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삿1:22-36
제목: 오직 믿음으로만 살라
하나님을 믿는 성도의 가장 큰 문제는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것이다. 불신앙과 불순종은 성도의 믿음을 믿음 되지 못하게 만드는 커다란 장애물들이다. 오늘 본문에 나타나는 이스라엘의 모습을 보면서, 성도의 믿음생활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나누고자 한다.
첫째, 처음 모습이 믿음이면 나중 모습도 믿음이어야 한다.
22절에 나오는 요셉지파란 요셉의 두 아들인 에브라임과 므낫세지파를 말한다. 이들의 처음 모습은 좋았다. 22절 “요셉 가문도 벧엘을 치러 올라가니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셨다고 나온다. 무슨 소리인가? <믿음으로 행했다>는 말이다. 그래서 점령하기 까다로운 견고한 성인 벧엘을 점령하는 장면을 보면, 하나님께서 돕는 사람을 만나게 하심으로 수월하게 벧엘을 점령하는 것을 보게 된다. 시작은 좋았다. 그런데 나중이 좋지 않았다. 27절에 므낫세지파는 벧스안, 다아낙, 돌, 이블르암, 므깃도주민들을 쫓아내지 못했고, 29절에 에브라임지파는 게셀주민들을 쫓아내지 못했다. 왜인가? 군대가 약해서인가? 아니다. 믿음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함께 하심에도 불구하고 실패하는 이유는,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하지 않기 때문이다. 믿음은 성도를 강하게 하지만, <믿음 없음>은 성도를 무능하게 만든다. 요셉지파의 처음 모습이 주님이 함께 하심이었다면, 나중 모습도 주님의 함께 하심이어야 했는데, 이들의 나중은 <가나안족속과 함께>였다. 가나안족속은 <죄>를 상징한다. 끝까지 믿음으로 싸웠으면 가나안족속을 쫓아내었을텐데, 중간에 믿음을 놓아버림으로 인해 쫓아내지 못하는 것이다. 신앙생활 잘하다가 중간에 믿음을 놓아버리는 순간, 죄와의 동거는 당연한 것이 되어버리고 만다. 속지 말라. “처음이 믿음이면, 나중도 믿음이어야 한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끝까지 믿음으로 사는 성도가 되라.
둘째, 말씀을 바르게 붙들어야 인생의 결론이 좋아진다.
본문에 여러번 반복되는 단어가 있다. “쫓아내지 못하였다” 가 무려 7번 나온다. 여기서 우리가 다시 확인해야 할 사항이 있다. 본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백성에게 가나안땅에 들어가서 하라고 명령하신 것이 무엇인가? 가나안땅의 점령인가? 아니면 가나안주민들을 쫓아내는 것인가? 분명 하나님은 가나안 일곱 족속을 모두 쫓아내라고 하셨다. 심지어 진멸하라는 말씀도 하셨다. 하나님께서 가나안 정복을 명령하신 것은 무엇보다 그 땅이 가나안족속으로 인하여 죄악이 가득하였기 때문이다. 가나안땅이 하나님이 다스리는 하나님 나라가 되려면 죄를 없이해야 한다. 그러므로 진정한 가나안 정복은 <땅의 점령이 아니라, 가나안주민을 진멸하고 몰아내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스라엘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붙들지 못했다. 그들의 목적은 <땅을 점령하는 것>으로 바뀌고 말았다. 그러니 가나안주민들을 다 쫓아내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왜 이렇게 되었는가? 주님의 명령을 몰라서인가?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들 마음대로 바꾸어 버린 것이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말이다. 이스라엘은 가나안주민들을 쫓아내지 않았을 뿐 아니라, 나중에 이스라엘이 강성해진 후에도 그들을 쫓아내지 않고, 그들에게 노역을 시켰다. 즉 종으로 부렸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합리적이고, 생산적이고, 경제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말씀을 바르게 붙들지 않은 결과는 비참한 것이다. 그 주민들이 결국 이스라엘의 가시가 되어 이스라엘을 오히려 종으로 부리는 상황이 일어나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타협을 시도하지 말라. 하나님의 말씀에 물을 타지 말라. 그것이 바로 불순종이다. 믿음의 기준은 말씀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붙들지 않는 사람은 절대 좋은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없다. 말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말씀에 순종하기를 힘쓰라. 그게 올바른 믿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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