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요일4:13-21
제목: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사도요한은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반드시 형제를 사랑하게 되어 있다(20절)는 것이다. 만약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형제를 미워한다면 그 사람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왜 사도요한은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수 없다”고 했을까? 무슨 의미로 그렇게 말한 것인가? 두 가지 측면에서 생각하면,
첫째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에 대한 교훈이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은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라는 의미로 그렇게 말한 것이다. 실제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은 없다. 헌금을 많이 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인가? 예배를 많이 드리고, 기도를 많이 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인가? 사실 그런 것들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규정하기가 매우 어렵다. 왜냐하면, 우리가 헌금을 많이 드린다고 하나님이 가져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부모를 공경할 때 말로 자주 문안드리고, 또는 돈으로 충분히 사랑을 표현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분이기에 물질적 방법으로 하나님을 사랑할 방법은 없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을 말씀해 주셨다. 요일5:3을 보면,“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은 <계명을 지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계명이 무엇인가? 많고 많지만,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 즉 형제사랑이다. 요일3:23에도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고 말씀하신다. 그래서 21절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해야 한다는 계명을 주님께 받았다”고 말하는 것이다. 주님은 주님을 사랑하는 방법이 <형제 사랑>임을 알려주셨다. 그래서 형제를 사랑하지 않고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이다.
둘째는, 진정한 신앙은 삶을 통해서 나타나야 한다는 교훈이다.
바리새인들은 십일조에 목숨을 걸었던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들은 십일조를 드리고도 주님께 책망을 받았다. 왜냐하면, 그들이 십일조는 잘하면서도,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기 때문이다.(마23:23)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다. 삶속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는 않으면서, 십일조만 열심히 하는 것은 바르지 못한 신앙이다. 교회에 보면, 겉으로 볼때는 일등신앙인들이 많다. 주일을 철저히 지키고, 십일조도 잘하고, 찬송을 부를 때 뜨겁게 부르고, 새벽기도, 철야기도할 것 없이 열심을 낸다. 그러나 실제 행위와 삶의 열매를 보면 <온통 자기를 위할 뿐>, 주를 위한 헌신과 희생은 감당하지 않으려 하는 사람들이 많다. 바로 그러한 삶을 교훈하고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보이지 않는 하나님도 사랑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삶을 통해서 나타나는 열매>가 없다면, 실제 믿음생활을 잘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믿음은 삶을 통해서 나타나야 하기 때문이다. 믿음은 삶으로 증명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사랑하신다면, 주변 사람을 힘써 사랑하기 바란다.
해야 하지만,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예수님의 사랑을 전해야 하겠습니다. 이 시간 기도하실 때, 성탄절을 맞이하여, 또 연말연시에 우리 교회 성도들이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깨닫고 그 사랑을 이웃에게 나누는 은혜가 있도록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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