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단 8:1-14
제목: 역사의 주인
다니엘서의 주제는 바로 <세상 역사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우리에게 가르치는 책이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역사의 주인이다. 세상역사의 주인이 하나님이시라면 성도가 깨달아야 할 교훈이 무엇인가?
첫째, 세상 일을 걱정하지 말고 믿음을 걱정해야 한다.
다니엘이 본 두번째 환상은 <인류사회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예언>이다. 먼저, <두 뿔 가진 수양>이 강가에 섰는데, 한 뿔이 다른 뿔보다 길었고 그 긴 것은 나중에 난 뿔이었다. 이 두 뿔 달린 수양은 메대와 바사제국을 의미한다. 긴 뿔은 나중에 등장한 바사 제국이다. 이 바사제국이 메대제국을 점령하여 메대-바사제국을 만든다. 그 다음에 <두 눈 사이에 현저한 뿔>이 있는 <수염소>가 등장하는데, 이것은 그리스(헬라)제국을 의미하고, <현저한 뿔>은 알렉산더 대왕을 가리킨다. 이 숫염소가 수양을 엎드러뜨리고 짓밟아버린다. 그리스의 알렉산더가 메대 바사 제국을 정복한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 큰 뿔이 꺾이고 그 대신에 현저한 뿔 넷이 났다. 그것은 주전 323년, 알렉산더 대왕은 죽고, 그의 후계자들이 네 나라로 나누어 통치하게 된 것을 가리킨다. 그 네 뿔 중 한 뿔에서 작은 뿔이 나서 <남쪽과 동쪽과 영화로운 땅을 향하여 심히 커졌다>고 한다. 이 작은 뿔은 7장에 나오는 <작은 뿔>과 같은 것으로서 <셀류커스 왕조의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 왕>을 가리킨다.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는 남쪽으로는 이집트, 동쪽으로는 페르시아, 파르티아, 아르메니아, 그리고 영화로운 땅인 팔레스타인(이스라엘)을 정복한다. 본문에 하나님이 보여주신 환상은 무서울 정도로 정확하다. 말씀하신 그대로 세상 역사가 흘러갔다. 그렇다면 깨달아야 하는 것은 <성도는 세상 일을 걱정할 것이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세상 역사는 <우연의 일치와 사람들의 실수>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에 의해 철저하게 움직여지기 때문이다. 세상 모든 사건 사건이 하나님의 계획안에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무엇이 불안하고 두렵겠는가? 그러므로 성도는 세상 일을 걱정할 것이 아니라, 믿음 없음을 걱정해야 한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면,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 역시 정확하고 철저하게 인도해 가실 것이다.
둘째, 고난 속에서도 끝까지 인내와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
9-14절까지 말씀은 구약시대에 주어진 마지막 환난의 때를 예언하는 말씀이다. 이스라엘을 점령한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는 이스라엘백성의 신앙생활에 결정적인 박해를 가했다. 11-14절이 그 말씀이다. 매일 드리는 제사, 즉 성전제사들을 모두 폐하였고, 그의 성소를 헐었다. 헐었다는 말은 성전을 파괴했다는 뜻이 아니라, 더럽혔다는 뜻이다. 그는 예루살렘 성전안에 제우스신상을 세우고, 그 위에 돼지고기를 제물로 드리게 했다. 즉 안티오쿠스는 신앙의 말살 차원을 넘어 우상숭배를 강요했던 것이다. 그리고 안식일과 율법과 할례를 금지시켰고, 이것을 어기는 유대인들은 무참하게 학살했다. 그가 진리를 땅에 던지며 자기 마음대로 행하는데도 막을 자가 없어 형통했다. 그런데 왜 역사의 주인되신 하나님은 제사가 폐하여지고, 성전이 더럽혀지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박해받고 죽임당하는 것을 내버려두셨는가? 그것은 하나님 백성인 이스라엘의 범죄 때문이었다. 말라기서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말라기서의 배경은 바벨론 포로귀환 이후의 시기이다. 그 당시 이스라엘의 행태가 무엇인가? 하나님의 제사를 멸시했다. 제사장부터 시작해서 모든 백성들이 예배를 업신여기고 귀찮은 것으로 여겼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이방인과 결혼했다.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신앙을 정결하게 하기 위해서 안티오쿠스를 통한 환난을 허락하신 것이다. 그런데 왜 예언의 말씀이 주어진 것인가? 그 가운데서도 믿음을 지키는 신실한 성도들에게 <끝까지 인내하라>고 말씀을 미리 주신 것이다. 기억하라.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박해를 허락하시는 것은 믿음을 포기하라는 뜻이 아니다. 성도가 신앙의 박해를 받는 것은 믿음을 중단하라는 뜻이 아니라, 더 깨어 기도하며 더 믿음을 발휘하라는 뜻이다. 14절에 보면, <고난의 기간은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나님이 성도에게 주신 고난에는 시기가 정해져 있다. 고난이 영원할 것같고, 박해가 영원할 것같아도 기한이 정해져있다. 그렇다면 성도가 택할 길은 하나밖에 없다. 답은 이미 정해져 있다. 아무리 힘들어도 믿음을 지키는 것이다. 여러분 인생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같을지라도 끝까지 인내하면서 믿음을 지키는 성도가 되라.
댓글 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