아는 사람만이 예수님을 바르게 믿고 따르는 제자가 될 수 있다. 예수님을 피상적으로 알고 신앙생활하지 마시고, 예수님이 누군지 제대로 아는 참 제자가 되라.
둘째, 주님을 향한 사모함이 있어야 한다.(35-39)
안드레와 요한은 본래 세례요한의 제자였다. 그런데 하루는 세례요한이 예수님을 보고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고 말하자, 안드레와 요한은 예수님을 따라갔다. 그들이 예수님의 뒤를 따르자, 38절에 예수님은 그들에게 물으셨다. “무엇을 구하느냐?” 이 말의 뜻은 “무엇을 원해서 나를 따르려고 하는 것이냐?”, 이 말씀은 예수님을 따르고자 하는 마음의 진정한 동기를 물으신 것이다. 너희는 진정 올바른 마음으로 나의 제자가 되려고 하느냐는 것이다. 누구든지 주님을 따르기를 원하는 사람은 한 명도 예외없이 주님의 이 질문에 대답해야 한다.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여러분은 왜 신앙생활을 하는가? 왜 주님을 따르려고 하는가? 주님의 질문에 안드레와 요한의 대답은 “어디 계시오니이까?” 이 말은 “주님이 계시는 곳에 나도 함께 거하겠다”는 뜻이다. 즉 “이제 나는 당신과 함께 머물겠습니다.”라는 말이다. 예수님이 사대 성인 중의 한 사람이 아니라, 태초부터 계신 말씀이시며,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며,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생명의 근원인 분이라고 믿는다면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하겠는가? “주님, 내 평생 주님과 함께 하길 원합니다. 주님과 함께 살기를 원합니다.” 이것이 저와 여러분의 소원이 되기를 축복한다. <신앙의 좋고 나쁨의 기준은 하나님에 대한 갈증이 얼마나 되는가>로 결정된다. 하나님에 대한 목마름, 사모함이 강하면 강할수록 신앙이 좋은 것이다. 누가 진정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될 수 있는가? 영적 사모함이 있는 사람이다. 식어버리고, 딱딱해지고, 가뭄의 논바닥처럼 말라버린 심령이 아닌, 영적인 갈급함과 목마름으로 주님 앞에 서는 제자가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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