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단5:1-16
제목: 거룩한 영이 있는 사람
첫째, 하나님을 무시하는 자는 소망이 없다.
2절에 느부갓네살 왕이 벨사살 왕의 부친이라고 기록되어 있지만, 실상은 조상이라는 뜻이다. 그 당시 바벨론의 통치자는 벨사살의 아버지 나보니두스왕이었다. 나보니두스왕은 1년 동안 군사들을 이끌고 원정길을 떠났다. 그런데 원정길을 떠났던 나보니두스왕은 메대와 바사의 연합군에 패했다. 메대와 바사 연합군은 나보니두스군을 격퇴하고 나서 그 기세를 몰아서 바벨론의 수도 바벨론 도성을 함락시키기 위해서 쳐들어 와있는 상태였다. 역사기록에 의하면, 메대와 바사연합군은 바벨론성이 너무 두꺼운 성벽을 가진 성이어서, 사람의 힘으로 안되니까, 유브라데강의 물줄기를 끌어들여 물의 힘으로 바벨론성을 무너뜨리려고 물길을 파던 중이었다. 그런데 벨사살왕은 성밖에 적군이 있는데도, 신하 일천명을 불러 술잔치를 하고 있는 것이다. 왜 그랬을까? 어리석은 사람은 시기(때)를 분별할 줄 몰라서 망한다. 지금 술마시고 있을 때인가? 적군이 문앞에 와있는데도, 술을 마시고 있다면, 그것은 망할 짓을 하는 것이다. 30절을 보면, 바벨론은 그날 밤에 망했다. 어리석은 자는 문제가 있으면 하나님을 찾아야 하는데, 그러지 않고 술같은 것을 찾는다. 그런데 어리석은 자는 한술 더 떠서, 하나님을 찾지 않을뿐 아니라, 도리어 하나님을 멸시하기까지 한다. 전쟁 중에 술파티를 하는 것도 심각한 문제인데, 벨사살왕은 한술 더 뜬다. 술잔을 바꾸자는 것이다. 그냥 술잔이 아니라, 신의 제사에 쓰이는 그릇에 술을 부어마시자는 것이다. 벨사살 왕은 금과 은과 구리, 쇠, 나무, 돌로 만든 신들은 찬양하고, 세상을 창조하고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은 멸시하였다. 하나님을 무시하는 자는 미련하여 소망이 없다. 늘 하나님의 눈을 의식하며 사는 소망있는 성도가 되라.
둘째, 하나님의 영이 있는 사람은 소망이 있다.
벨사살왕이 하나님의 성전그릇으로 술을 마실 때, 손가락이 나타나 석회벽에 글을 썼고, 왕이 그걸 보고 무서워서 벌벌 떨게 되었다. 그 글이 무슨 뜻인지 해석할 사람을 찾았지만 찾지 못하고 있을 때, 마침 왕비가 들어와 다니엘을 소개했다. 11, 14절에 “거룩한 신들의 영이 있는 사람”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영이 있는 사람, 즉, 성령의 사람을 말한다. 왜 다니엘을 찾은 것인가? 거룩한 영이 있는 사람이 그 글씨를 해석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정답이다. 벽에 쓰여진 글씨는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이었다. 하나님은 계시를 통해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드러내신다. 그런데 그 계시를 누가 해석할 수 있는가? 벨사살 왕을 비롯한 바벨론의 박사들은은 손가락의 글씨를 읽지도 못하고 해석하지도 못한다. 이것은 느부갓네살 왕이 꿈을 꾸고서도 해석을 하지 못한 것과 같다. 왜냐하면 모두 하나님의 계시였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계시는 아무나 해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계시는 하나님의 영이 있는 사람만 해석할 수 있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말씀이 깨달아지는 것은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 계시기 때문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계시이다. 그런데 성경의 핵심이 무엇인가? 인간의 죄를 지적하고 회개하고 하나님을 믿으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계시를 통하여 벨사살이 자기 나라의 힘을 믿고, 하나님을 무시한 죄를 지적하셨다. 그런데 벨사살은 그 해석을 듣고 회개하지 않았다.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의 차이가 여기 있다. 믿지 않는 자는 두려워만 할뿐 회개하지 않는다. 그러나 믿는 자는 죄를 지적하는 말씀 앞에서 두려움을 가지고 회개한다. 왜인가? 그안에 하나님의 영이 계시기 때문이다.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영이 우리로 하여금 죄를 지적하시는 말씀을 깨닫게 하시어, 회개하게 도우신다. 그래서 믿는 자에게는 소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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