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왕하 5:15-27
제목: 은혜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첫째, 은혜가 물질보다 중요하다.
나아만은 나병에서 벗어나게 되자, 자신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줄 알게 된다. 그래서 엘리사에게 다시 와서 감사의 표시로 예물을 바치고자 한다. 지금 나아만의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는 감정이 무엇이겠는가? 감사뿐이었을 것이다. 은혜받은 자의 당연한 반응은 <감사>이다. 그런데 엘리사는 나아만의 예물을 받지 않고 거절한다. 나아만이 받으라고 강권해도 받지 않는다. 엘리사는 왜 예물을 받지 않았을까? 나아만이 자원해서 바치겠다는데 그걸 받아서 좋은 일에 쓰면 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엘리사는 끝까지 거절하고 받지 않는다. 왜인가? 그 이유는 나아만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나병은 인간의 힘으로 치료가 불가능한 병이었다. 그런 나병에서 벗어나게 된 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이다. 그런데 만약 나아만이 바친 예물을 받게 된다면, 나아만은 무슨 생각을 하겠는가?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어느 정도 보답했다는 마음이 들게 된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큰 은혜를 입었다고 칩시다. 그래서 너무 고마워서 그에게 식사나 선물을 주었다. 그러면 사람은 자신이 댓가를 지불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갚았다고 생각한다. 나아만이 준 예물을 엘리사가 받게 되면 나아만은 은혜에 대한 감사를 잊게 되고, 떳떳한 마음을 품게 된다. 물질로 은혜를 갚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엘리사는 나아만이 오직 은혜를 잊지 않고 항상 은혜안에 살기를 원했다. 물질을 거절한 엘리사의 자세는 무엇인가? 물질보다 은혜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교회는 돈보다 은혜가 더 중요한 곳이다. 그런데 본문 20-27절은 믿는 자가 은혜보다 물질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게 될 때 어떻게 되는지를 보여준다. 엘리사의 사환 게하시는 물질에 대한 탐심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는 나아만이 고침받는 은혜의 현장에 있었지만, 게하시는 은혜보다 물질을 더 소중하게 여겼다. 그래서 거짓말이라는 수단을 사용하여 물질을 구한다. 결국 그는 나아만이 벗어던진 나병을 뒤집어 쓰게 된다. 여러분은 누구인가? 물질보다 은혜가 더 중요한 엘리사 쪽인가? 아니면 은혜보다 물질이 더 중요한 게하시 쪽인가? 은혜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둘째, 은혜가 행위보다 중요하다.
엘리사가 예물받기를 거절하자, 나아만은 두 가지를 요청한다. 하나는 이스라엘의 흙을 달라는 것(17절)이다. 왜냐하면 이제부터 우상숭배를 버리고 하나님께만 예배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굳이 이스라엘땅의 흙을 가져가는가? 나아만은 이제 갓 하나님을 믿기 시작한 어린아이같은 신앙이다. 그런 그에게 있어 이스라엘땅의 흙은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땅의 흙이다. 사실 나아만이 사는 아람나라와 수도 다메섹은 우상숭배의 땅이다. 그는 사방팔방으로 우상에 둘러싸여 살아가던 사람이었다. 그런 그에게 이스라엘의 흙은 쉽게 말하면 <하나님의 임재와 은혜를 생각나게 하는 기념품>인 것이다. 어찌보면 유치한 발상이다. 그러나 귀한 생각이며 귀한 결단이다. 엘리사는 그 부분이 잘못되었다고 지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아만이 어떤 마음으로 그렇게 하는지 알기 때문이다. 영적인 결단은 유치하더라도 유익하다. 아주 작고 유치하더라도 믿음의 결단을 하는 성도가 되라. 그런데 나아만은 또 한 가지 요청을 한다. 18절에 자기 신분이 군대장관이라서, 아람의 왕이 나아만의 팔을 의지하여 이방신전에 들어가 허리를 굽힐 때 자기도 왕을 부축하느라 같이 절하는 것에 대하여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는 것이다. 사실 우리가 보기에는 하나님을 믿기로 했으면 우상에게 절하면 안되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엘리사는 여기에 대해서 뭐라고 반응하는가? 19절에“너는 평안히 가라”고 한다. 왜 우상숭배는 안된다고 단호하게 말하지 않고 이렇게 대답했을까? 첫째, 나아만의 신앙이 아직 어리기 때문이며, 둘째, 그의 중심이 하나님쪽으로 이미 돌아섰기 때문이다. 만약 나아만의 마음이 하나님쪽으로 완전히 돌아서지 않았다면 이런 용서를 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는 분이다. 교회 나오자 마자 순식간에 모든 것이 바뀌고 달라지는 사람을 본적 있는가? 어떤 분은 오랜 세월 절에 다니다가 전도받고 교회를 나오게 되었는데, 목사님 말씀에 은혜를 받는 날이면, 목사님과 인사하면서 합장을 하면서 은혜받았습니다라고 했단다. 어떤 분은 은혜받으면“두만강 푸른 물에~”노래를 부른다. 신앙이 어리다보니 아는 것이 찬양보다 세상가요가 더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행위보다 중심을 보시는 분이다. 바리새인들은 수없이 많은 예배와 엄청난 헌금을 드렸지만, 주님으로부터 외식하는 자들이라 책망받았다. 그 이유는 중심이 하나님을 향하지 않고, 껍데기 행위와 형식만 갖추었기 때문이다. 엘리사는 중심이 달라진 나아만의 미래를 하나님께 맡겼다. 하나님이 하실 일을 믿었다. 결국 나중에 보면, 아람이 이스라엘을 쳐들어올 때 아람의 군대장관은 나아만이 아니었다. 이에 대해서 이재철목사는“나아만이 하나님과 우상을 겸하여 섬길수가 없기에 군대장관직을 내려놓았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저는 거기에 동의한다. 하나님은 올바른 중심을 가진 사람을 진리의 길로 이끄신다. 성도는 어떤 신앙의 행위를 했다고 만족하면 안된다. 은혜가 행위보다 중요함을 잊지 말라.
댓글 달기