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눅 6:12-19
제목: 주님의 제자가 되라
첫째, 주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기도해야 한다.
12절에 예수께서 산에서 밤을 새워 하나님께 기도하신 후에 열 두 제자를 부르신 것을 보면, 예수님의 기도는 열 두 제자를 부르신 일과 무관하다고 할 수 없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기도는 어떤 내용의 기도였을까? 예수님은 어떤 사람들을 열 두 제자로 택하여 세울지를 하나님께 물어보시고 응답을 받으시기 위해 기도하신 것일까? 우리가 보통 교회에서 직분자를 세울 때 하나님께 기도한다. 그런데 그 때의 기도는 누구를 세울지 하나님께 알려달라는 기도인가? 그렇지 않다. 누가 직분자로 세워지든 그를 통하여 이루실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게 해달라는 기도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자기중심적이다 보니,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는 기도를 하기보다는, 우리에게 유익하고, 우리의 뜻을 이루는데 중점을 두고 기도한다. 기도의 모범은 예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마6:9-13/주기도)인데, 핵심은 우리의 원함보다는 철저히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를 구하는 기도이다. 성경에 예수께서 기도하신 사건들(세례받으시고 기도하실 때, 한적한 곳으로 피하셔서 기도하실 때, 오병이어 기적 후 사람들을 피해 기도하실 때, 감람산에서 기도하실 때 등등)을 보면, 예수님 자신을 위한 기도는 하나도 없었다. 철저히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 위해 기도하셨다. 예수님께서 열 두 제자를 부르신 일도 마찬가지로 누구를 세울지가 아니라, 어떤 사람을 세우시든 순종하여 하나님의 뜻(십자가 사명)을 이루겠다는 기도라고 볼 수 있다. <참 제자>는 자기를 위해서 기도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 위하여 기도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둘째, 주님이 맡기신 자들과 연합해야 한다.
에수님이 부르신 열 두 제자를 보면 참 당황스럽기 짝이 없다. 무식하고 가난하고, 사람들에게 욕먹는 자(세리 마태)도 있고, 심지어 예수님을 배반한 가룟유다도 있다. 16절에도 가룟유다가 예수님을 파는 자라고 말씀하고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가룟유다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가 되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다. 예수님도 가룟 유다가 장차 어떤 일을 할 것인지를 모르시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제자로 부르시고 사도라고 칭한 이유가 무엇인가? 아마 우리 같으면 가룟유다 같은 사람은 명단에서 삭제했을 것이다. 해를 끼칠 것을 뻔히 아는데 누가 받아들이겠는가? 교회에 문제를 일으킬 사람인 것을 뻔히 아는데도 직분자로 세울수 있는가? 그럴 수 없을 것이다. 가룟유다만 문제를 일으키는가?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번이나 부인하고 저주했고, 나머지 제자들도 예수님을 버리고 모두 도망갔다. 그런데 예수님은 가룟유다나 다른 제자들이 어떤 일을 할 것인지를 다 아시면서도 그들을 제자로 부르셨다. 왜인가? 그것이 가룟유다와 다른 제자들 모두 <하나님이 맡기신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요17:6“<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 그들은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여기서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은 바로 열 두 제자를 의미한다. 하나님은 왜 이런 사람들을 제자로 주셨을까? 그들 모두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도구로 쓰시려고 예수님께 맡기신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 역시 내 마음에 드는 사람, 나와 코드가 맞는 사람과 공동체를 이루려고 하기 보다는, 나와 맞지 않아도, 내 마음에 들지 않아도, 내 주변의 사람들(가족, 직장, 교회, 이웃)이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사람들>임을 인정하고 그들과 함께 연합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힘써야 한다.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내 뜻보다 주님의 뜻을 따르는 사람이 참 제자이다.
셋째, 주님이 맡기신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예수님은 열두제자를 부르시고, 그들을 <사도>라고 부르셨다.(13절) 사도는 <보냄을 받은 사람>이라는 뜻이다. 이들은 무엇을 위해 보냄을 받았는가?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은혜를 세상에 나타내는 그릇>으로 보내심을 받은 것이다. 17절에 보면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많은 백성들이 온 것을 설명하고 있다. 그들이 기대하는 예수는 <하나님의 은혜를 주는 메시야>가 아니라, <육신을 고쳐주는 의사> 정도로 보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가난과 질병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함이 아니다. 만약 그랬다면 세상에서 예수를 믿는 모든 사람들의 가난과 질병의 문제를 다 해결해 주셔야 마땅하다. 그러나 예수님은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인생에게, 죄로 인해 영원한 심판 가운데 거할수 밖에 없는 인생들에게 생명과 구원과 자유의 은혜를 주시기 위해 오셨다. 예수님이 세우신 교회는 성도의 육신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곳이 아니라, 죄문제를 해결하여 영원 천국과 생명의 구원을 주는 은혜의 집이다. 그러므로 <제자>는 하나님의 은혜를 전달하는 도구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어야 한다. 참 제자는 소유와 외모를 증거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증거하는 자로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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