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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천사랑의교회

2020-12-29 큐티말씀 - 진리 안에 사는 성도(요삼1:1-8)

사무간사22021.01.22 12:58조회 수 155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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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요삼1:1-8

제목: 진리 안에 사는 성도

 

첫째, 진리 안에 사는 성도의 목표는 축복이 아닌, 성숙이어야 한다.

 

사도 요한은 가이오라는 제자에 대한 소식을 듣고 그를 칭찬하며, 그가 범사에 신앙이 성숙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2절)고 축원한다. 이 말씀은 조용기목사가 말한 3박자구원 또는 3중축복론처럼, 세상의 축복이나 육신의 강건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고난을 극심하게 당한 사도바울이나 밧모섬에 긷힌 사도요한은 영혼이 잘못되었기에 범사가 잘 되지 못한 것인가? 그렇지 않다. 교회는 “예수 믿으면 생활의 복과 건강의 복을 받는다”는 식의 주장을 해서는 절대 안된다. 왜냐하면 그렇게 되면 <신앙생활이라는 것이 세상축복을 얻기 위한 하나의 수단과 도구로 전락해버리기 때문>이다. 우리는 본질적으로 육신적이어서 본능적으로 세상 것을 추구한다.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골3:2)고 해도 본성적으로 땅의 것을 생각하는데, 그런 우리에게 “예수 믿으면 세상의 복을 얻는다”고 하는 것은 마치 불에 기름을 붓는 것과 같다. 그것은 참된 복음이 아니다. 2절에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바란다는 말은 “은혜를 지키는 강한 사람, 죄가 없다고 평가받는 사람”이 되라는 뜻이다. 편지의 수신자인 가이오라는 사람은 진리를 따라 살고자 하는 마음이 매우 진실했던 것이 분명하다. 3절에 보면, “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거하되, 네가 진리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 가이오는 진리를 따라 살고자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그러나 신앙생활이란 마음의 소원만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마음의 소원을 삶속에 실천하고 적용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시험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우리의 대적 마귀는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고 있다. 우리는 언제든지 넘어질 수 있다. 사도요한은 가이오라는 제자가 가진 하나님을 향한 아름다운 마음처럼, 범사에도 하나님께 인정받고, 보다 견고한 신앙으로 성숙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축원한 것이다. 진정한 신앙은 하나님을 믿어 세상을 얻는 것이 아니다. 신앙생활의 목적은 세상 축복을 얻는 것이 아니다. 보다 견고한 신앙으로의 성숙이 신앙생활의 목적이어야 한다. 보다 견고한 신앙으로의 성숙에 힘쓰면 복은 하나님께서 알아서 주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오늘도 영적으로 한걸음 더 진보하고 성숙하기 위해 힘쓰는 성도가 되라.

 

둘째, 진리 안에 사는 성도의 기준은 사람이 아닌, 하나님이어야 한다.

 

“사랑하는 자여 네가 무엇이든지 형제 곧 나그네 된 자들에게 행하는 것은 신실한 일이니”(5절) 가이오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나그네들을 아주 잘 섬겼는데, 가이오의 행위를 “신실한 일”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이것은 가이오가 많은 사람을 섬긴 행위가 “가식이나, 건성으로 행한 것”이 아니고, 진리에 기초하여 형제 사랑을 실천한 참다운 믿음의 행위라는 뜻이다. 6절에 나그네된 형제들이 교회앞에서 가이오의 사랑이 진실한 사랑, 진실한 섬김이었음을 증거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요한은 가이오를 칭찬하면서 6절 하반절에 “네가 하나님께 합당하게 그들을 전송하면 좋으리로다”라고 권면하고 있다. 여기서 “하나님께 합당하게”라는 말은 ‘악시오스 투 데우'라고 하는데, 문자적으로는 “하나님께서 판단하시기에 가치있는 자세로, 또는 하나님의 관점에서 합당하게”라는 뜻이다. 사람의 생각이나 사람의 눈에 좋게 하는 것, 또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행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맞게 성도들을 섬겨줄 것을 권면한 것이다. 이것이 진리 안에 사는 성도의 기준이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들을 의식해서 행동하는 경우들이 많다. 여러분의 봉사나 헌신, 섬김이 하나님이 아닌 사람을 의식하는 것이 되면 그것은 원칙에서 벗어난 것이며, 진실한 것은 더더욱 아니다. 왜냐하면 “사람을 의식한다는 것 자체”가 <자기를 위한 것>임을 증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을 의식하며 하는 모든 신앙생활은 외식, 즉 위선이다. 사도바울이 뭐라고 했는가?(갈1:10)“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성도의 기준은 <하나님께 합당하게>여야 한다. <동기>도 하나님 뜻에 합당해야 한다. <과정>도 하나님 뜻에 맞아야만 한다. <목적>도 하나님께 합당해야 한다. 여러분, 유대교가 안식일을 지키지 않아서 버림을 받은 것이 아니다. 그들이 십일조를 안하고 금식기도를 안해서 망한 것이 아니다. 그들이 버림받고 망한 것은 하나님 뜻에 합당치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주님의 이름을 부르고, 주님의 이름으로 행한다하여 다 되는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해야만>한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행하는 성도가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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