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누가복음 6:1-11
제목 : 안식일 논쟁
‘안식일’[安息日, the Sabbath day]을 가리키는 히브리어 ‘솨바트’는 ‘일을 중지하다’, ‘행동을 멈추다’, ‘휴식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즉 안식일은 ‘하던 일을 중지하고 쉬는 날’을 말합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6일 동안 천지를 창조하신 후에 7째날 안식하시고 그날에 복을 주사 그날을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십계명 4계명인 안식일 규례를 설명하는 신명기 5장은 안식일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12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령한 대로 안식일을 지켜 거룩하게 하라 13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14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소나 네 나귀나 네 모든 가축이나 네 문 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못하게 하고 네 남종이나 네 여종에게 너 같이 안식하게 할지니라 15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네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거기서 너를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령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후에 7일 째 안식하셨으므로 일을 멈추고 안식일을 지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보란 듯이(?) 의도적으로 그동안 안식일에 해서는 안되는 규례들을 어기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유대인들이 안식일의 개념을 잘 못 이해하고 있었음을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안식일의 바른 개념을 이해하고 어떻게 안식일을 지켜야 하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 안식일의 주인은 예수님이십니다.
바리새인들의 공격은 ‘왜 예수님은 이삭을 잘라 손으로 비비어 먹느냐? 문제를 삼았습니다. 안식일을 규정한 탈무드의 가르침에 의하면 안식일에는 ‘일’을 하면 안 됩니다. 일이란 새로운 걸 창조해 내는 일입니다. 예를 들어 미리 만들어 놓은 빵을 먹는 건 문제가 되지 않지만 빵을 굽거나 빵에 뭘 찍어 먹는 행동은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내는 일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지금도 안식일에 전기를 끄거나 키지 않습니다. 1.1킬로 미터 이상을 걷지 않고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누리지 않기에 30층 건물의 엘리베이터는 1층부터 30층까지 전부 열리게 됩니다.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안식일을 해석한 인간들의 규정에 지나지 않습니다. 문제는 이 모든 것들이 하나님 뜻과는 전혀 상관없이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하나님이 만들지도 않은 새로운 율법을 만들어 사람들을 얽매고 있던 인습에 지나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보란 듯이 이 전통들을 깼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율법을 폐하러 오신 것이 완성하러 오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안식일을 범했다는 이유로 예수님을 비난했을 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5절입니다. “또 이르시되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더라” 이 말은 "옳고 그름은 내가 판단하는거야~ 너희들이 판단이 아닌 안식일의 주인인 나야. 내가 그 옳고 그른 것은 내가 하는 거야"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바리새인과 율법학자들의 전통이 더 중요한게 아니라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의 해석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이 원리는 인생의 모든 문제에 적용됩니다.
이와 같은 일은 교회사에도 종종 있었던 일입니다. 대표적인 예가 카톨릭입니다. 카톨릭은 성경의 권위 해석보다 교회=교황의 해석이 더 우선시 됩니다. 따라서 교황의 판단에 따라 동성애가 죄가 되기도 하고 죄가 안되기도 합니다. 그러니 카톨릭을 이단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유대교도 마찬가지겠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여전히 메시야를 기다립니다. 그러니 그들에게는 멸망만이 기다릴 뿐입니다. 성도님들 기억하셔야 합니다. 성경이 여러분을 위해 존재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위해 존재합니다. 그 말씀을 따르는 것이 성도의 사명이고 의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길 소원합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됐습니까? 11절 그들은 노기가 가득하여 예수를 어떻게 할까 하고 서로 의논하니라. 이 때부터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을 생각을 했다고 공관복음에는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 안식일에 해야 할 일을 합시다.
안식일에 관한 또 다른 에피소드입니다. 6절에 보면 “또 다른 안식일에 예수께서 회당에 들어가사 가르치실새 거기 오른손 마른 사람이 있는지라” 예수님은 보통의 이스라엘 사람들처럼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서 말씀을 배우고 가르쳤을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 손 마른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기회를 타서 7절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고발할 증거를 찾으려 하여 안식일에 병을 고치시는가 엿보니” 이들은 지금 병자를 앞에 두고 예수님을 고발할 꺼리를 찾고자 합니다. 그건 바로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 문제에 대한 논란이었습니다.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내는 것이 일이라고 했으니
병든 환자를 치료하는 건 분명 일에 해당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또 다시 보란 듯이 병자를 고쳤습니다. 그러니 병자를 고치는게 하나님의 뜻에 위반된게 아니라는 반증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통과 인간적인 규칙을 하나님의 말씀보다 높게 생각했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손 마른 사람을 고치기만 해봐라 안식일을 범했다는 사유로 예수님을 고발할 생각을 합니다. 이 생각을 아시고 예수님은 9절에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곳이 옳으냐? 물으십니다. 그리고 그 손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해야 할 일을 분명히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선을 행하고 생명을 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안식일은 쉼을 위한 날이 아닌 하나님의 일을 하는 날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예배하고 교육하고 전도와 선교하는 날입니다. 그래서 억눌렸던 자를 회복하고 포로된 자를 자유케 하는 이 교회의 사명이 바로 안식일 지금의 주일에 성도들이 해야 하는 일입니다. 안식일의 주인은 바로 예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인의 뜻대로 선한일 생명을 살리는 일에 쓰임받는 우리교회와 성도님들 되시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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