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열왕기하 12:4-21
제목: 처음보다 끝이 좋은 성도가 됩시다!
도박전문 용어(?) 중에 ‘초전끗발이 멍멍이끗발’이라고 영어권에는 ‘초심자의 행운’ 같은 그런 용어가 있습니다. 처음에 좋은 건 뭔가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드라마를 봐도 마찬가지입니다. 수많은 어려움을 견디고 결혼에 골인을 해야지 1회 결혼식부터 시작하는 건 문제가 시작된다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요아스의 인생이 이와 같습니다. 요아스의 즉위는 유대에게 기쁨과 평안을 안겨다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시작한 요아스의 인생이 말년에는 비참한 평가와 인생을 살게 됩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성도는 처음보다 끝이 더 좋아야 함을 기억하시고 우리의 인생의 방향을 잡으시는 성도님들 되시길 소원합니다.
첫째,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한 요아스의 처음은 칭찬받아 마땅했습니다.
주일본문인 열왕기하 12장 2절은 이렇게 요아스의 처음을 설명합니다. 2 “요아스는 제사장 여호야다가 그를 교훈하는 모든 날 동안에는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되” 사실 오늘 본문 열왕기하 12장 보다 병행본문인 역대하 24장이 요아스에 대한 사실을 더 자세하게 보여줍니다. 역대하 24장 1절을 보면 요아스의 나이가 7세에 즉위 했다고 나옵니다. 7세 대체 무엇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래서 그의 어머니 브엘세바 사람 시비아가 그를 여호야다의 손에 맡겨 양육하게 합니다. 여호야다 130세 살 까지 살았던 훌륭한 제사장으로 역대하 24장 16절에 “무리가 다윗 성 여러 왕의 묘실 중에 장사하였으니 이는 그가 이스라엘과 하나님과 그의 성전에 대하여 선을 행하였음이더라” 그동안 유다 왕 중에 다윗 성에 장사된 왕은 몇 있었어도 제사장은 아마 보기 드물었을 것입니다. 그 정도로 여호야다 제사장은 하나님과 성전 그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 받고 존경받는 몇 안되는 제사장이었을 것입니다. 그런 훌륭한 제사장이 직접 요아스를 키웠으니 요아스의 성품 역시 하나님을 바라고 성전을 사모하고 백성들을 잘 돌보는 훌륭한 왕이었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래서 요아스의 즉위 기간 동안 그동안 어떤 왕도 시도하지 않고 해내지 않았던 대규모의 성전보수가이루어 집니다.
그러므로 성도님들 주변에 ‘좋은 말’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는 믿음의 사람들을 많이 두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이런 성도가 복 있는 성도입니다.
둘째, ‘그들의 말’을 들은 요아스의 말년은 비참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역대하 24장 17절 “여호야다가 죽은 후에 유다 방백들이 와서 왕에게 절하매 왕이 그들의 말을 듣고” 그들 방백들의 말을 듣고. .여호야다가 죽은 후에 유다 방백들의 말을 들은 요아스 왕은 18절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을 버리고 아세라 목상과 우상을 섬겼으므로 그 죄로 말미암아 진노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임하니라”
처음과 말년이 너무나 다릅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철저히 지킨 왕으로 지내다가 돌연 변하여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을 버리고 ‘아세라 목상과 우상’을 섬기는 배교자요 우상숭배자가 됩니다. 이에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은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가 20절에서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여 스스로 형통하지 못하게 하느냐 하셨나니 너희가 여호와를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너희를 버리셨느니라 하나” 스가랴는 여호야다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동안 말씀을 가르치고 국정을 지도했던 스승과도 같은 여호야다의 아들을 백성들과 함께 죽이는 만행을 저지르고 맙니다. 그래서 사람은 누구의 말을 듣느냐가 중요합니다. 어제 담임목사님께서 말씀하셨던 것처럼 천국은 죄없는 자가 가는 것이 아니라 죄를 회개한 사람이 가는 것입니다. 밧세바를 범하고 희희락락하던 다윗왕에게 나단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을 때 다윗 왕은 엎드러져 침상이 눈물로 뜰 정도로 회개했던 사람이었음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그래서 누구의 말을 듣는 가가 중요한 것입니다. 주변에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줄 만한 믿음의 사람들이 그리고 그 기회가 늘 가득하길 소원합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셔서 아람의 적은 군대로 요아스와 유다는 큰 환난을 당하고 큰 부상을 당한 요아스는 침상에서 모반을 당해 죽고 마는 비참한 말년을 살게 됩니다. 처음보다 나중이ᆢ 지금도 좋지만 나중이 더 좋은 성도님들 되시길 소원합니다.
댓글 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