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다니엘 9:1-19
제목: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시옵소서
오늘 본문 9장은 다니엘서 6장의 비하인드 스토리 또는 감독판 정도되가 되는 내용입니다. 기억하실찌는 모르겠지만 6장 10절 말씀을 찾아보실까요? 11월 26일 목요일 본문에 있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요걸 읽어야 오늘 9장 말씀이 이해가 되니까 좀 번거롭더라도 찾으시길 바랍니다. 다 찾으셨죠? 시작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이것만 보면 다니엘이 어떤 기도를 했는지 알수 없습니다. 게다가 왜 이렇게 목숨을 걸고 열심히 기도했는지 도저히 모르겠죠? 그래서 이 6장과 짝이 되는 본문이 바로 오늘 9장의 말씀입니다. 이걸 모르면 우리는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냥 집 화장실에 앉아서 하던지 아님 눈은 뜨고 기도하던지 해도 충분하잖아요? 성도님들 안 그럽니까? 우리가 홍콩에서 코안을 통과할 때 마다 주여 아직 이 땅에 뜻이 있으시다면 도와주시옵소서. 하고 기도하는데 경찰관 앞에서 무릎을 딱 꿇고 기도했다가는 당연히 리젝 당하는거 아니겠습니까? 그런데도 다니엘은 왕의 도장이 찍힌 줄을 알고도 죽여라 했단 말이죠?
그 이유를 설명하는 즉 다니엘이 그날 하나님께 뭐라고 기도했는지 왜 이렇게 열심히 기도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밝혀 주는 본문이 바로 오늘 9장의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다니엘이 목숨을 걸고 기도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와 그 기도 내용을 한번 살펴보면서 우리도 다니엘처럼 하나님 마음에 합당한 기도할 수 있는 우리들이 되길 소원합니다. 오늘 본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배경지식이 좀 필요한데요. 오늘 본문 1절이 이렇게 시작합니다. 1절 메대 족속 아하수에로의 아들 다리오가 갈대아 나라 왕으로 세움을 받던 첫 해 그러니까 본문의 배경이 6장에서 바벨론 벨사살 왕이 죽고 이어서 메대로 왕국이 바뀐 어수선한 그 때를 배경으로 합니다. 마치 고려에서 조선이라는 나라로 바뀐 것처럼 말입니다. 정권만 바뀌어도 왕만 바뀌어도 온통 난리가 났을 텐데. 정권이 아닌 통치자의 왕국과 민족이 아에 바뀌었으니 그 혼란은 대단했을 겁니다. 게다가 다니엘은 바벨론의 총리 중의 한 사람이었으니 앞으로 그의 목숨과 삶은 정말 두렵기만 했을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다니엘에게 같이 공부했던 동기들보다 10배나 더 지혜롭게 만들어 주시고 그의 마음이 민첩하여 지혜가 바벨론의 모든 박사와 술객보다 월등하게 뛰어나게 해 주셨으니 왕이 바뀌고 정권이 바뀌고 왕국이 바뀌어도 다니엘 밖에는 대안이 없는 그 시점에 있었던 일이 바로 6장의 일입니다. 그랬기에 다니엘은 이 분주한 때에 습관을 따라 기도했던 것입니다. 우리도 이렇게 기도합시다. 이렇게 이야기가 끝나면 그냥 다니엘은 위인전이 되어 버리고맙니다. 제가 사사기를 말씀드리면서 여러 차례 강조했었죠. 그놈이나 저놈이나 이놈이다 다 그놈이 그놈이다. 이게 성경에서 인간을 바라보는 획일적인 관점입니다. 지난 주 중고등부에서 반별로 본선에 나갈 팀을 뽑는 중고등부 자체 예선전을 치렀는데요 선생님들은 아이들이 하겠지 하고 애들을 믿고 애들은 우리 반 선생님이 하겠지 하는 서로 믿고 의지하는 훈한한 장면이 연출될 뻔 했지만 결론은 믿을 놈 아무도 없네 이렇게 끝났습니다. 이게 성경에서 인간을 바라보는 유일한 관점입니다. 다니엘서는 다니엘처럼 우리도 사자굴에서도 풀무불에서 이겨내자 이런 걸 말하는 위인전이 아닙니다. 얼마나 하나님의 섭리와 세밀한 통치가 우리에게 임하고 있는 지를 설명해 주는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통치를 높이고 그분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성경의 목적임을 다시 기억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첫째, 기도에는 순서와 전제가 중요합니다.
다시 오늘 본문으로 돌아와서 오늘 본문 1절이 이렇게 시작한다고 했습니다. 1절 메대 족속 아하수에로의 아들 다리오가 갈대아 나라 왕으로 세움을 받던 첫 해
아하수에로 왕은 에스더에서도 나왔었죠? 바로 에스더의 남편입니다. 그 남편이 지금 그 왕이냐 아닙니다. 연대가 안 맞습니다. 애굽의 왕을 파라오 바로라고 지칭하는 보통 명사인 것처럼 블레셋의 왕은 다 아비멜렉이라고 부르죠? 바사 제국의 왕을 그냥 아하수에로 왕이라고 하고 지칭합니다. 그러면 다리오는 누구냐? 고레스인데 메데 왕의 왕은 다 다리오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바사 제국을 멸망시킨 다리오는 고레스인거죠? 요걸 헷갈리시면 성경이 뒤죽박죽이 되어 버립니다.
2절 곧 그 통치 원년에 나 다니엘이 책을 통해 여호와께서 말씀으로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알려 주신 그 연수를 깨달았나니 곧 예루살렘의 황폐함이 칠십 년만에 그치리라 하신 것이니라 그 동안도 다니엘은 열심히 기도했을 것입니다. 습관을 따라 그 동안 열심히 기도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그동안 다니엘은 막연하게 기도했을 것입니다. 하나님 이스라엘을 구원해 주세요!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세요? 그런데 그를 죽음조차도 생각하지 않을 정도로 간절하게 기도하게 만든 원동력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었습니까? 바로 말씀입니다. 2절 성경책을 통해 말씀으로 다니엘은 깨닫게 된 것입니다. 예루살렘의 황폐함이 끝나는 70년이 바로 지금이구나!! 그리고 3절입니다. 내가 금식하며 기도하며 간구하기를 결심하고 이 순서가 중요합니다. 말씀이 먼저고 기도가 나중입니다. 예수님 당시 금식하며 기도하고 간구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예수님의 진노와 저주를 받았습니다. 그들은 금식하며 기도하며 간구했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먼저가 아니였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제로 하지 않은 기도였기에 예수님께 저주와 책망을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관심이 없음에도 나는 금식하는 사람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자랑하고 다녔으니 예수님의 저주를 받았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씀에 전제가 되어 있는 않은 기도는 사이비들이 더 열심히 잘합니다. 무속신앙을 믿는 사람들은 밤새 끈질기게 기도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기도는 말씀에 근거가 되지 않았기에 말씀을 전제로 하지 않았기에 허공을 치는 메아리에 불과할 뿐입니다. 기억하시기는 기도하시되 말씀을 먼저 알고 말씀을 근거로 말씀을 전제로 바르게 기도하는 우리들이 되길 소원합니다
둘째, 기도에는 대상과 내용이 중요합니다.
다니엘서에서는 9장에 와서야 여호와라고 하는 단어가 처음 등장 해서 8번이나 사용됩니다. 그 동안 아람어 파트에서는 다 엘샤다이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단어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런데 히브리어 파트로 넘어와서는 여호와가 처음으로 사용됩니다. 여호와라고 하는 말은 언약을 지키시고 인자를 베푸시는 이라는 뜻입니다. 모두가 아는 마귀들도 알고 떠드는 그냥 전능하신 하나님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과 우리와의 밀접한 관계를 말해주는 이스라엘만 알고 있는 단어가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께 다니엘은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여호와 ”자기 백성과 언약을 하시고 그 약속을 이루시는 분이시여 긍휼을 베풀어 주세요.
우리가 기도할 때 이렇게 하나님의 속성을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야 시간 낭비를 하지 않으십니다. 열심히 기도했는데 그게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면 얼마나 억울하겠습니까? 하나님은 언약을 지시키는 분이시죠? 거짓말 안하시는 분이시죠? 하나님 말씀에 70년만에 예루살렘이 회복된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하나님 약속을 지켜주세요. 이게 다니엘의 기도였습니다. 그리고 다니엘은 6절 우리가 말씀하신 것을 듣지 아니하였나이다. 6절부터 시작해서 무려 16절까지 우리가 범죄했으므로 회개하는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 우리가 정말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그리고 그 마무리가 아주 중요한데요. 17절입니다. 그러하온즉, 하나님 우리도 우리 잘못을 인정했습니다. 그러니 이제는 주를 위하여 얼굴 빛을 주의 황폐한 성소에 비추시옵소서, 70년이 다 되었지 않습니까? 주를 위하여 주의 명예를 위하여 약속을 지켜주시옵소서. 말씀하셨으니까 그 말씀을 이루어 주십시오. 하나님의 큰 영광을 위하여 기도를 들어 주시옵소서. 19절 함께 읽어 볼까요? 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하소서 주여 귀를 기울이시고 행하소서 지체하지 마옵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주 자신을 위하여 하시옵소서 이는 주의 성과 주의 백성이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바 됨이니이다 여기서 주여 삼창이 나옵니다. 다니엘은 지금 말씀을 통해 이스라엘의 회복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안 것입니다. 그러기에 다니엘은 기도하지 말라는 왕의 조서가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간절히 기도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죽을 것을 알고서도 기도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 기도 후에 다니엘은 사자굴에 끌려 간 것입니다. 성도님들 다니엘이 아닌!! 다니엘을 깨닫게 하시고 기도하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우리 마음에도 뜨거움이 일어나서 그만 좀 기도하라고 할 때까지 전심으로 기도하는 우리 심천사랑의교회 성도님들 되시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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