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시23:3
제목:영혼의 소생과 의의 길
본문 3절은 <하나님을 자기 목자로 삼는 자>에게 하나님은 어떤 목자가 되어주신다고 말씀하시는 것인가?
첫째, 내 영혼을 소생시키는 목자
학자들에 의하면, 시23편은 다윗이 아들 압살롬의 반역에 의해 도망치는 와중에 고백한 시라고 한다. 그런데 도망치는 와중에 고백하는 말이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다”(시23:1)는 것이다. 다윗은 환경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책임지고 인도하실 것을 믿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고백하는 것이다. 3절에 “내 영혼을 소생시키고”라는 고백도 마찬가지이다. 여기서 “소생시키다”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슈브”인데, 뜻은 “회복시키다”이다. 다윗은 지금 자기를 죽이려는 사람을 피해 도망치는 아주 절박한 환경속에 있으면서도, <나의 환경을 소생시키는 하나님>이라고 하지 않고, <나의 영혼을 소생시키는 하나님>을 말하고 있다. 그는 육적인 환경이 무너지는 것보다, 영적 상태가 침체되는 것을 더 괴로워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기뻐하셨던 이유는 다윗이 육에 집중하는 사람이 아니라, 영에 집중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우리는 영적인 필요에는 둔감하고, 육적인 필요에 민감하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육신적 필요를 아시고, 그것을 채워주시기를 원한다. 그러나 우리의 육신은 만족함이 없다. 사람은 육신적인 필요만 채워지면 아무 걱정도 없이 행복할 것처럼 생각한다. 그러나 사람은 아무리 맛있는 것을 먹는다고 해도, 아무리 좋은 침대에서 잠을 자도, 아무리 많은 돈을 벌어도, 아무리 좋은 직장에, 자녀가 좋은 대학을 간다고 해도, 그것으로 근심이나 걱정이 사라지지 않고, 아무리 많은 것을 누려도 만족함이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영적인 존재로 지어졌기 때문이다. 오직 하나님안에서 하나님과 교제하며, 사랑하며 주님 안에 살도록 지으심을 받은 존재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지만, 무엇보다 먼저 <우리 영혼의 부요함>을 원하신다. 세상 사람들은 땅의 것이 충만해야 삶의 보람을 느끼지만, 예수 믿는 사람은 영이 충만해야 삶의 보람과 행복을 느끼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성도는 육이 중심인 삶이 아니라, 영이 중심인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런데 다윗은 우리보다 백배나 믿음이 좋은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영혼의 회복을 갈망했다. 하나님을 자기 목자로 모시고 살아가는 사람조차도 회복이 필요없을 정도로 늘 성령충만한 삶을 살지는 못한다. 그래서 우리는 영혼을 회복시키는 하나님의 손길이 필요하다. 영적 회복을 구하는 성도가 되라.
둘째,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목자
우리는 주님께서 내 영혼을 소생시켜 주시고 나서, 우리의 육신적 환경도 소생시켜 주시기를 원한다. 즉 우리를 출세하는 길, 돈버는 길, 성공하는 길로 인도해주시기를 원한다. 그런데 목자되신 하나님은 우리를 돈버는 길로 인도하시지 않고,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분이다. <의의 길>은 어떤 길인가? 의의 길은 “올바른 길”을 의미하지만, 성경적으로는 “주님과 바른 관계에 있는 길”이고,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주님의 길”을 의미한다. 분명한 것은, 이 길은 <나의 길>과는 정반대편에 있는 길이라는 것이다. 왜 주님은 우리가 원하는 길로 인도하시지 않고, 주님의 길로 인도하시는가? 그 이유는 우리가 원하는 길은 <죄의 길, 사망의 길>이기 때문이다.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는 바르나, 필경 사망의 길이라”(잠14:12) 모든 것을 아시는 주님은 우리를 <죄의 길>이 아닌, <의의 길>로 인도하신다. 그런데 목자되신 주님께서 우리를 의의 길로 인도하실 때 한 가지 전제가 붙는다. “자기 이름을 위하여”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주님의 길로 인도하시는 이유”가 무엇 때문인가? 그것이 바로 <진정 우리를 위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을 위하는 것이 곧 나를 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왜 말씀대로 살아야 하는가? 그게 나를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왜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삶을 살아야 하는가? 그게 나를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왜 내가 죽어져야 하는가? 왜 내가 낮아져야 하는가? 왜 내 자존심을 죽여야 하는가? 그게 곧 나를 위한 일이기 때문이다. 성도는 자기를 위해 사는 자가 되어서는 안된다. 오직 주를 위하여 사는 자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지금도 일하신다. 우리의 영혼을 소생시키시기 위하여 일하고 계시고, 우리를 바른 길로, 진리의 길로 인도하시기 위하여 일하고 계신다.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라가는 성도가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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