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눅 4:14-30
제목: 성령의 능력으로 살면
첫째, 성령의 능력으로 살면 영향력있는 삶을 살게 된다.(14-15)
본문 14절에“성령의 능력으로”라는 말씀은 다른 성경에는“성령의 능력을 입고, 또는 성령의 능력을 가득히 받고”로 번역되었다. 예수님은 성령의 능력을 가득히 받은 상태로 갈릴리로 가셨다. 유대사회에서 갈릴리 사람이란 가난하고 무식한 촌사람이라는 뜻으로 통했다고 한다. 그런데 예수님은 왜 이스라엘의 중심인 예루살렘에서 활동하시지 않고, 하필이면 촌구석 갈릴리에서 활동하셨을까? 예루살렘에는 매년마다 전세계에 흩어져있는 유대인들이 모이는데, 거기서 활동하면 더 많은 열매를 효율적으로 맺을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러나 예수님은 공생애 3년 중 대부분의 시간을 갈릴리에서 보내셨다. 놀라운 사실은, 갈릴리에서만 사역하신 예수님에 대한 소문이 온 땅에 두루 퍼진 것이다. 마4:24-25에 의하면 예수님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졌다고 기록한다. 수리아는 “남쪽으로는 이스라엘, 북쪽으로는 소아시아(터키), 동쪽으로는 메소포타미아, 서쪽으로는 지중해 연안을 포함하는 지역”을 가리킨다. 또한 마4:25에는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갈릴리와 데가볼리와 예루살렘과 유대와 요단강 건너편에서 수많은 무리가 찾아와 예수님을 따랐다고 기록하고 있다.“데가볼리”는 '열개의 도시들'이란 뜻을 가진 이곳은 요단강 동편과 갈릴리 호수 남쪽에 이르는 지역에 위치한 헬라인 도시들의 연맹체를 말한다. 예수님은 이스라엘 한쪽 구석 갈릴리에서만 사역하시는데도, 예수님에 대한 소문은 이스라엘을 넘어 근방 나라까지 퍼졌고, 예수님을 찾아온 것이다. 심지어 예수님은 아무도 살지 않는 광야에서 5천명을 모아놓고 설교하셨던 분이다. 즉 예수님의 삶은 환경과 장소에 영향을 받지 않고 오히려 사방에 영향력을 끼치는 삶이었다. 사자성어 중에 <낭중지추>라는 말이 있다. <주머니 속의 송곳>이라는 뜻인데, 뾰족한 송곳은 주머니 속에 넣어둔다고 해서 가려지거나 숨겨지지 않는다는 뜻이고, 정확한 의미는 <능력 있는 사람은 어떤 환경에 있든지 드러나게 되어 있다>는 뜻이다. 성령의 능력으로 사는 사람은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고, 오히려 영향력을 끼치는 삶을 살 수 있다. 그러므로 환경 탓을 하지 말라. 금수저, 흙수저 계급론에 마음이 흔들릴 필요가 없다. 진짜 문제는 흙수저라는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살지 못함>이 문제임을 깨달아야 한다. 성령의 능력으로 살면 환경에 상관없이, 영향력 있는 삶을 살수 있다.
둘째, 성령의 능력으로 살면 사람의 반응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16-30)
16-30절은 예수님께서 고향 나사렛 사람들에게 배척을 당하시는 내용이다. 앞부분 16-21절은 예수께서 바로 은혜를 주러오신 분임을 뜻하는 내용이다. 그런데 22절-30절은 은혜를 일순위로 받았어야 할 나사렛사람들이 은혜받기를 거절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본문에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사실은 <은혜는 육신적으로 가깝다고 받는 것이 아니다>라는 점이다. 우리 생각에는 목사의 가족이 목사의 설교에 가장 은혜받을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왜냐하면 <친밀함이 경멸함을 낳기 때문>이다. 너무나 잘 알기에 은혜 받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나사렛사람들은 예수님의 누구의 아들이며, 누구의 형제인지 알고 있기에, 은혜의 말씀을 듣고도 인간적 시각(선입견)이 작동하였기에 은혜를 받지 못하였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예수님께서는 육신적으로 가까운 사람들의 배척과 거부, 그들의 분노에 대해서 전혀 두려워하지 않으셨다>는 점이다. 주님은 그들의 비아냥 거리는 평가에 상처받거나 요동하지 않으셨고, 그들의 거부와 배척에도 위축되지 않으셨고, 당당하게 그들의 은혜받지 못하는 모습을 지적하셨다. 왜냐하면, 성령의 능력으로 사는 사람은 사람의 평가보다, 하나님의 평가에 더 무게를 두기 때문이다. 그런데 성령의 능력으로 살지 못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 바로 <사람들의 말에 무게중심을 두는 것>이다. 사람들의 평가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인생이 피곤하고, 곤고하고, 초라해질 수밖에 없다. 성령의 능력으로 살지 못하면, 사람들의 반응에, 특별히 상대방의 분노나 거부에 민감하게 된다. 그래서 하나님의 눈치를 보는게 아니라, 사람의 눈치를 보게 된다. 그러나 성령의 능력으로 살면 마음에 깊은 강물이 흐른다. 그래서 누가 내게 돌을 던져도 깊은 강물에 돌을 던진 것처럼 조용하다. 무엇이든지 다 소화시켜 떠내려 보낸다. 신앙은 소화력이다. 성령의 능력으로 사는 사람은 모든 것을 소화시킨다. 예수님처럼 성령의 능력으로 삽시다. 그래서 사람의 말에 민감하거나 사람의 반응을 두려워하지 말고, 두려움 없이 당당하게, 담대하게 사는 성도가 되기를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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