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요일3:11-24
제목:서로 사랑해야 할 이유
성경은 <서로 사랑하는 것>이 구원받은 성도에게 있어서 가장 기본이요 본질임을 강조한다. 하나님께서 <형제 사랑>을 강조하는 이유가 무엇 때문인가?
첫째, 형제사랑은 우리가 하나님께 속한 사람임을 증거하기 때문이다.
12절에 “가인같이 하지 말라. 저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라고 말씀하고 있다. 가인이 악한 자에게 속했다는 말은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 아니라는 뜻이다.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그 근본적인 원인이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기 때문>이라는 뜻이다. 또한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사망에 머물러 있다.”(14절) 이 말씀은 하나님께 속한 사람, 즉 구원받은 사람만이 형제를 사랑할수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15절에서도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않는다.”는 말씀도 <형제사랑이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한다>는 것을 설명한다. 그러므로 속지 말라. 교회를 오래다녔다는 것이나, 직분을 받았다는 것이 구원받은 증거가 아니다. 형제를 사랑하지 않고 있다면 그는 하나님께 속한 자가 아니다. 구원받았다면 반드시 형제사랑의 열매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성도가 형제를 사랑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 때문인가?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내어주셨기 때문이다.(16절) 우리는 주님의 사랑에 빚진 자이다. 그러므로 그 사랑을 받아 구원을 받은 우리는 우리 마음에 들지 않아도 사랑해야 하고, 용서할수 없어도 용서해야 한다.
둘째, 진실된 마음으로 형제사랑을 실천하면 보상이 있기 때문이다.
17절 “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느냐” 형제가 어려움을 당하는 것을 보고도 도와줄 마음을 닫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없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형제를 사랑하는 것은 단순히 내 것을 희생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 곧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수단이며 통로>라는 것이다. 그래서 18절에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라고 하며, 형제사랑의 실천에 대해 두 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첫째는 말이 아닌 행함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진실함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랑은 행위만 아니라, 진심도 있어야 한다. 왜인가?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거든요. 진실함이 결여된 행함은 행하고도 자기에게 아무 유익이 없기 때문이다. 기억하라. 형제사랑에는 하나님의 보상이 있다. 사실 16절 말씀처럼,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셨기에 우리가 형제를 사랑하는 것은 너무나 마땅하고 당연한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보상을 약속하신다. 어떤 보상인가? (1)“믿음의 확신과 담대함”이다. 형제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은 자신이 하나님께 속한 자라는 강한 확신(19절)과 더불어 하나님 앞에 담대함을 얻게 된다(21절)는 것이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정죄하고 비난할지라도,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이 우리가 형제사랑을 실천하는 것을 아시기에 두렵게 하지 않고 오히려 담대함과 확신을 가지게 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앞에서 책망받을 일이 없기 때문에 담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 마음에 공포심과 두려움은 언제나 하나님 앞에 바르게 살지 못할 때 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리를 따라 사는 사람에게는 결코 두려움이 없다. (2)“기도의 응답”이다. 22절“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서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형제를 사랑하라는 계명을 실천하는 자에게는 기도응답의 보상이 주어진다는 뜻이다. 성도에게 필요한 것을 채워주신다는 뜻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자를 하나님께서 책임져주신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말씀따라 사는 성도는 세상 것에 대해 염려할 이유가 없다. (3)“주님과 동행하는 은혜”를 받는다. 24절“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주안에 거하고 주는 그의 안에 거하시나니” 형제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은 주님과 동거, 동행하는 은혜를 받는다는 뜻이다. 그게 왜 은혜인가? 내가 주님 안에 거한다는 것은 내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힘으로 사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세상살이는 우리의 힘과 계획대로 안된다. 주님안에 있지 않으면 모든 것을 우리의 힘과 노력으로 해결해야 한다. 그러나 주님안에 살면, 성령께서 우리를 다스리시고 인도하시는 삶을 살게 된다. 그러므로 형제사랑이 나를 위하는 길임을 믿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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