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눅 6:27-38
제목: 온전함을 요구하시는 이유
본문은 마태복음 5장의 산상수훈과 중복되는 말씀들로서,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 말씀이다. 그러나 이 말씀대로 사는 사람은 별로 없다. 왜냐하면 요구하시는 수준이 너무나 높기 때문이다. 마5:48“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주님은 우리의 믿음만 아니라, 삶조차도 온전하기를 요구하신다. 왜 이렇게 어려운 수준을 요구하시는가?
첫째, 성도는 세상과 다른 수준으로 살아야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27-29절은 원수에 대한 태도이고, 30-31절은 이웃에 대한 태도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굉장히 부담되는 말씀이다. 왜냐하면 우리 안에 그런 사랑과 선함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원수를 사랑하고 원수를 위해 기도하고,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과 내 것을 빼앗으려는 사람들에게 잘해 주라는 말씀 앞에서 우리는 그렇게 할수 없기에 좌절하게 된다. 그런데 하나님은 왜 이런 요구를 우리에게 하시는가? 하나님께서 우리의 수준을 모르시는가? 우리의 형편을 모르시는가? 아니다. 우리의 연약함과 부족함과 형편과 처지를 잘 아신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성도를 위해서> 주신 것이다. 성도로 하여금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백성으로 만드시기 위해서, 즉 성도의 수준을 끌어올리시기 위함이다. 우리는 내 주변의 사람들과 자신을 비교하면서, 이 정도면 되지 않을까 하면서 적당히 선을 그어놓고 신앙생활하려고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남들과 비교하는 수준으로 살기를 원하시지 않는다. 32-34절 말씀은 <죄인들도 똑같이 그렇게 한다>는 것이다. 죄인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세상사람들을 말한다. 주님은 본문에서 <너희>와 <죄인>을 구분하신다. 즉 너희는 세상사람들과 달라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성도들이 죄인의 수준, 세상사람들의 수준으로 살기를 원하시지 않는다. 성도와 세상사람들의 삶이 구별되지 않고 똑같다면, 사람들이 예수 믿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우리는 감히 측량도 할수 없는 은혜로 구원받은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세상사람들과 똑같은 수준으로 살아서는 안된다. 인생의 원칙과 기준을 세상이나 자신의 생각에 맞추지 말고, 주님께 맞추어야 신앙의 성장과 성숙이 가능해진다. 우리는 연약하나, 주님의 요구에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면 주님께서 도와주신다. 세상과 다른 수준으로 사는 성도가 되라.
둘째,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결코 손해보지 않기 때문이다.
31절“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남을 대접하는 것이 곧 내가 대접받는 길이라고 말씀하신다. 또 35절은 내가 남을 사랑하면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해 주신다는 말씀이다. 하나님께 사랑받고 싶은가? 그렇다면 남을 사랑하라. 남을 사랑하라는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곧 나를 사랑하는 길이다. 또 37절에 비판과 정죄를 하지 않으면 너희도 비판과 정죄를 받지 않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남에게 정죄를 받지 않고 싶은가? 그렇다면 남을 정죄하지 말라. 남을 정죄하지 않는 길이 곧 내가 정죄받지 않는 비결이다. 하나님께 용서를 받고 싶은가? 그렇다면 남을 먼저 용서하라는 것이다. 남을 용서하는 것이 바로 내가 용서받는 비결이다. 그리고 38절은<하나님께 넘치는 복을 받고 싶으면 먼저 남에게 주라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채워주시겠다는 것이다. 그것도 그냥 채우시는 것이 아니라, 흔들어 누르고, 그 위에 더 담아서 후히 안겨 주시겠다는 것이다. 남을 돕다가 내가 손해볼 수도 있다. 그러나 <결국은 하나님이 갚아주시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본문 말씀의 결론은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손해가 아니라, 복 받는 길>이라는 것이다. 말씀대로 사는 것은 결코 손해가 아니다. 오히려 말씀대로 살지 않는 인생은 마치 모래 위에 집을 세운 사람처럼 결국은 무너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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